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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일왕 즉위까지 활용한 아베… ‘굴욕’ 비판에도 트럼프 환심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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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트럼프 사로잡았나

조선일보

2017년 2월 미국 플로리다 ‘트럼프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 아베 신조(왼쪽) 당시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경기 도중 손뼉 맞장구를 치고 있다. /로이터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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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47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가 내년 1월 출범하는 내각과 백악관에 자신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인사를 대거 발탁하면서 전 세계에 비상이 걸리고 있다. 차기 행정부의 국무·국방 장관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트럼프의 지시를 적극 이행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커지고 있다. 결국 각국의 정상이 트럼프와 어떻게 우호적인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국익이 좌우되는 시대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각국이 비슷한 상황이지만, 일본에서 나오는 경고음은 특히 더 크다. 트럼프 1기 때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는 트럼프와 ‘브로맨스(brother+romance. 남자들 간의 독특한 우정)’ 관계를 맺으며 미·일 동맹을 업그레이드시킨 반면, 이시바 시게루 현 일본 총리는 트럼프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선 승리 직후 각국 정상들과 통화할 때 이시바 총리 순서는 윤석열 대통령 뒤였다. 통화 시간도 윤 대통령이 12분이었지만, 이시바 총리는 5분이었다. 이시바 총리는 남미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미국에 들러 트럼프 당선인과 만나려 했지만 이 역시 불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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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송윤혜


이런 현재의 상황 때문에 아베 전 총리의 ‘트럼프 공략법’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트럼프는 1기 대선 유세 때 트위터에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수천명의 미국인이 목숨을 잃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한국은 물론 일본의 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집중 제기하는 등 일본에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아베와 트럼프는 2016년 11월 트럼프가 45대 미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까지는 일면식도 없었다.

하지만 트럼프 승리가 확정된 직후 아베는 그와 통화를 하고, 9일 만인 11월 17일 뉴욕의 트럼프 타워로 찾아갔다. 일본의 총리가 미 대통령 당선자를 취임 전에 찾아간 것은 매우 이례적인 행보였다. 그는 트럼프가 전 세계에 수십 개의 골프장을 소유한 ‘골프광’이라는데 주목, 혼마의 최고급 금장(金裝) 골프채를 선물했다. 당시 일본 외무성은 이 때문에 두 달가량 임기가 남은 오바마 정부로부터 ‘보복’을 당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트럼프는 자신이 갖고 싶어하던 선물을 내놓으며 함께 골프를 치고 싶다고 한 아베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인 2017년 2월 아베를 워싱턴 DC로 초청, 정상회담을 가진 후, ‘에어포스 원’에 동승시켜 자신의 별장이 있는 마러라고로 데려왔다. 다음 날 트럼프와 아베는 아침 식사 후, 함께 골프를 쳤다. 18홀 운동에 이어 오후에 예정에 없던 9홀을 추가로 더 돌았다. 저녁 만찬도 함께 했다. 두 번째 만남에서 하루에 세 끼 식사를 함께 하고 27홀 골프를 치면서 의기투합했다. 당장 80년대 미·일 간 레이건-나카소네 관계가 다시 시작됐다는 관측이 나왔다.

아베는 2019년 5월 일왕 아키히토의 퇴위에 따른 나루히토 즉위로 레이와(令和) 시대가 시작되는 것을 트럼프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계기로 활용했다.

과시욕이 큰 트럼프에게 최고의 ‘오모테나시(일본 특유의 환대)’를 베풀기로 한 것이다. 트럼프는 2019년 5월 26일 국빈으로 방일, 지바현의 골프장에 헬기를 착륙시킨 후 아베와 골프를 쳤다. 이어서 두 사람은 레이와 시대 개막 후 처음 열린 스모 경기에서 다시 만났다. 트럼프는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나쓰바쇼(夏場所· 5 월 대회) 최종일 경기가 열린 도쿄 료고쿠의 국기관 특별석에서 관람했다. 이어서 도효에 올라 우승자를 ‘스모 그랜드 챔피언’이라고 부르며 미국에서 특별히 제작해 온 ‘미·일 우호를 위한 트럼프배(杯)’를 시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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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2019년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 국빈 방문 때 미국산 소고기로 만들어 대접한 특제 햄버거. /더버거샵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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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는 손님들 바로 앞에서 요리사가 직접 일본 음식을 구워 주는 유명 식당에서 저녁을 대접했다. 트럼프 입맛에 맞춰 미국산 소고기를 넣은 특제 햄버거를 만들어 내놓기도 했다.

아베의 섬세한 준비에 감동한 트럼프는 나루히토가 주최한 만찬에서 양국 관계를 한층 더 격상시켜 “미·일 관계는 보물 같은 동맹”이라고 최고의 찬사를 했다. 다음 날 일본을 떠나기 전에 가나가와(神奈川)현의 요코스카(橫須賀) 해상자위대 기지를 찾아 이즈모급 호위함 ‘가가’에 승선함으로써 미·일 동맹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여줬다.

아베가 트럼프에게 의전 측면에서만 접근한 것은 아니다. 아베는 트럼프가 중국 견제에 나서는 것을 중시, 자신이 오래전부터 고안한 인도·태평양 전략을 제안했다. 아베는 2006년 ‘아름다운 나라로’라는 책에서 미국, 일본, 호주, 인도를 잇는 인도·태평양 구상을 내놓은 바 있다. 이 같은 영향으로 트럼프 정부는 2017년 10월부터 ‘아시아·태평양’이라는 용어 대신 ‘인도·태평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어서 미 하와이의 태평양사령부도 2018년 5월 인도태평양사령부로 명칭이 바뀌며 개편됐다.

아베는 트럼프가 1기 때 세 차례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 정상회담을 할 때도 막후에서 북한 관련 정보를 제공하며 조언했다. 아베가 트럼프의 귀를 잡은 결과 트럼프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본인 납북자’ 문제에 기여하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와 절친한 관계를 만든 아베는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결렬 가능성을 사전에 파악하기도 했다.

아베는 트럼프와 2020년 4월까지 정상회담 14회, 전화 통화 35회를 기록함으로써 트럼프 취임 후 매월 최소한 한 차례 이상 통화하는 기록을 세웠다. 일본 전문가인 권태환 한국국방외교협회 회장은 “아베 총리가 트럼프 1기 때 전례 없이 긴밀한 미·일 관계를 만들어 국익을 증진시킨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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