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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50년 전 사진 속 사람들, 다시 모여 같은 사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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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P사진기자가 찍은 ‘한장의 사진’

이번엔 사진작가 된 딸이 촬영

조선일보

1974년 7월19일 20대의 젊은이 12명이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은 친구의 생일을 맞아 ‘깜짝 이벤트’로 마련한 워싱턴 DC 내셔널 몰의 아침 식사 장면. 사진기자 해리 날차얀의 카메라에 포착되어 다음 날 워싱턴 포스트에 실렸다. (왼쪽) 50년 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진기자가 된 딸 조이스 날차얀 보그호시안이 2024년 7월 20일 참석자들을 같은 장소에 모아 되살린 아침 식사 장면. 12명 중 6명이 50년 전과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 /워싱턴포스트·조이스 날차얀 보그호시안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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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7월 19일 미국 워싱턴 DC 시내의 거대한 잔디 공원인 내셔널 몰(National Mall)의 리플렉팅 풀(Reflecting Pool) 앞에 남녀가 12명이 앉았다. 기다란 식탁에 앉은 20대 참석자 중 여성들은 발목까지 내려오는 드레스 가운을 입었고, 남성들은 정장이나 연미복 또는 해군 정복을 입었다. 이들은 굴과 샴페인을 들면서, 길게 늘어진 링컨 기념관의 그림자 속에서 현악 4중주단의 연주에 맞춰 춤을 췄고, 식사가 끝나자 부리나케 자리를 떴다.

이들의 식사는 워싱턴포스트의 베테랑 사진기자 해리 날차얀(Naltchayan)의 카메라에 포착돼 다음 날 이 신문 스타일 섹션에 ‘몰에서: 12명의 새벽 브렉퍼스트’라는 제목으로 큼지막하게 실렸다. 참석자들은 자신들이 찍힌 줄도 몰랐다. 이후 이 사진은 우주인의 달 착륙,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의 연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집무 사진 등과 더불어 워싱턴포스트를 상징하는 사진 중 하나가 됐다.

사진기자 날차얀의 딸 조이스 날차얀 보그호시안(Boghosian·56)이 50년 만에 이 사진 속 이벤트를 되살렸다. 35년간 포스트에서 일했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진기자가 된 딸은 1994년 숨진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이 사진을 접했고, 이후 사진작가로 유명해진 뒤 강연을 다닐 때면 아버지의 ‘내셔널 몰 아침 식사’ 사진을 전시했다.

작년 초 보그호시안은 한 비영리단체 초청으로 워싱턴 DC에서 강연하던 중 이메일을 받았다. 50년 전 아침 식탁에서 식사를 했던 사람이 청중 속에 있었던 것. 딸은 그날의 참석자들을 수소문해서 만났다. 이들도 각자 찍은 기념사진과 메뉴, 식사 초대장, 수석 웨이터가 보낸 감사의 편지까지 보관하고 있을 정도로 이날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

당시 참석자들은 대부분 연방 정부에서 함께 일하던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일행 중 재닛 할리가 27세가 됐을 때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자, 큰 충격에 휩싸였다. 친구들은 할리의 28세 생일을 앞두고 깜짝 선물을 하기로 했다. 몰을 관리하는 국립공원 관리청을 찾아가 ‘식사 이벤트’ 허가증을 받아냈다. 현악 4중주단을 부르고 음식을 주문했고, 그날 아침 자신들을 태울 리무진 2대를 준비했다.

할리에겐 모든 것이 비밀이었다. 당일 오전 5시 할리의 룸메이트 버저는 친구를 깨워 할리가 고교 졸업 축하 댄스 파티에서 입었던 옷을 내밀었다. 밖에선 할리의 남자 친구 웨슬리 윌리엄 콜린스가 마차를 타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이날 오전 7시, 친구 12명은 내셔널 몰의 리플렉팅 풀 앞에 차려진 식탁에 앉았다. 아침 안개 속에 긴 촛대에 불이 붙여졌고, 웨이터 2명이 분주하게 연어와 굴, 캐비아, 딸기, 대니시 빵 등을 제공했다. 이른 아침 출근하던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잠시 차를 멈추고 이들의 아침 식사를 구경하기도 했다.

50년이 지나, 기억은 조금씩 달라졌다. 당시 갹출한 비용은 총 2000달러가 넘었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는 지금 기준으로 약 1만2700달러(약 1768만원)라고 보도했다. 오전 9시 30분 파티가 끝나고, 모두 집에 가 옷을 갈아입고 출근하려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보그호시안을 만난 할리의 친구 도러시 웨일런(78)은 “사실 너무 벅차서, 거의 먹지도 못했다”며 “할리가 영원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날 모두 살아 있음을 함께 축하하는 우리만의 방식이었다”라고 말했다.

보그호시안은 이후 이들의 인생 얘기를 듣고도 놀랐다. 참석자 중 킹 목사와 함께 앨라배마주 흑인 인권 행진을 했던 힐턴 포스터는 웨일런과 결혼했고, 미 증권거래위원회의 변호사가 됐다. 둘은 딸에게 재닛 할리의 이름을 붙여줬다. 할리의 룸메이트였던 버저는 교도소 수감자들을 위한 교육 개혁에 일생을 바쳤다. 또 한 사람은 시각장애인의 권익 신장을 위해 싸웠다.

보그호시안은 반(半)농담으로 50년 전 사진을 재연하자고 제안했다. 모두들 처음엔 거절했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만나지도 못했는데 한번 모이자고 생각을 바꿨다.

이제 70·80대가 된 원래 멤버 12명 중 6명이 지난 7월 21일 내셔널 몰의 같은 자리에 놓인 식탁에서 50년 전 자기 자리에 앉았다. 참석자 중 제인 나이버트는 50년 전 옷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날 아침 수석 웨이터였던 팔머 맥 맥노턴은 50년 전 사진을 집 계단벽에 걸어 놓았다. 이날 식탁은 맥노턴의 두 아들이 차렸다.

4명은 참석을 못했다. 주인공이었던 재닛 할리는 1982년 4월 35세로 사망했다. 그는 교육·보건부에서 여성 교육 차별을 막는 활동을 했다. 마차에서 할리를 기다렸던 남자 친구 콜린스는 보건복지부 소속 법률가로 일하다가 2012년 사망했다. 또 다른 한 명은 시각장애인의 인권 변호사로 일했고, 2015년 숨졌다. 나머지 2명의 불참 사연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의 자리는 모두 빈 의자로 남겼다.

‘재연 식사’는 소박했다. 제과점 빵과 탄산수만 놓였다. 50년 전 사진기자의 딸 보그호시안은 이날 행사 계획을 워싱턴포스트에 알렸고, 아빠와 일했던 편집자가 이번엔 딸을 고용했다. ‘원본 사진과 최대한 흡사한 구도로 찍으라’는 지시도 내렸다. 내셔널 몰에서의 이날 아침 식사 허가는 신문사가 받아냈다.

50년 만에 성사된 한 시간의 모임이 끝났을 때, 아무도 집에 돌아갈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 모두 인근 음식점에 가서 식사하며 먼저 간 이들을 기리는 샴페인 건배를 했다. 이번엔 새 멤버가 추가됐다. 오리지널 사진을 찍었던 사진기자 해리 날차얀이었다.

[이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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