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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누가 그 글을 썼는가?”
지난주 내내 전화, 문자, 전자우편, 카카오톡으로 받은 질문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의 정규직·비정규직 교수자와 연구자들이 ‘나는 폐허 속을 부끄럽게 살고 있다’로 시작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하자, 사람들이 보인 첫 반응은 그 글의 저자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나를 지목하기도 하던데, 나는 아니다. 어쭙잖은 잡문이나 쓰는 내가 언감생심 그런 글을 쓸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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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 초안자에게 우리는 두가지를 주문했다. ‘1인칭으로 쓰자.’ ‘분노보다는 우리의 부끄러움을 고백하자.’ 아무도 읽지 않는 천편일률적인 선언문에서 벗어나보자는 제안을 그는 요령 있게 잘 표현했다. ‘나는 이태원 참사 이후 첫 강의에서 출석을 부르다가, 대답 없는 이름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알지 못했다’와 같은 문장들로.
우리 사회의 문제는 법 제정이나 직접 행동에 비해 말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말은 그저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일 뿐. ‘몇명이 서명했는가’ 하는 숫자놀음과 세력 규합이 먼저라는 생각. 하지만 아무리 ‘엄중한 시국’이라 해도 글쓰기는 자기 자신에서 출발한다. 우리에겐 우리의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일터에서, 자영업자는 가게에서, 학생은 교실에서, 전업주부는 부엌에서 이 정권이 우리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기록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권력을 무너뜨려봤자 또 다른 늑대가 나타나리라.
우리는 모두 취약하다. 우리가 가진 거라곤 그저 목구멍을 타고 솟아오르는 말과 온몸으로 쓰는 글 말고는 없다. 그러니 어찌 글쓰기를 민주시민의 핵심 요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세계는 각기 다른 목소리를 담은 말과 글을 통해 두터워진다. 나를 밝히는 글을 쓰자.
VOU 경희대학교 서울캠퍼스 방송국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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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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