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준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 |
“주 40시간 일해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80시간에서 100시간은 일해야 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X에 남긴 글이다. 80시간에서 100시간이라는 표현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지만, 필요할 때에는 몰입해 테슬라와 스페이스X라는 기업을 일궈내 본 경험이 있는 입지전적인 인물과 그 동료들의 이야기에 조금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세계적인 기술기업들은 시간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집중적인 연구와 노동으로 세상에 없는 기술과 제품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과연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집중 근로가 가능할까. 우리의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일주일에 최대 12시간까지만 연장근로가 가능하기 때문에 시도조차 불가능하다. 이는 국가 경제의 주요 축인 반도체, 바이오 등 첨단산업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산업들은 빠르게 진화하는 기술 환경에 발맞춰 혁신을 거듭해야 하지만, 주 52시간 근무 제한 등의 경직된 노동법 제도들이 이를 제약할 우려가 크다. 연구소든 공장에서든 주 100시간씩 일했다가는 당장 사업주가 철퇴를 맞게 될 것이다. 정부가 주 52시간제 틀을 유지하면서 연장근로를 위해 관리 단위를 유연화하겠다고 근로시간제도 개편안을 마련했지만, 여전히 주 최대 69시간을 넘어 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테슬라에서는 어떻게 주 100시간씩 일하는 게 가능한가. 그 답은 미국에서 시행 중인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에서는 10만7000달러 이상의 고소득자 중 관리, 행정, 전문, 컴퓨터, 영업직군 등에 종사하는 근로자에 대해서는 최대근로시간 상한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다. 시간에 따른 성과(시간외근로수당)를 강제하지 않는 대신 그 이상의 보상을 위해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시간 제약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제도다. 미국의 고소득 전문직들은 이러한 규제로부터 자유로워진 덕분에 실력과 성과에 따라 보상받는 문화 속에서 일하고, 이는 미국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공지능(AI)과 같은 첨단 산업에서 우리는 선도자가 아니라 추격자다. 선도자보다도 더 열심히 달려야만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테다. 그러나 추격자임에도 불구하고 주 52시간 근로 등의 경직된 노동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치열한 첨단산업 경쟁 현실에 대한 방관이다. 실리콘밸리와도 경쟁해야 하는 현실을 무시한 규제는 국가의 성장 가능성을 스스로 억누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작 우수한 A급 개발자들은 ‘미래의 대박’을 위해 먼저 나서서 초과근무를 원한다는데, 회사 대표는 이를 들어줄 수 없어 답답한 심경이라고 말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보상 없이 과도한 연장근로를 강요받을 수 있는 노동약자를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첨단 기술경쟁 시대에 우리는 산업과 직장을 가리지 않고 일률적인 노동시간을 강제함으로써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테슬라의 사례를 고민해 봐야 한다.
안태준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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