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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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관계 장면을 찍은 불법 촬영물이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상대를 협박했다면, 성폭력처벌법이 아닌 형법상 협박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살인, 성폭력처벌법·스토킹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남성 A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을 지난달 25일 이 같은 취지로 확정했다. 80시간의 스토킹 치료 프로그램 이수 명령도 확정됐다.
A씨는 작년 5월 경기 안산시의 한 모텔에서 연인으로 사귀다가 헤어진 B(25)씨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A씨는 피해자가 이별 후 연락을 받지 않자 481차례 전화, 문자 등을 남겨 스토킹을 하고, 피해자 몰래 찍은 성관계 영상 등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의 쟁점은 A씨가 갖고 있다며 협박한 성관계 영상 등이 실재했는지, 성폭력처벌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였다. 불법 촬영물을 이용해 협박하는 범죄는 성폭력범죄처벌법상 촬영물 등 이용 협박죄가 적용돼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 그러나 일반 형법상 협박죄의 경우 1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으로 형량이 낮다.
A씨는 B씨에게 겁을 주기 위해 소지한 적 없는 불법 촬영물을 유포할 것처럼 거짓말했다고 주장했다. 형량이 더 낮은 협박죄로 처벌받기 위해 영상이 없다고 한 것이다. A씨의 휴대전화에서 해당 촬영물은 발견되지 않았고, 피해자가 생전 수사 기관에서 한 진술에 따르더라도 A씨가 해당 촬영물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검찰은 “A씨가 ‘포렌식’, ‘복구’ 등을 언급하고, 영상 내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피해자를 협박했다”며 성폭력처벌법으로 처벌해달라고 했다.
1심은 불법 촬영물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행위에 대해 형법상 협박죄만 적용했다. 다만 1심 재판부는 “촬영물 유포는 인격 살인에 버금갈 정도로 피해자에게 고통과 공포심을 주는 사실, 실제 A씨가 몰래 촬영한 성적 촬영물이 존재한다고 의심한 피해자가 겪었을 정신적 고통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범행은 (성폭력처벌법상) 촬영물 이용 협박에 준할 정도로 비난 가능성이 높다”고 질책했다. 살인, 협박 혐의 등이 유죄로 인정된 A씨는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2심도 1심처럼 일반 협박죄를 적용하는 것이 맞는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성폭력처벌법상 촬영물 등 이용 협박죄가 성립하려면 협박 행위에 이용된 성적 촬영물이 실제로 존재해야 하고, 촬영물이 존재하는 것처럼 가장하거나 기망한 경우는 포함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 촬영물 등 이용 협박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앞선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협박범이 과거 성적인 촬영물을 실제로 가지고 있었다면 협박 당시 소지·유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더라도 촬영물 등 이용 협박죄가 성립한다. 다만 A씨처럼 촬영물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입증되지 않은 사례에는 성폭력처벌법으로 처벌이 어렵다고 한다.
[방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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