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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9 (화)

돌봄, 문제는 보상이고 해답은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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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열 전환스튜디오 와월당 대표]
이토록 고립된 적이 있을까? 자기착취가 만들어 내는 고립으로, 고립이 만들어 내는 자기착취로 지금을 힘겹게 버티면서 왜 기댈 수 있는 돌봄을 찾지 않을까? 이렇게 돌봄 뿐 아니라 파국을 앞둔 절박한 상황에서 내놓은 전환의 대안들도 길을 잃은 채 떠다니고 있다. 수많은 징후와 자료가 뒷받침하는 전환의 논리들이 유리 상자에 갇힌 모습이다.

오키로북스를 만든 뜻은?

알고 보니 보상이었다. 신기루 같은 욕망과 불안함이 조성한 안정된 고립에서 빠져나와 돌봄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보상이 필요했다. <지구를 구하는 뇌 과학>을 쓴 앤 크라스틴 듀하임의 "개별 생명체들은 등장부터 생존에 유리한 방향을 선택해 진화해온 보상 체계를 가졌으며,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보상이 많은 쪽을 선택한다. 심각하게는 즉각적 보상을 나중에 올 위협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글에서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도덕과 이익사이에서 도덕을 찬미하고 이익을 선택하는 부조리한 장면들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다행히 한번 만들어진 보상체계의 저울은 고착된 게 아니라 뇌가 가진 가소성이라는 특징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고 하니까 이제 돌봄이 할 일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대체보상을 경험할 수 있도록 새로운 보상체계를 발명하는 일이다. 해답은 지역에 있다.

마포구 합정동에는 오키로북스라는 작은 책방이 있다. 오키로북스라는 이름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추측하건대 주인은 책방을 드나드는 손님들의 관계범위를 그쯤으로 보지 않았을까. 오키로북스로 연결된 관계범위 안에서는 매일매일 많은 돌봄들이 일어난다. 길을 가다 눈인사를 할 수 있고, 책방이나 가게에서 안부를 묻을 수도 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의논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 반려동물 돌보는 일을 부탁하는 등 곤란한 일을 봐줄 수 있다. 공감과 신뢰, 호혜로 비교환적인 생활을 나누는 관계망의 범위가 이 정도다. 이만큼이 서로 돌봄을 매일 몸으로 느끼고 보상을 경험 할 수 있는 범위다. 호혜의 보상이 생성되는 적당한 생활의 장(場)으로 주거와 일, 식품, 의료, 교육, 여가 등이 생산, 교환, 선물되는 직접적인 돌봄이 작동되는 기초범위다. 성장으로 포장된 끝없는 탐욕 때문에 지역이 해체되고 생명을 위협받기 전까지 사람들을 비롯한 모든 생명들은 지역마다 고유한 풍토(자연환경)와 제도(사회환경) 안에서 순환성, 관계성, 다양성을 지키며 돌보며 살아 왔고 살 수 밖에 없었다. 지역학자 샤프트가 말한 5km와 5,000명의 지역범위도 그렇고 일터와 학교, 병원, 여가생활 등이 15분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계획한 파리의 15분 도시생활권도 여기서 시작된다.

이렇게 지역에서 경험하는 돌봄은 평면적인 관계가 아니라 아이부터 노인까지, 햇빛부터 바람까지 다양한 존재들이 연결되며 생명을 위해 다른 생명의 죽음까지도 품는 순환관계로 작동된다. 어렵다면 지역돌봄을 그냥 ‘복잡하다’고 이야기해도 된다. 복잡하다는 말 속에 이미 셀 수 없고 알 수 없는 사건들을 매일매일 경험하며 살아가는 관계가 있으니까. 어렵지 않게 지역돌봄을 ‘단순하다’고 이야기해도 된다. 지역돌봄쯤이면 기본 생명활동에 필요한 식-의-주가 어느 정도 충족되고 순환되며 자연환경에 따라 고유한 지역문화를 생성하며 살아가는 시나리오가 만들어질 수 있으니까. 오래전부터 지역 안에서 사람들은 햇빛, 바람, 땅과 심지어 보이지 않는 정령들과 이렇듯 서로 돌보며 살아왔다. 어느 하나 없이는 생명도 살림도 될 수 없다.

돌봄의 다섯 가지 특징인 (1)순환성과 (2)중복성, (3)교차성, (4)탄력성, (5)증여성도 지역을 중심으로 경험되고 보상된다.

(1) 순환성 : 작은 풀잎 하나부터 파란 하늘까지 모든 생명들은 우주 안에서 순환하며 살아간다. 노인을 돌보는 것은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 돌봄을 받는 것과 같고 아이를 돌보는 것은 다른 내일의 나를 돌보는 일이다. 폐쇄적 순환성은 지역으로부터 시작된다.

(2) 중복성 : 돌봄은 단선적이고 파편적이지 않다. 쉼을 돌보는 일부터 일자리 제공까지 다양하게 중층적으로 중복되어 있고 생활 전체를 포괄한다.

(3) 교차성 : 돌봄을 받기만 할 수 없고 돌볼 수만도 없다. 자원봉사자들은 일손이 필요한 현장에 일손을 보태고 현장은 자원봉사자들에게 성취감이라는 이름으로 기쁨을 돌봐준다.

(4) 역동성 : 돌봄은 눈에 보이는 돌봄을 넘어 보이지 않고 계획되지 않은 사건들을 연결하며 우연하게 횡단한다. 손수레를 미는 일이나 자리를 양보하는 일, 갑작스레 야근하는 이웃을 위해 이웃집 아이를 돌보는 일은 계획에 없던 돌봄이다.

(5) 증여성 : 주고받는 등가교환이 아니라 호혜적으로 선물 되는 돌봄으로 누구도 돌봄에서 소외당하지 않을 수 있다. 증여성은 돌봄의 확장시키고 순환성을 지켜준다.

돌봄의 다섯 가지 특징을 가로질러 돌봄이 작동되도록 하는 힘은 지역에서 경험할 수 있는 호혜적 관계다. 관계는 공감과 공명과 같은 정서적인 친밀감이 형성될 때 증폭되기 때문에 공감과 공명의 장(場)이 되는 지역은 돌봄경험의 강렬도를 높이는 중요한 조건이 된다.
돌봄은 지역을 중심으로 경험되고 보상된다

서로 다른 대립되는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세상에서 돌봄보상으로 충만한 삶을 경험하지 않고는 돌봄의 필요성을 깨닫고 변화를 만들어 가는 데 한계가 있다. 로버트 치알디니의[설득의 심리학]에 나오는 ‘호혜의 법칙’처럼 행동변화가 필요한 영역에서 보상경험은 습관적으로 행동하던 것과는 다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보통은 경험을 직접 경험하는 감각경험이나 행동경험으로만 알고 있지만 경험은 다층적으로 구성되고 수용된다. 심리학자 번 슈미트는 경험 마케팅에서 경험을 행동, 감각, 관계, 감성, 학습, 다섯 가지로 구분하고 상황에 따라 다층적으로 배치하기를 제안한다.

돌봄보상을 경험하기 위해 지역돌봄 사례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일본 도치기현에서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한 '나스 마을 만들기'는 폐쇄적인 다세대공생형커뮤니티를 구성해 고령자 주변에 다세대와 다문화 사람들이 모여 돌봄 관계망을 발명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옛 학교 운동장에는 독립형 노인주택이 있고 개조한 수영장에는 집합형 거주시설이 위치해 있다. 목재를 사용해 리모델링한 옛 학교건물에는 콘서트나 강연회가 열리는 홀과 카페 등 복합문화 공간부터 신선한 채소나 유기농상품이 놓여 있는 장터까지 자리 잡고 있다. 자연환경과 공생하고, 지역에서 소비하는 것은 지역에서 생산하고, 자동차를 쓰지 않고 걸어서 생활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지향한다. '나스 마을 만드기' 대표 지카야마 씨는 "저출생 고령화시대에 마을 만들기는 모여서 사는 것, 불편을 해소할 모든 수단을 공유하고 편리함으로 바꾸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대전 대덕구 '미호동에너지전환마을'에서도 기후재난의 시대에 인간/비인간이 어울려 사는 생활을 실험하고 있다. 마을 전체가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RE100에너지전환마을을 추진하면서, 서식 환경 변화로 사라진 맹꽁이와 꿀벌들을 불러들이기 위한 웅덩이와 밀원식물 밭을 조성하고 있다. 또 지역에서 나는 채소로 제철 먹거리로 마을주민들이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즐기는 넷제로장터를 꾸준히 열며 지구와 이웃에 보상하는 에너지전환마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지역에서 경험하는 돌봄 보상으로 돌봄의 필요성을 느끼고 서로 기대어 살면 된다는 믿음으로 문명전환은 시작된다. 돌봄이 필요하다고 좋다고 설득하기 이전에 지역에서 따듯함을 느끼고 저절로 얼굴이 환해지는 돌봄을 경험하고 보상하는 게 우선이다.

지역돌봄은 작지만 쉽게 경험하지 못했던 돌봄의 사건들을 만들 수 있다. 아이들 돌보기, 눈 길 쓸기, 짐 맡아주기, 책 읽어주기, 일 손 나누기, 인사나누기 등 셀 수 없이 많은 지역 돌봄의 대체보상으로 상품화되어가는 돌봄을 해체하고 재구성할 수 있다. 이 힘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문명전환사회가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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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무열 전환스튜디오 와월당 대표



이무열 대표는 전환담론을 실험하는 전환스튜디오 '와월당(臥月堂)'에서 지역, 문화, 사회적경제, 정치를 주제로 일하고 있다. <지역의 발명>, <예술로 지역활력>, <전환의 시대 마케팅을 혁신하다>, <협동조합 마케팅기술>, <돌봄의 시간들>, <에너지전환마을 발명록> 등 글을 쓰고 기획하면서 다양한 실험들을 하고 있다. 특히 욕망하는 이들을 추앙하며 이들과 함께하는 작업을 즐긴다. 무엇보다, 내일만큼 아름다운 오늘을 살고 있다.

[이무열 전환스튜디오 와월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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