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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 (목)

도심 집회에 주말마다 멈추는 서울버스… 손님은 혼란, 기사들만 '욕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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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주말 도심 집회 4주째 개최
예고 없는 노선 변경에 운행 중단
불만 민원 접수·승객 감소로 고충
"지자체, 노선 변경 적극 공지해야"
한국일보

16일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울 세종대로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왼쪽). 같은 날 광화문 인근에서 열린 정권 규탄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휴대폰 불빛을 켜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오른쪽).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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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분이면 오갈 길인데 1시간 반씩 걸려요. 그러니까 손님들한테 욕먹고 그러죠."

서울 마을버스 기사 A씨는 요즘 주말만 되면 열받은 승객들의 불평이나 고성을 듣는 게 일이다. 그가 운전하는 버스는 종로구 삼청동을 출발해 광화문, 시청, 숭례문을 거쳐 서울역을 찍고 다시 돌아간다. 평일이라면 좀 밀려도 그럭저럭 오가는 구간이지만 문제는 주말. 이 노선은 하필 서울 도심 집회의 '성지'만을 골라 지나기 때문이다. 주말마다 수만에서 수십만 명이 운집하는 대형 집회 탓에 주행 속도는 평소의 절반 이하고, 심한 경우 노선을 틀거나 운행을 멈추는 상황도 생긴다.

마라톤 같은 행사라면 예고라도 되지만, 집회는 그런 것도 없으니 언제 어디서 운행이 막힐지 모른다. 승객이나 기사 입장에선 그야말로 천재지변인데, 승객들의 원망과 불만도 기사에게 천재지변처럼 쏟아진다. 그는 "안 좋은 소리를 들으면 저도 속이 끓지만 별 수 있냐"면서도 "다만 기사들한테 모든 걸 맡기지 말고 운행 변경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해주거나 교통 통제를 적극적으로 해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한국일보

지난달 27일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가 열리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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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서울광장에서 한국교회 연합예배(주최 측 추산 110만 명)가 열린 것을 시작으로 2일 민주당 집회(30만 명), 9일 민주노총 집회(10만 명), 16일 민주당 집회(30만 명) 등 서울 도심에서 대형 집회가 4주 연속 열렸다. 집회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마땅하지만, 버스 노선 변경이나 운행 중단이 반복되면서 주말 이 일대를 지나는 시민들의 이동권이 매번 제한된다는 게 문제다. 긴급 상황에 매번 스스로 대처해야 하는 버스기사들의 고충도 상당하다.

승객 불만·유류비 증가 등 고충

한국일보

서울 집회·시위 개최 현황 및 교통 민원 접수 현황. 그래픽=박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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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갈등과 이념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해지면서, 서울 도심 집회와 시위 건수는 증가하는 중이다. 20일 경찰청에 따르면, 서울 시내 집회·시위 개최 건수는 2021년 1만4,942건에서 지난해 1만8,438건으로 23.4% 늘었다. 버스 이용에 불편을 겪었다는 교통 민원도 함께 증가했는데, 2021년 3,644건이던 버스 승하차 전 출발 및 무정차 통과로 인한 민원(서울시 교통불편 신고)은 지난해 4,819건(32.2% 증가)에 달했다. 올해 역시 지난달까지 집계된 민원만 4,100건을 넘어섰다.

버스 이용객들은 예측 불가능한 운행 탓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말마다 용산구 학원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탄다는 정모(26)씨는 "최근 몇 주 동안은 버스를 탔다가 예기치 못한 장소에서 갑자기 하차 통보를 받는 경우가 많아 지각도 늘었다"며 "기사님들에게 물어봐도 그저 모른다는 답만 돌아오고, 온라인을 통해 통제 지점을 파악할 수 있는 플랫폼도 없다"고 토로했다.

버스기사들도 매번 바뀌는 노선을 파악하고 승객들에게 알리는 일이 쉽지 않다. 특히 하루나 이틀 전에 긴박하게 공지가 되는 경우가 많아, 수정 노선도를 정류장이나 버스 안팎에 붙일 시간도 거의 없어 매번 구두로 알리는 중이다. 박정섭 삼청교통 대표는 "차 안에 공지문을 붙이고 승객에게 육성으로 안내하기도 하지만 매번 항의를 듣고, 운전 중에 안내하는 게 쉽지 않다"며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느닷없이 도로를 점거하기라도 하면 미리 붙여놓은 공지문도 무용지물"이라고 설명했다.

버스 업체들은 경제적 손실도 호소하고 있다. 서울 도심에서 일하는 버스기사 B씨는 "고속도로와 달리 시내 주행은 차가 움직이지 않고 멈춰 있으면 유류비가 더 나온다"며 "길에 기약 없이 서 있으니 기름을 더 많이 먹는다"고 말했다. 종로구를 중심으로 마을버스를 운행하는 삼청교통의 경우, 집회가 있는 날이면 하루 수입이 평소의 70% 정도로 감소한다고 한다.

"신속한 노선 변경 공지 필요"

한국일보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에서 열린 종교 단체 집회를 위해 경찰이 광화문 방면 도로를 차단하고 교통을 통제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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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선 변경 공지 주체인 서울시도 진땀을 빼고 있다. 노선 변경은 집회 신고서를 접수한 경찰이 시에 관련 공문을 전달하면, 시가 개별 운수회사에 통보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옥외 집회 및 시위는 시작 48시간 전까지 신고하면 되는데, 신고서가 촉박하게 제출되면 변동 사항을 알릴 시간이 부족하다. 서울시 관계자는 "다산콜센터와 교통정보센터 홈페이지 등을 통해 운행 정보를 알리고 있지만 시간이 부족해 매 정류장에 안내문을 부착하는 등의 방법을 시도하긴 어렵다"고 했다.

집회·시위 권리를 보장하면서 시민 불편도 최소화하기 위한 실시간 정보 검색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장재민 한국도시정책연구소장은 "집회·시위가 자주 개최되는 지역에선 노선이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상습 정체 구간' 등을 알리는 공지를 늘 부착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대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집회가 열리는 날 지자체에서 안내문자를 보내거나 민간 애플리케이션과 협업해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유진 기자 noon@hankookilbo.com
강예진 기자 ywh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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