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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양상훈 칼럼] 이재명은 트럼프가 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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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잇따른 유죄 불구하고

지지율 안 흔들리면

李도 안 흔들려

그의 정치 생명은

판사 아닌 여론이 결정

李, 재판 지연 작전 펴며

대통령 국민 선택권 주장할 것

조선일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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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선거법 위반으로 1심에서 징역 1년(집행유예 2년)형을 받았다. 위기다. 지금 이 대표에게 가장 위안을 주는 사람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일 것이다. 트럼프 역시 모두 4건의 형사사건으로 91가지 혐의를 받는 상태에서 대선에 출마했고 당선까지 됐기 때문이다.

소셜미디어 시대의 현대 선거 민주주의에서 유권자들은 갈수록 윤리나 정의 같은 가치를 높이 두지 않는 경향을 보이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트럼프의 당선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광적인 트럼프 지지자들이 부정선거를 주장하며 미국 의회를 점거하는 초유의 폭동을 일으켰고 사람이 5명이나 사망했다. 그중 한 사람은 경찰관이었다. 그런데 이번 미 대선을 앞두고 연방 대법원은 트럼프의 대통령 면책특권이 인정된다며 이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결과적으로 미국 대선 전에 관련 판결이 나올 수 없게 만들었다.

트럼프는 성매매를 폭로하려는 여자를 회사 자금으로 입막음했다는 혐의로 배심원단 만장일치 유죄 평결을 받았다. 하지만 판사는 아직까지 판결을 내리지 않고 있다. 이제 트럼프가 당선됐으니 사건 자체가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트럼프는 조지아주 개표 결과를 뒤집으려 한 범죄 집단 결성 혐의까지 받고 있다. 과거의 미국이라면 트럼프는 출마가 아니라 사회에서 매장됐을 것이다. 그런데 압도적으로 승리했고 미국 상·하원 선거도 다 이겼다.

대부분이 힐러리 승리를 예상한 2016 대선에서 트럼프 승리를 예측한 미국 내 한국인 사업가 한 분을 안다. 이분은 이번 선거도 초반부터 트럼프의 승리를 전망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 백인들이 트럼프의 범죄 혐의들에 대해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국인과 선거 얘기를 잘 안 하려 한다고도 했다. 트럼프 현상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면서도 표는 트럼프에게 줄 것 같았다고 했다. 실제로 윤리나 정의를 생각하는 미국인보다 불법 이민과 높은 물가에 분노하는 미국인이 많았다.

이재명 대표에게 윤리나 정의의 잣대를 대면, 많은 혐의를 받는 이런 사람이 대선에서 불과 0.7%포인트 차로 석패하고, 곧바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되고, 그 직후 당대표에 당선되고, 다시 국회의원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 한국에서도 이 대표의 온갖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지해야 할 다양한 이유를 가진 사람이 그만큼 많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대표에 대한 선거법 판결은 이 대표의 행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겠지만 결정적 변수가 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이 대표에게 결정적 변수는 판사의 판결이 아니라 여론 동향이다. 이번 판결에 이어 4일 뒤 위증 교사 판결에서 다시 유죄가 됐을 때 이 대표의 지지율이 추락하거나 지속적으로 하락하면 그것으로 이 대표의 정치 생명은 끝날 것이다. 반대로 잇따른 유죄 판결에도 지지율이 흔들리지 않으면 이 대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에서 이 대표에게 반기를 드는 세력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본다. 지난 총선 공천 때 이 대표가 반대파를 대부분 숙청한 탓에 지금 민주당은 사실상 ‘이재명의 아성’이다. 이 대표를 지지하는 일반 국민은 이 대표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윤석열 정권에 대한 반감 때문에 지지하는 쪽이 많은 것 같다. 따라서 이들은 윤 정권을 끝낼 유력한 다른 주자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계속 이 대표를 지지할 가능성이 있다.

이 상황에서 이 대표의 최대 과제는 재판을 지연하는 것이다. 2027년 3월 대통령 선거 전에 대법원 유죄판결이 확정되면 대선에 출마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북 불법 송금 사건과 대장동 사건 재판은 진행을 볼 때 그때까지 대법원 판결이 어려워 보인다. 대선 전에 대법원 판결이 날 수 있는 사건은 이번에 1심 선고가 난 선거법 위반과 4일 뒤 선고가 예정된 위증 교사 사건이다.

두 사건이 대선 전에 대법원 판결이 날 수 있느냐는 것 역시 판사가 아니라 여론 동향이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일반적 형사사건은 2심을 거쳐 대법원까지, 끝나는 데 보통 1년 정도 걸린다. 2026년 봄엔 대법원 판결이 나올 수 있다는 얘기지만 이재명 사건은 과거 사례로 판단하기 어렵다. 대선이 가까워지면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선택권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트럼프식 논리가 반드시 대두할 것이다. 이 대표가 지금의 대선 주자 1위 지지율을 계속 유지하면 판사가 그의 출마 자체를 막는 결정을 내린다는 것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결코 쉽지 않다.

이 대표는 2026년 7월쯤 시작될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당길 수도 있다. 빨리 민주당 대선 후보가 돼버리면 대법원은 야당 대표가 아니라 ‘제1당 대선 후보’의 출마 자격을 박탈하는 결정을 내려야 하게 된다. 보통 문제가 아니다. 반대로 이 대표 지지율이 추락하면 어느 순간 이 대표 재판은 대중의 관심에서도 사라질 것으로 본다.

앞으로 이 대표 지지율은 유죄판결의 지속 여부와 그 형량, 그리고 윤 대통령 지지율 추이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오르면 이 대표 지지율에 악재다. 어느 경우든 이 대표의 정치 생명은 판사가 아니라 여론이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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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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