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제품도 구독사업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LG전자가 2018년 구독사업 매출 2942억원을 보인 후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작년에는 거의 매출 1조원을 기록하며 급성장 중이다.
이미 성숙된 시장으로 성장성에 한계가 있다고 평가된 가전제품 시장에서 고급화된 고가의 제품이 출시됨에 따른 자연적인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삼성전자도 올해 구독사업 인력을 채용하면서 이 시장은 급격히 커질 것이다.
구독사업은 핀테크의 선구매후지불(BNPL·Buy Now Pay Later)과 같이 소액·단기 결제에 특화된 것이었다. LG전자의 구독사업은 BNPL을 크게 확대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BNPL은 선불금융사업자인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토스 등이 현금 충전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제 편의성을 위해 도입된 것이다. 아래 그림은 BNPL의 사업구조다.
우리는 BNPL 사업이 카드업이나 할부금융업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선불금융사업자는 소비자의 금액이 부족하더라도 일정 금액까지 미리 결제를 진행하고 소비자의 충전을 받을 수 있다. 선불사업자가 소비자에게 사전에 신용(여신)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미 충전된 금액이 있으면 예금을 받는 행위와 유사하다.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것만 다르다. 이 구조는 할부금융이나 카드업, 즉 여신전문금융기관의 업무와 본질적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소액예금을 허용하는 것이다. 그러면 BNPL에 여전사에 대한 규제를 적용할 것인가와 소액예금을 어디까지 허용하고 그걸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를 따져봐야 한다.
애플페이가 BNPL을 새롭게 선보이자 국내 업계에서는 애플과 같은 빅테크의 구독사업과 경쟁할 수 있게 국내 핀테크와 제조업에도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구독경제는 혁신적인 것이며 혁신을 위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빅테크들이 결제 등과 같은 금융서비스에 진출하는 양상을 보면 이런 주장은 근거가 매우 박약함을 알 수 있다. 구글은 씨티은행, 아마존은 JP모건과 손잡고 소비자의 편의를 위한 금융서비스에 진출하고 있다. 애플의 경우도 골드만삭스와 마스터카드와 손잡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LG전자의 구독사업도 카드사 제휴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페이스북은 독자적으로 페이스북페이를 출시함과 동시에 국제결제를 암호화폐 ‘리브라’를 통해 제공하겠다는 구상을 밝혔지만 규제당국을 넘지 못하고 있다. 왜 독자적으로 추진하지 못할까? 기존 은행 또는 카드 등 금융의 인프라를 대체하는 것은 경제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 서비스가 금융업으로 금산분리 원칙을 위배하기 때문에 규제당국의 규제체계에 부합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 핀테크의 경쟁력을 위해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초점을 벗어난 것이다.
금산분리 원칙은 1929년 대공황의 원인이 산업의 신용도를 평가하여 자금을 제공하는 금융기관과 그 평가에 따라 자금을 받는 산업자본이 융합되어 금융기관이 산업의 리스크를 증폭시켰다는 반성으로 생긴 것이다. 1933년 글래스-스티걸법(Glass-Steagall Act)에 의해 도입되었고 1956년 은행지주회사법에 의해 명시된 원칙이다. 이 원칙은 1999년 금융서비스현대화법이라는 그램-리치-블라일리법(GLH법·Gramm-Leach-Bliley Act)에 의해 대폭 완화되었다. 그러나 이 법으로 인해 2008년 금융위기가 초래되었다고 평가된다. 그 결과 2010년 도드-프랭크법(Dodd-Frank Wall Street Reform and Consumer Protection Act)에 다시 도입된 것이다.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과 수요자인 산업이 융합되는 것은 이해상충을 낳고 시장의 위기를 가져온다는 인식이 재정립된 것이다. 가장 경쟁력이 있는 회사라고 평가받았던 GE가 자사 제품의 할부금융을 위해 GE Capital을 운영하다 2008년 금융위기에 GE Capital을 매각하고 GE도 큰 위기에 봉착한 것도 동일한 이유다.
이 원칙은 금융업뿐만 아니라 금융/지급결제와 관련된 새로운 사업을 평가할 때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티메프 사태가 좋은 예이다.
그림은 VAN과 PG(Payment Gateway)는 신용카드업무의 일부가 분화된 것으로 거래의 경과를 승인하여 카드사가 판매자에게 대금을 지급하게 하는 업무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온라인 거래에서 PG는 영세한 온라인 가맹점을 대신하는 존재이지만 그 업무는 카드사 업무의 일부다. 티메프 사태의 원인 중 하나는 티메프가 영세한 온라인 업체에 시장을 제공하는 동시에 카드업의 일부인 PG를 겸영하는 구조에 있다. 금융업은 본질적으로 고객의 돈을 관리하는 업무로 고객의 자금을 고유자금과 엄격히 구분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겸영을 하고 계정 분리가 의무화되지 않기 때문에 경영 상황에 따라 고객 자금에 손을 댈 유인이 생기는 것이다. 요컨대 BNPL에 대해 금융당국은 여전법과 금산분리 원칙을 지키는지 봐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BNPL에 허용되는 '사실상'의 예금에 대해 보자. BNPL에서 거래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일정 금액까지 선불충전을 허용해 준다. 현재 충전한도는 무기명식은 50만원까지, 기명식은 200만원이고 금융당국은 그 한도를 최대 300만원에서 500만원까지 올리는 것을 검토한다고 알려졌다. 문제는 선불사업자가 충전금액이 모자랄 때 카톡이나 문자 등으로 충전필요를 반복해서 알린다면 그 한도는 의미가 없는 것이고 사실상 예금을 허용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취급 거래금액이 커지면 그 돈의 운용이 그 나라의 금융 안정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알리페이의 경우 거래액에 대해 이자를 지급하기 위해 위험자산, 주로 지방정부 채권에 투자하였다. 지방정부는 이렇게 조달한 자금을 부동산에 투자하였지만 과잉공급에 의한 부동산 경기 침체로 지급결제망 자체가 붕괴될 위험, 즉 중국 경제의 금융 안정을 해칠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국 경제의 최대 위험 요인으로 거론되는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인 것이다. 중국은 알리페이에 대해 71억 위안(약 1조3500억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인가제도와 같은 엄격한 규제를 도입하였다.
금융업에서 당국의 규제는 은행, 저축은행, 생명보험, 손해보험, 여신전문금융업 순으로 약해지고 전자금융사업자가 가장 약하다. 고객의 돈을 다루는 정도 차이에 기인하는 것으로 예금에 대한 규제가 가장 엄격하다. 증권사의 초대형 IB에 대해 기업금융과 관련된 수신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규제의 정도가 가장 약한 선불금융업자에게 ‘사실상’ 예금을 허용하는 것이 필요한지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
소액지급결제에서 유래된 BNPL이 고가의 고급 대형 가전제품에도 적용되면서 여신전문금융업과 연결되고 있다. BNPL의 본질은 할부금융이나 카드와 같은 여신전문업이다. LG전자뿐만 아니라 새로 진출하는 삼성전자도 카드사 등과 제휴해 구독사업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빅테크도 금융사와 제휴해 금융서비스를 하기 때문에 기존의 규제체계에 따라 규율할 수 있다.
온라인 지급결제와 같이 새로 등장하는 분야에서 평가/인증을 하는 금융업무를 일반기업이 겸업할 때 발생하는 위험은 의외로 매우 크다는 것을 티메프 사태에서 보았다. ‘금산분리’의 원칙이 갖는 의미가 다시 살아나는 이유이다. 이 원칙이 대공황 이후 정립된 후 금융 현대화를 위해 1999년 완화한 결과가 2008년 금융위기로 이어진 후 다시 정립되었다는 것을 새겨야 한다.
BNPL에 대해 여신전문금융업의 규제체계를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핀텍크의 경쟁력을 위해 충전한도를 확대하여 사실상 예금을 허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실상'의 예금을 허용하는 것이 초래할 리스크를 우리 경제가 흡수할 수 있는지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가장 엄격해야 할 예금을 가장 약한 규제체계에 있는 선불금융업에 허용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결제 편의, 즉 고객 편의를 위해 어느 정도까지 허용하고 그 자금의 운용에 대해 어떤 규제를 도입하여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신임 금융위원장이 티메프 사태에 대한 대책으로 여신전문금융업에 대해 결제전용계좌를 허용하는 것을 검토해봐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것은 여신전문금융업에 예금을 허용한다는 의미이다. 물론 전자금융사업자보다는 감독체계에 깊게 편입된 여전업이므로 고려할 대안이기는 하지만 이 기회에 뒷문을 여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 금융업은 경제의 흐름을 담당하는 혈관과 유사하다. 그때그때 임시방편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항상 그 업의 본질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해야 하는 것은 BNPL에서 처리되는 개인의 소비 등 데이터 관리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개인정보에 대한 거버넌스가 핵심이다. 빅테크가 이 사업을 통해 취득한 데이터를 전유하고 그를 통해 시장지배력을 확대하는 것이 가져올 경제적 효과를 보아야 할 것이다.
이용우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 박사 ▷제 21대 국회의원 ▷카카오뱅크 공동대표 ▷한국투자신탁운용 총괄 최고투자책임자
아주경제=이용우 전 국회의원 ywlee95@gmail.com
- Copyright ⓒ [아주경제 ajunews.com] 무단전재 배포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