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4 (일)

[최준영의 Energy 지정학] 러·우 전쟁 끝나면 미국의 LNG 수출 잔치도 끝… 트럼프의 대책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EU가 수입한 LNG 중 미국産 비율

2020년 23%서 2023년 47%로 증가

러가 천연가스 수출재개땐 큰 타격

조선일보

그래픽=양인성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도널드 트럼프의 공약은 화끈하다. 그런데 하나씩 뜯어보면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다. 모순된다는 이야기다. 관세를 올리면서 인플레이션을 낮추고, 정부 지출을 대폭 축소하면서 동시에 많은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한다.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에너지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트럼프는 미국을 가장 저렴한 에너지와 전기료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 화석에너지와 관련한 모든 규제를 폐지하겠다고 강조해왔다. 규제가 풀리면 에너지 기업들이 더 많은 채굴과 생산에 나서면서 공급이 증가해 가격이 인하될 것이라는 가정이다. 그런데 기업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규제 완화보다는 이익이다. 미국 에너지 혁명을 주도했던 셰일 업계는 오랫동안 저유가로 어려움을 겪었다. 가격이 내려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와 같은 국영기업이 있으면 모를까, 민간 기업이 에너지 자원 탐사부터 생산까지 모든 것을 담당하는 미국에서 손실을 감내하고 증산에 나설 기업은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

그래픽=양인성


천연가스의 경우 상황이 더욱 복잡하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면 24시간 내에 전쟁을 끝내겠다고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 전쟁이 끝나고 러시아 가스가 다시 유럽에 공급되기 시작하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곳은 미국의 천연가스 업체들이다. 러시아는 PNG라고 불리는 파이프라인을 통한 천연가스의 EU 수출 대부분을 중단한 상태다. 러시아로부터 공급되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의 빈자리를 메운 것은 바다를 건너온 액화천연가스(LNG)였다. 러시아발 PNG가 사실상 막히면서 EU 천연가스 공급 가운데 LNG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1년 20%에서 현재는 42%까지 증가했다. 현재 유럽에 가장 많은 LNG를 공급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EU가 수입한 LNG 가운데 미국산 비중은 2020년 23%에서 2023년에는 47%까지 증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 천연가스 업계로서는 대규모 물량과 높은 가격을 보장하는 노다지였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미국은 카타르와 호주를 제치고 세계 1위의 LNG 수출국이 되었다.

PNG와 LNG 등을 모두 합쳐 EU가 사용하는 천연가스의 비중으로 따지면 미국은 노르웨이(30.3%)에 이어 19.9%로 2위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러시아 역시 14.8%로 3위의 공급 국가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어떻게 된 것일까? 러시아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LNG 방식으로 유럽에 가스를 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EU에 공급하는 천연가스 총량은 42.9bcm인데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가스관을 통해 오스트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에 25.1bcm 규모의 가스를 공급하고 있다. 친러시아적 성향의 국가에 대해서는 공급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나머지 17.8bcm 분량은 LNG로 EU에 수출되고 있다. 러시아도 확대된 EU의 LNG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EU에 대한 러시아 LNG 수출량의 87%는 프랑스, 스페인, 벨기에로 향하고 있다. 이 국가들은 23년 10월 카타르와 LNG 장기 도입 계약을 체결했지만 홍해를 항해하는 가스 운반선에 대한 후티 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안정적 공급이 어려워지자 러시아산 LNG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이렇게 EU로 수출된 러시아산 LNG가운데 20% 이상은 환적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재수출되고 있다. EU의 러시아에 대한 각종 제재가 시행되는 와중에도 다른 한쪽에서는 EU와 러시아의 협력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트럼프는 다시 러시아가 유럽에 파이프라인을 통해 천연가스를 자유롭게 공급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는 이미 대통령 재임 시 러시아와 독일을 연결하는 노르트스트림 2 건설이 완료되면 독일이 러시아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된다고 강력히 경고했고, 건설에 관련된 업체들을 제재하여 사업을 중단시킨 바 있다. 대통령으로 돌아온 트럼프로서는 EU를 군사적으로 지켜주고 싶지는 않지만, 미국산 천연가스의 좋은 수요처로서는 계속 남겨놓고 싶을 것이다. EU 역시 러시아에 대한 과도한 의존의 결과를 체감했기 때문에 무조건 전쟁 전으로 돌아가기는 쉽지 않다.

미국산 LNG에 대한 EU의 수요가 계속 유지되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관세 부과 위협에 직면한 여러 국가들이 미국산 LNG 수입 확대를 언급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미국산 LNG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업체들로서는 국내보다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LNG 수출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천연가스 생산은 증가하더라도 국내 공급이 감소하면서 미국 내 천연가스 가격은 상승하게 된다. 트럼프의 구상과는 반대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트럼프로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과 국내 천연가스 가격 인하, 그리고 미국 천연가스 업계의 이익 유지라는 3가지 요소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러시아의 LNG 관련 제재 해제를 카드로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의 북극 LNG 생산시설에 대한 각종 제재를 통해 가동을 중단시키고 있는데 이를 해제함과 동시에 EU에 대해서 파이프라인이 아닌 LNG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러시아산 도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다. 러시아의 체면과 경제적 이익을 일정 부분 보장해줌과 동시에 미국산 LNG에 대한 과도한 해외 수요를 적절히 축소시켜 미국 내 천연가스 가격 인하를 유도하는 것이다. 최근 정부는 트럼프의 통상 압박에 대비해 미국산 LNG 도입 확대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런 조치의 영향에 대해 보다 폭넓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LNG는 미국과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EU와 러시아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한 고차방정식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한국도 쓰고있다… 작년 LNG 170만t 수입

천연가스를 영하 162도로 냉각시켜 액화시킨 LNG는 부피를 600분의 1로 줄일 수 있어 장거리 수송에 유리하다. 하지만 냉각하고 다시 기체화하는 작업, 특수한 LNG 운반선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파이프라인 방식에 비해 2~3배 비싸다.

유럽으로 파이프라인을 이용해 가스를 수출하던 러시아는 LNG 분야에 2000년대 들어 후발 주자로 참여했다. 새로 발견되는 가스전 위치가 북극권 또는 도서 지역과 같이 파이프라인 설치가 곤란한 지역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이를 수출하기 위해서는 LNG 방식의 채택이 불가피했다. 이를 통해 러시아는 급성장하던 아시아 LNG 시장에 본격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러시아 LNG는 카타르 등 경쟁국에 비해 생산 거점이 북극권에 위치해 생산 비용이 높다. 또한 겨울에 얼어붙는 북극해를 겨울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쇄빙 LNG 운반선을 확보해야 하는 등의 약점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 LNG는 서방기업의 기술과 장비에 의존했는데 2014년 크림반도 병합 이후 서방 기업의 철수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러시아는 자체 기술확보를 위해 투자를 늘리고 있으며, 중국으로부터의 설비 도입을 확대하고 있다.

2009년에 사할린에서 연간 960만 톤 규모로 시작된 러시아 LNG 생산은 2018년 야말에서의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급증해 2023년 말에는 3233만 톤에 달했고, 생산량 거의 전부가 수출되고 있다.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의 LNG 수입 국가인 대한민국은 2023년 전년 대비 13% 감소한 170만 톤의 러시아 LNG를 도입했다. 멀게만 느껴지는 러시아 천연가스를 우리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