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 특수성 반영 못해
국회 법 개정 취지도 무력화 지적
피해자들 별도 기준 마련 위해
다시 5·18 보상법 개정 추진
지난 9월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피해자 이남순 씨가 장미꽃을 들고 발언하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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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가 올해 처음으로 5·18민주화운동 당시 성폭행 피해자들을 보상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하지만 행정안전부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별도의 보상 기준을 마련치 않아 부실 보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8일 광주시 등에 따르면 시는 지난해 6월 29일 개정된 5·18보상법 시행령에 따라 5·18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제8차 보상 절차에 착수했다. 개정된 5·18보상법 시행령에는 보상 범위를 성폭력 피해자, 해직·학사 징계자까지 확대했다. 이에 성폭력 피해자 26명이 광주시에 보상을 신청했고, 시는 이달부터 사실 관계 조사를 진행 중이다. 이어 다음 달 중 피해 사실을 심의해 내년 1~2월쯤 장해 등급을 심사한 뒤, 같은 해 2~4월쯤 보상이 이뤄질 전망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정부의 보상이 44년 만에 이뤄지는 만큼 상징적 의미가 크지만, 정작 성폭행 피해자들이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을 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행안부가 지난 4월 광주시에 통보한 '제8차 보상지급 기준' 탓이다.
성폭행 피해자들은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감안한 별도의 피해보상금의 지급 근거나 기준을 마련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행안부는 성폭력 피해자들 역시 법 개정 이전 기존 피해자인 상이자로 분류해 보상금을 지급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상이자 보상 기준에 '신경계통의 기능 또는 정신적 장애'가 포함돼 있어, 이를 적용하면 된다는 게 행안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같은 기준은 외상이 잘 드러나지 않고, 피해 사실을 감추는 까닭에 객관적 증거 확보가 어려운 성폭력 피해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성폭력 피해와 부상을 함께 당해 이미 상이자로 보상을 받은 피해자들은 아예 보상을 받지 못할 수 있고, 사망·행방불명·상이자로 한정됐던 기존 5·18 관련 피해자 범위를 성폭행 피해자까지 확대한 법 개정 취지까지 무력화시켰다는 비판이 거세다. 광주시 역시 이같은 지적에 따라 지난 8월 행안부에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별도 지급 기준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행안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전례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5·18 뿐만 아니라 다른 법과의 형평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데,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해 별도의 지급 기준을 마련한 사례는 없다"며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해선 상이자에 대한 등급 심사 기준을 통해 충분히 피해 정도를 반영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또한 올해 7월 개소한 국가트라우마 센터를 통해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행안부가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별도의 보상 기준 마련을 거부하면서, 성폭력 피해자들은 아예 법을 다시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들은 지난 9월 30일 추미애(경기 하남 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별도의 보상 기준 등을 담은 법안 마련을 건의했고, 지난 14일 개정 법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해당 법안 개정까지는 최소 수년 이상이 필요하기 때문에, 44년 만에 이뤄지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첫 보상은 부실로 결론 나게 될 공산이 크다.
윤경회 열매(5·18 성폭력 피해자 자조 모임) 간사는 "과거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증언하기도 했지만, 기존 기준을 적용해 성폭력 피해가 보상으로 인정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며 "또 성폭력 피해자들은 피해 이후 사회생활을 못 하거나 직업을 잃게 되는 등 사회적 피해와 정신적 피해를 보았는데, 기존 기준을 적용한다면 피해에 적합한 보상을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진영 기자 wlsdud451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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