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포 매년 감소…‘은행대리업’ 허용될까
장면. 70대 A씨는 최근 자녀 상속 문제로 은행에 상담받으러 집을 나섰다 낭패를 봤다. 종종 이용하던 은행 지점이 없어져서다. A씨는 “예금 인출 같은 기본 업무는 물론 볼 수 있지만 이처럼 금융 상담을 해야 할 때 난감하다”면서 “모바일 앱을 깔고 예금 대출 기능을 활용해보라고 하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고 말했다.
고령화와 급격한 디지털 전환 등으로 금융권에서 디지털 소외계층 문제가 화두가 되고 있다. 대형은행은 모바일 앱 중심으로 사업 방향을 재편하면서 비용 절감을 위해 일선 점포를 대거 줄이고 있다. 10월 중순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 점포 수는 최근 5년간 707개나 줄었다(금융감독원 금융정보통계시스템 자료). 간단한 일상 업무를 볼 수 있는 ATM(자동화기기) 역시 같은 기간 5459개나 급감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은행대리업 필요성에 공감하고, 어떻게 운영하면 좋을지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매경DB) |
금융 접근성 왜 중요한가
금융 소외…문맹 가속화
문제는 주로 각 은행 지점을 통해 거래를 해오던 고령층 등 금융 취약계층이다. 이들의 은행 접근권이 현저하게 떨어지게 되면서 ‘금융 문맹’ 현상이 가속화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가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실제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금융이해력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금융 태도 점수는 56점을 기록했다. OECD 평균(58점)보다 낮은 수준이다. 전 연령층에서 공히 나타나는 이 현상은 자칫 금융 경쟁력 약화, 관련 범죄 급증 등 다양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특히 사회 문제로 비화하고 있는 고령층의 금융사기 피해,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사건 등이 이를 방증한다. 특히 ELS 등 대형 파생상품 불완전판매로 재산의 상당수를 잃은 고령층이 노인 빈곤, 자살 등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리는 사례도 빈번하다.
한은은 대안으로 ‘금융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지만 대면 거래에 익숙한 디지털 소외계층에게 상황은 불리하게 흘러가는 모양새다.
더불어 각 은행이 신규 수익원을 놓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요 은행은 수도권보다 지방 점포를 더 빠른 속도로 줄이고 있다. 금감원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수도권은 19% 감소, 비수도권은 21% 줄었다.
그런데 이는 최근 인구 동향을 간과한 전략이라는 지적이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 수는 251만명, 올해 상반기에는 260만명으로 늘어났다. 대구시 인구보다 많고 경상북도 인구와 맞먹는 수준이다. 이들 외국인 역시 국내 디지털 금융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대신 오프라인 거래를 선호한다. 그런데 외국인 특화 점포는 10월 기준 32곳에 불과하다. 현장에서는 환전, 외화 송금 등 관련 수요가 늘어나는데 은행 본사에서는 이런 시장 변화를 잘 읽어내지 못한다는 외부 평가가 꽤 많다.
은행권 공동 점포 있지만
현실적인 대안 되기 어려워
정부는 이런 현상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다양한 대안을 마련하려는 분위기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최근 임원회의에서 “최근 금융의 디지털화 등으로 은행 점포와 ATM 감소 현상이 지속되고 있어 고령자·장애인 등을 위한 금융 접근성 제고를 주요 금융감독 어젠다로 설정해 적극적으로 관리해달라”고 말했다.
대안 중 하나가 은행권 공동 점포다. 은행권 공동 점포란 말 그대로 여러 은행이 한곳에 모여 고객 입장에서 ‘원스톱’으로 금융 업무를 볼 수 있게 만든 곳. 정부 권고로 2022년 4곳이 문을 열었다. 문제는 이후 활성화가 안 됐다는 점이다. 공동 점포는 이듬해인 2023년 대전에 KB국민·한국씨티은행 공동 점포 1곳이 문을 연 이후 추가 개설 소식이 없다. 일부 은행은 버스를 활용한 이동점포를 운영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회성, 이벤트성인 경우가 많다.
디지털 기술 발달에 따라 은행원은 두지 않지만 일단 지점에 입장하면 원격으로 업무를 볼 수 있는 무인 디지털 점포 등도 대안으로 떠오르기는 한다. 하지만 이런 업태 역시 각 은행이 시범 사업 형태로 운영하고 있고, 실제 이용률도 저조하다 보니 은행 입장에서 관련 지점 확대를 꾀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현실적 대안…은행대리점
일본, 호주는 이미 활성화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은행대리점이다. 은행 역시 점포를 전국 개인사업자에게 ‘아웃소싱’하는 개념이 은행대리점이다. 이미 일본, 호주, 브라질 등에선 이런 제도를 운영, 금융 소외를 막고 있다. 특히 호주는 80여개 은행이 우체국과 연계, 3500여개 은행대리점을 운영, 지방 경영 공백을 줄이고 있다. 일본도 2002년 일찌감치 이 같은 제도를 도입했다. 하나금융연구소의 최근 보고서(‘은행대리점이 변화시킬 금융 산업의 모습은?’)에 따르면 한국 역시 편의점, 우체국, 소매상점 등을 연계, 기본적인 은행 업무를 볼 수 있게 제도를 고치면 금융 소외계층을 줄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은행 경영 효율성 측면에서도 이득이 많다. 은행대리업자는 사실상 은행 지점 기능을 수행하기에 은행 관리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또 은행은 은행대리업자에게 일정한 판매 수수료를 지급하면 되고, 은행대리업자의 운영 비용을 부담할 필요는 없기 때문에 지점 운영에 비해서 훨씬 비용이 적게 드는 장점이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은행대리업 제도와 규제 법적 쟁점(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보고서에서는 “은행 입장에서도 지점을 설치하지 않고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은행의 영업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은행 외 금융권에서는 이미 이런 제도를 활용해 영업을 하고 있다. 우체국의 우편취급국 사례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우편취급국은 일정 자격을 갖춘 개인사업자가 편지, 택배 접수 등 기본적인 업무를 우체국 대신 처리해주고 수수료 수익을 올리는 일종의 가맹점이다.
보험업에서도 보험대리점(GA) 제도가 이미 활성화돼 있고 금융투자업에서도 법적으로 금융투자업자의 위탁을 받아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투자 권유를 대행하는 투자권유대행인(FA) 제도가 있다. 삼성증권만 해도 SFC(삼성 재무 컨설턴트·Samsung Financial Consultant)라는 이름의 투자권유대행인·모집인을 약 3500명 가까이 운영, 고객 자산 7조원을 모은 바 있다.
변수는?
은행법 개정해야
이런 제도가 현실화하려면 결국 은행법을 개정해야 한다. 마침 금융위원회는 개정안을 연내 마련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금융감독당국은 우체국처럼 예·적금을 취급하고 있는 기관에서 대리업을 하겠다고 나서면 신고만으로 영업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고칠 예정이다. 그 밖의 대리업을 원하는 사람 혹은 법인은 금융감독당국이 인가제로 운영하겠다는 입장. 보험대리점처럼 여러 은행 업무를 대리할 수 있게 할 방침이다.
고동원 교수는 “새로운 제도인 만큼 은행대리업자에 대한 영업행위 규칙을 규정해 은행대리업자가 불건전한 영업행위를 하는 것을 막는 장치를 둘 필요가 있다”면서 “감독당국이 은행대리업자에 대한 업무 개선 명령과 제재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고, 고객 재산과 고유 재산의 분별 관리 의무, 명의 대여 금지 조항, 고객에 대한 고지 의무 등을 명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5호 (2024.11.20~2024.11.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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