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이 지난 13일 서울 중구 소재 식당에서 매일경제와 만나 "도널드 트럼프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만 할 게 아니라 트럼프가 혹할 만한 한미 협력 방안을 선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한주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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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전 국회 사무총장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대선 승리와 관련해 "수세적으로 대응할 게 아니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마음을 사로잡을 한미 협력안을 우리가 선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20일 조언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정부와 기업 얘기를 들어보면 관세 폭탄, 방위비 증액 등 트럼프의 어젠다를 놓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급급한 것 같다"며 "신장된 대한민국 국력을 기반으로 우리가 한미 관계의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일론 머스크, 피터 틸 등 트럼프 2기의 핵심 실세로 자리매김한 젊은 기업인들을 한국으로 서둘러 초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정치권의 대표적인 정책통이다. 정치권을 떠나 있을 때는 민간 정책 싱크탱크인 여시재 원장을 맡아 과학기술에 기반한 국가 어젠다를 마련했다.
다음은 "트럼프 2기는 한국 경제와 안보에 기회가 될 것"이라는 이 전 사무총장과의 일문일답.
-트럼프 2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은데.
▷우리 사고 속에는 국제 경제·안보 지형에서 우리가 새로운 체계를 만들 수 있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 곧 출범할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이밀 요구안에 어떻게 대응할지에만 골몰하면 내내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지금은 세계질서 재편기다. 여기에서 승리해야 우리가 질서 재편에 동참하고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다. 우린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다. 따라서 경제와 기술, 안보와 평화를 따로 떼어놓아선 안된다. 한국의 미래를 고민하는 지도자라면 경제 발전과 안보 강화를 동시에 달성할 국가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경제와 안보를 동시에 가져가는 전략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우린 한미가 함께하는 첨단 산업 프로젝트에 기반해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 반도체 기업 TSMC가 대만을 보호한다고 하지 않나. 우리는 미국 전략 산업을 유치해 미국이 한국을 지킬 수밖에 없도록 경제 전략을 짜야 한다. 한미가 윈윈할 수 있는 퍼즐 조각은 많다. 나는 액화천연가스(LNG), 소형모듈원자로(SMR), 데이터센터, 통신 분야에서 윈윈이 가능하다고 본다.
-LNG 분야부터 얘기해보자.
▷한·미·일 에너지 협력이 가능하다.한국과 일본은 매년 각각 50조원, 70조원어치 LNG를 수입하지만 여기에서 미국산 비중은 미미하다. 미국은 현재 알래스카에서 대규모 LNG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 최우방국인 한일이 함께 미국산 LNG를 구매하겠다고 하면 개발 후 판매처를 고민하고 있는 미국이 적극 협력할 공산이 크다. 공동구매로 구매력이 커져 매입 단가도 낮출 수 있다. 미국산 LNG를 한일 양국에 공동 비축해 미국이 자국 LNG를 동남아시아로 판매하기 위한 중간 저장소 역할까지 맡는다면 우리 안보도 자연스럽게 강화된다.
-트럼프가 아무리 화석에너지를 강조한다고 해도 탄소 감축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데.
▷원자력발전 분야에서도 협력 여지가 크다. 미국은 SMR 설계 기술을 갖고 있고, 우린 제조 기술을 갖고 있다. 그런데 단순히 설계와 제조 협업에 그치면 우리가 주도권을 쥐기 힘들다. 미국이 에너지와 관련해 가장 고심하는 분야가 무엇일까. 데이터센터다. 인공지능(AI) 혁명을 맞아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데, 데이터센터는 말 그대로 전기 먹는 하마다. AI 구루인 피터 틸이 '전기 단가가 낮은 나라가 산업혁명에 성공한다'는 말을 했다. 미국 데이터센터를 한국으로 유치하면서 여기에 싼값에 전력을 공급할 SMR까지 지어주겠다고 하면 미국이 거부하기 힘든 제안이 될 것이다. 미국은 데이터센터를 전 세계에 분산 배치하려는 수요가 있다.
-일론 머스크가 트럼프 2기 실세로 자리매김했다.
▷머스크의 위성통신 사업 회사인 스타링크가 내년에 한국 서비스를 시작한다. 미국 저궤도 위성과 한국 5세대(5G)·6G 통신 네트워크 서비스를 결합하면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우리 5G·6G 기술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수준이다. 중국 정도가 우리와 견줄 수 있는데, 미국이 중국과 통신 동맹을 맺을 수 없지 않나. 트럼프 측에 한미 통신 동맹을 제안해야 한다. 한국의 기술 네트워크가 육상 통신을 맡고, 머스크의 스타링크가 공중 네트워크를 맡으면 빈틈없이 촘촘한 통신 서비스를 전 세계에 제공할 수 있다.
-AI 분야에서 한미가 함께할 접점이 있을까.
▷유엔이 최근 AI 글로벌 표준화 작업에 나서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AI 표준화를 놓고 각국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거다. 특히 표준화 선점을 놓고 미·중이 사활을 걸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여러 국가가 AI 표준화 기구를 자국으로 유치하기 위한 제안서를 유엔에 제출할 것이다.
우리는 우선 정부 내 AI 표준화를 위한 조직을 만들고 준비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트럼프 2기 기술 정책을 주도할 머스크와 틸을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으로 정식 초청해야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초고속인터넷망 정책을 본격화하기 전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초청해 만남을 가졌다. 머스크와 틸은 미 정부의 효율화를 목표로 AI 정부를 추진해나갈 것이다. 이들을 상대로 AI 표준화 기구를 한국에 유치하기 위한 설득에 나서야 한다. 하다못해 아시아 본부라도 꼭 유치해야 한다. 경제뿐 아니라 안보 강화를 위해서라도 꼭 달성해야 하는 국가적 과제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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