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 림 英 '퍼블랙 액츠' 감독 인터뷰
1963년에 설립된 국립극장…지역사회 커뮤니티와 적극 소통
취약계층, 타인과 교류하며 성장…'인생 바꾸는 전환점'으로
림 감독, 한국 문화예술교육 축제 포럼서 '연극의 힘' 강조
"문화예술교육 활성화 위해 누군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모든 사람이 놀라운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그것이 우리 철학이다.”
영국 국립극장 퍼블릭 액츠 감독인 에밀리 림은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아주경제와 인터뷰하면서 연극이 지닌 무한한 힘을 강조하며 이처럼 말했다.
림 감독은 “연극은 변화를 일으킨다”고 확신했다. 연극을 준비하고 무대에 오르는 과정이 한 사람의 인생을 새롭게 바꾸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극을 모두가 함께하는 하나의 장(場)으로 바라보는 그의 철학은 연극을 통해 사회적 연결과 성장을 추구하는 퍼블릭 액츠의 비전을 잘 보여준다.
영국 대표 연극 기관인 영국 국립극장(The Royal National Theatre)은 1963년에 설립됐다. 이 기관은 학교, 청소년단체, 지역 극장 등과 함께하는 전국 단위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특히 지역사회로 직접 찾아가는 ‘퍼블릭 액츠’는 공동체와 소통하며 연극을 완성하는 혁신적인 접근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연극이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공연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퍼블릭 액츠는 커뮤니티와 긴밀히 협력해 연령, 성별, 인종 등을 초월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대규모 연극 작품을 만들어낸다. 생애 단 한 번도 극장에 가본 적 없는 사람, 4세 유아, 80대 노인,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까지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들이 전문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연극 무대에 오른다. 모두가 예술의 주체가 돼 사회적 장벽을 허물고 예술과 커뮤니티의 연결, 커뮤니티와 커뮤니티 간 연결을 이끈다.
2018년에는 런던 전역 7개 커뮤니티 단체와 협력해 셰익스피어의 <페리클레스>를 뮤지컬로 각색했다. 4세부터 84세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225명이 참여해 무대를 빛냈다. 2019년에는 셰익스피어의 <뜻대로 하세요>를 뮤지컬로 각색해 160명이 공연했다. 2023년에는 5개 커뮤니티가 협업해 셰익스피어 ‘오디세이’를 재해석한 작품을 영국 전역 극장에서 순차 공연했다.
이러한 퍼블릭 액츠를 이끄는 림 감독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최한 ‘2024 대한민국 문화예술교육 축제’ 포럼 참석을 위해 최근 방한했다. 림 감독은 연극이 사람의 삶에 미치는 힘을 거듭 강조했다. 예컨대 약물치료를 거부하던 우울증 환자가 연극을 매개로 타인과 깊게 관계를 맺는 경험을 통해 약물치료에 나서는 등 퍼블릭 액츠가 삶의 이정표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림 감독은 “가장 긍정적인 임팩트는 참가자들이 본인을 새롭게 바라보고 가능성을 제고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프로젝트를 통해 인생의 새로운 경로를 선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연극, 차 한 잔의 대화에서 시작
퍼블릭 액츠는 차 한 잔의 대화에서 시작된다. 노숙, 이민 등 다양한 이유로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서부터 프로젝트는 시작된다. 스태프들은 이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관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만남은 연극이란 특별한 여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여는 첫걸음이다.
스태프들은 참가자들이 연극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고용주와 연락해 근무 시간을 조정하는 등 참가자들이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를 통해 신뢰와 연대를 쌓는다.
림 감독은 시민단체 등 파트너 기관과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파트너십을 맺은 기관들은 노인, 여성, 나이지리아계 취약계층 등 사회나 문화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지원하는 단체가 대부분이다. “풀뿌리 단계에서부터 적합한 사람들과 일하는 게 중요하다. 현지 커뮤니티 단체 등에 손을 내민다. 국립극장이 자체적으로 인력을 찾는다면 공모 등 형태를 취해야 하는데, 이렇게 하면 문화적 접근성이 확보돼 있거나 (연극 준비) 역할에 적합한 사람만 지원한다. 문화적 접근성이 결여된 사람들도 참가할 수 있도록 파트너십 기관들과 손을 잡는다.”
이를 통해 극장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무대에서 반짝이는 의상을 입고 과감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심리적 장벽, 부담감 등을 허물어뜨린다. 전문 배우들도 참여한다. 전문 배우들과 함께 공연을 완성하는 과정을 통해 참가자들은 ‘해냈다’는 자부심과 성취감을 느낀다고 그는 설명했다.
모든 과정의 중심엔 '포용'
핵심 키워드는 ‘포용’이다. 연극에 참여하길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함께할 수 있다. “워크숍 이후 참가자와 스태프 모두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그렇다. 오디션이나 선발 과정은 없다. 수용할 수 있는 인원에 한계가 있다면 누가 더 연습에 많이 참여하는지, (이 활동을 통해) 누가 이익을 많이 얻을 수 있을지를 고려하기도 한다. 결단코 오디션을 통해 재능 있는 사람을 선발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연극 내용 역시 포용적으로 각색한다. “처음 제작한 <페리클레스>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각색한 것이었다.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집을 떠나서 처음에 만나는 사람들이 어부다. 이 어부들이 (주인공인 페리클레스를) 환대하는 장면이 있다. 그러나 아이들과 워크숍할 때는 어린이들이 페리클레스를 환영하는 내용으로 장면을 재창조했다. 작가들이 커뮤니티와 소통하면서 각색한다. 여러 구성원을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방식을 취한다. 셰익스피어의 <뜻대로 하세요>를 무대에 올렸을 때도 (등장인물 중) 한 커플은 레즈비언 커플로 바꿨다. <오디세이>에서도 동성애 커플을 넣었다.”
림 감독은 문화예술교육을 활성화하려면 누군가를 보는 행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누군가를 보고, 귀를 기울이고, 이해할 수 있는가.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 커뮤니티는 누구인가. 우리가 누군가를 보지 못하고 있는지, 누군가의 목소리가 소외되고 있는지 등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마음과 눈, 귀를 열고, 이에 반응해야 한다. 예술을 민주화하고 공연을 통해서 변화를 추구할 수 있다.”
아주경제=윤주혜 기자 jujusun@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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