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지방법원. 누리집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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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시위대 해산 임무에 투입돼 총상을 입고, 동료들의 부상과 죽음을 목격한 일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진단을 받은 공수부대원이 국가유공자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행정1부(재판장 민지현)는 최영수(66)씨가 강원서부보훈지청장을 상대로 낸 국가유공자 등록 거부 처분 취소 행정소송에서 1심의 원고 패소 판결을 뒤집고 승소로 판결했다.
1980년 11공수특전여단 소속 군인이었던 최씨는 5·18 민주화운동을 불법 시위·소요 사태 등으로 규정한 군 상부의 진압 명령에 따라 경계·정찰 임무에 투입됐다. 그곳에서 시위대가 발포한 총기의 유탄이 왼쪽 팔에 박히는 상처를 입었다. 또 함께 직무를 수행하던 부대원이 정강이에 총상을 입고, 또다른 부대원 2명이 장갑차에 깔려 숨지는 모습을 목격한 뒤 주검을 수습하는 일까지 맡았다. 이후 응급처치를 받은 상처가 악화돼 병원으로 후송됐으며, 다음해 7월 전역했다.
37년이 지난 2017년 10월 최씨는 강원서부보훈지청에 “임무 수행 중 왼쪽 팔에 골절상을 입고, 전우들의 부상과 사망을 지켜보았으며 그 후유증으로 정신적 분노조절 장애를 입게 됐다”며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했다. 최씨가 행정소송을 냈던 2017년은 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가 흥행하며 진압군을 향한 부정적인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고, 군 동기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까지 들었던 시기였다.
그의 신청을 심사한 보훈지청은 2018년 1월 골절상에 대해서는 국가유공자에 해당한다고 결정했지만, 정신적 분노조절 장애는 국가유공자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최씨는 보훈지청의 결정에 불복해 이의를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행정소송을 냈다.
1심을 맡은 춘천지법은 군 직무수행과 최씨의 정신적 분노조절 장애 간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증거도 없다고 판단했다. 또 최씨의 증상은 직무수행이 아니라 민주화운동 진압군에 대한 비판 여론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판단해 최씨의 주장을 기각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최씨가 현재 겪고 있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단순히 최근 형성된 5·18민주화운동 관련 여론 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원고의 과거 직무수행으로 인해 유발된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최씨가 최근에 겪은 일(영화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재노출된 점과 진압군에 대한 부정적 여론 형성)로 인해 더욱 악화된 것이 더욱 타당하다고 봤다.
보훈지청이 상고장을 제출하지 않으면서 이 판결은 지난 14일 확정됐다.
최씨는 “당시 사태로 생긴 병인지도 모르고 숨기고 살면서 힘들어하는 동지들이 구제되어 사회의 진정한 구성원으로서 봉사하면서 살 기회를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씨쪽 변호인은 “최씨는 민주화운동 초기 총상을 입어 후송되면서 강경 진압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22살 어린 나이에 명령을 따라 광주에 갔다가 총을 맞았고 동료들의 죽음까지 목격했다. 최씨는 전역 이후 평생을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라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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