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시각) 이스라엘 남부 케렘 샬롬 교차로에서 구호트럭이 가자 지구로 향하는 인도주의적 물품을 싣고 떠나고 있다. 케렘샬롬/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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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와 배고픔과 싸우고 있는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전해져야 하는 식량 등 물품을 공급하는 호송트럭 109대가 습격을 받아 97대가 사라졌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는 유엔·구호단체의 메모와 증언을 토대로 가자 주민들을 위한 구호품을 약탈하는 갱단(폭력조직)이 이스라엘 통제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며 이들과 이스라엘군의 연관성을 제기했다.
18일(현지시각)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UNRWA)는 소셜미디어 엑스(X)에 “16일 가자 주민들을 위한 식량 공급 트럭이 약탈당했다. 총 109대 중 97대 트럭이 사라졌다. (약탈자들은) 운전자들에게 총구를 겨누었다”며 “밀가루 부족으로 가자 중부 다이르알발라흐와 남부 칸유니스에 있는 유엔 지원 빵집 8곳이 모두 몇 주 동안 원료를 줄여 사용하는 등 많은 빵집이 문을 닫아야 했다. 즉각적인 개입이 없다면 식량 부족 문제는 더 심화돼 생존을 위해 인도적 지원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200만명 이상 사람들의 삶이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스라엘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하고 안전한 구호품 전달을 촉진하기 위해 국제법에 따른 법적 의무를 계속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대변인도 이 사건을 가자지구에서 발생한 최악의 약탈 사건이라고 짚었다. 그는 이집트 국경 근처인 가자 남부 케렘 샬롬 검문소를 통과해 창고에 도착한 트럭이 11대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약탈에 나선 이들이 트럭의 연료와 배터리까지 훔쳐갔다고 보도했고, 영국 비비시(BBC)는 목격자들의 말을 인용해 가면을 쓴 남자들이 수류탄을 던져 호송트럭을 위협하고 공격했다고 전했다.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가 18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 엑스(X)에 올린 글. 109대 중 97대가 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내무부는 구호품을 약탈하는 폭력집단을 표적으로 삼은 진압 작전에서 조직원 20여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보도했다. 그러면서 하마스는 “구호트럭 도난은 (가자지구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도난 사건 등에 연루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단속을 강화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내실향민협회(IDCA·Internally Displaced Civilians Association) 대변인은 영국 일간 가디언에 “더 나은 도로를 이용해 이동하는 안이 반복적으로 제안되었지만 이스라엘이 단기간에 (단 하나의 도로만을 이용해) 움직이도록 하는 등 이런 모든 요청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군이 구호품 약탈과 관련됐다는 정황도 포착된다. 워싱턴포스트는 유엔 내부 메모를 확인하고 구호단체 관계자 등 20명을 인터뷰한 결과, 갱단의 한 리더가 “이스라엘방위군(IDF)이 제한하고 통제하고 순찰하는 지역에 군대와 같은 단지를 조성했다”며 이스라엘군이 갱단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거나, 방관시하며 활동을 인정하고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격 현장이 보이는 곳에 있는 이스라엘군도 약탈이 진행되는 동안 개입하지 않았다는 현장 관계자들의 발언도 나왔다. 루이스 워터리지 유엔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 대변인은 뉴욕타임스에 약탈한 이들이 누구인지 확인하기도 어렵다며, 이스라엘 당국이 가자지구 내 구호품 배달을 위해 자체 트럭과 운전사를 고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배급하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무장 경비원을 두지 못하고 있다며 폭력조직과의 연관성을 파악하기 위해 계약 내용을 확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군은 “배급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네게브 사막과 이집트의 시나이 반도, 가자 남부 지역의 타라빈 부족 일원들이 갱단으로 보인다며, 이스라엘이 가자로의 반입을 금지한 담배 관련 암시장이 생겼고 밀수용 담배가 구호품에 섞여 들어오면서 약탈이 심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 국제구호기관 관계자는 갱단이 담배를 찾아낸 뒤 구호품을 버리거나, 음식과 상품도 암시장에서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 영상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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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7일 가자전쟁이 시작된지 14개월째에 접어들면서 가자지구의 인도적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지난달 13일 이스라엘에 30일 기한을 주고 가자지구로의 식량과 물자 배급을 늘리지 않으면 미국법에 따라 무기 지원을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지난 5일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이츠하크 코헨 이스라엘군 준장이 가자지구 북부에 더이상 민간인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구호물품이 반입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는 등 가자지구 내 인도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다하지 않고 있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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