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가 갈수록 염치가 없어진다. 개인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가 그렇다는 말이다. 1944년 미국 필라델피아에 모인 전 세계 사람들이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고 외쳤고, 몇년 뒤인 1948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3차 유엔총회에서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는 세계인권선언이 통과되었다. 참혹한 세계전쟁을 경험하고 깨친 반성과 성찰의 결과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10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한국에서는 노동이 플랫폼을 통해 분초 단위로 거래되고, 외국인 노동자를 “값싼 노동자”로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월 100만원에 쓸 수 있는 돌봄노동자를 수입해오겠다고 하고, 윤석열 대통령도 외국인 유학생과 결혼이민자 가족을 가사도우미로 사용하면 “최저임금 제한도 받지 않고 수요 공급을 받을 수 있다”며 대단한 발견을 한 것처럼 제안한다. 합리적인 법과 제도의 탈을 쓰고 있지만, 근본에는 외국인은 우리와 달리 대우해도 된다는 차별적 인식이 깔려 있다.
물컵에 잉크 한 방울 떨어뜨리는 것처럼 제도에 스며든 차별에서 혐오가 자란다. 사회에서 자라난 혐오는 구성원들의 인식에 퍼진다. 혐오의 대상은 움츠러들고, 인권은 무시된다. 불법이라는 낙인이 사람이라는 존엄성을 앞서간다. 법 밖으로 밀려난 이주민들은 이 공동체에서 자신의 권리가 보장받지 못할 것을 알기에 피해를 당해도 숨기 바쁘다. 법에서 정한 경계 안에서 삶을 붙들어매고 있는 사람들도 삶을 담보로 건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해야 한다.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은 법의 영역에서 쫓겨나 법에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을 ‘호모 사케르’라고 불렀다. 한국에서 이주민은 합법이든 불법이든, 취업자격이 있건 없건 시민으로 살지 못하는 호모 사케르와 다르지 않다.
지난 8일 전북 김제의 공장에서 일하던 이주노동자 강태완이 산재로 사망했다. 다섯 살 때 어머니와 함께 몽골에서 한국으로 온 그는 23년간 법 밖에 밀려난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살았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한국에서 살려면 참아야 한다는 것이 강태완이 배운 첫 가르침이었다.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 속에서 스물아홉 청년이 된 그는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다섯 살 이후 가본 적이 없는 몽골로 떠났다. 우여곡절을 거쳐 유학생으로, 인구소멸지역을 지키는 지역특화비자 노동자로 다시 한국에 돌아왔지만 결국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 바라던 등록외국인이 되었지만, 그 앞에 놓인 삶은 여전히 생존을 위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현장이었다.
그의 죽음 앞에 한국 사회는, 정부는, 법무부는, 한낱 소시민인 나는 정말 부끄럽지 않은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국적도, 체류자격도, 산업재해도 없는 곳에서 영면하시길.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
조영관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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