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우크라 전쟁 끝내며
김정은·푸틴 불러 만날 수도
예측 불허의 트럼프 2기에
‘외교적 상상력’ 총동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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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호텔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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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 특종 기자 밥 우드워드가 2019년 도널드 트럼프를 인터뷰했을 때다. 그가 2018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미·북 정상회담에 대해 물었다. 트럼프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발언은 예상 밖이었다. “카메라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있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카메라를 봤는데 모두 공짜였다. 6억달러 가치의 기사에 내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았다.” 우드워드는 김정은을 만난 소감을 물었는데, 트럼프는 1달러도 쓰지 않고 엄청난 홍보를 했다고 자랑했다.
이 동문서답은 두 측면에서 트럼프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해주는 에피소드다. 첫째, 트럼프는 공짜로 자신을 홍보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 둘째, 트럼프는 대한민국 국민의 사활이 걸린 북한 비핵화엔 관심이 없다.
이런 캐릭터의 트럼프가 다시 당선된 후, 전 세계의 ‘최고 질서 파괴자(disruptor-in-chief)’로 빠르게 등장하고 있다. 충격 일색의 내각과 백악관 주요 인사를 매일같이 발표하며 미디어를 장악한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안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빅3′는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국무·국방 장관이다. 트럼프가 찍은 빅 3는 어디서도 거론된 바 없다. 윤석열 정부가 그동안 접촉해 왔던 이들 중에서 트럼프의 외교·안보 라인업에 들어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트럼프를 이해하기 위한 트럼프학(Trumpology)의 요체는 전통적인 사고를 빨리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불가능해 보이거나 그동안 사고(思考)하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는 ‘외교적 상상력’을 총동원해야 한다.
트럼프의 대외 정책 1순위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그는 자신이 당선되면 하루 만에 전쟁을 종결시키겠다고 공언해 왔다. 그러나 현재 전황(戰況)은 더 복잡해졌다. 미국이 지원한 에이태킴스(ATACMS·미 육군 전술 미사일 시스템) 미사일의 러시아 본토 공격이 현실화했다. 러시아와 ‘혈맹’ 관계를 복원한 북한군 1만여 명 파병도 무시 못 할 변수로 등장했다.
트럼프라면 이런 상황에서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접근법을 구사할 수 있다. 최근 정부 고위 관계자가 언급한 미·북·러 정상회담이 그중 하나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 중인 푸틴과 김정은을 한꺼번에 불러서 휴전안을 끌어내는 모습은 전 세계의 관심을 끌어모을 것이다. 푸틴이 휴전하게 하면서 자신과 김정은의 회담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라고 제안할 수도 있다.
트럼프식으로 표현한다면, 이미 그는 김정은과 북핵을 핑계로 세 차례 만나서 ‘재미를 좀 봤다’. 북핵 문제로 단순히 둘이 만나는 그림에 식상해 있다. 1만명 넘게 파병한 김정은의 고민은 향후 어떻게 철군하느냐는 것인데, 트럼프가 이를 파고들어 거래할 수도 있다. 그 결과, 현재의 주한 미군 2만8500명이 ‘제로’가 돼 1950년 ‘애치슨 라인’과 유사한 ‘트럼프 라인’이 생길 가능성은 없나.
터무니없는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017년 처음 취임한 트럼프가 김정은을 싱가포르, 하노이에서 두 번 만나는 것을 상상이나 했나. 트럼프가 2019년 6월 오사카 G20 회의 참석 후, 갑자기 트위터로 김정은에게 만나자고 제안한 후 바로 그다음 날 판문점에서 회동한 것은 또 어떤가.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최근 “김정은은 서울 거치지 않고 워싱턴 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지만, 트럼프는 이를 충분히 허언(虛言)으로 만들 수 있는 인물이다.
트럼프 2기의 전 세계 지도자들은 아마도 역사상 가장 힘든 대통령, 총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중에서도 ‘외교적 상상력’을 총동원해 고난도 기술을 펼쳐 보여야 하는 지도자 명단의 최상단에 윤석열 대통령이 위치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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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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