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권을 거부하는 전국비상행동 등 시민단체 주최로 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열린 ‘김건희 특검 수용, 국정농단 규명! 윤석열을 거부한다 시민행진’ 집회에서 참석자들이 휴대전화 불빛을 비추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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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준호 | 이슈팀장
쿵. 쿵. 쿵. 쿵.
경찰 방패가 아스팔트에 맞부딪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상황도 맥락도 모른 채 사람들을 따라 한강대로를 내달렸다. 뒤처진 누군가는 빈틈없이 무장한 경찰에 둘러싸인 것 같았는데, 겁나서 못 도왔다. “하지 마” “사람 다쳐” 메아리처럼 울리는 외침을 들으며 그저 달렸다. 2009년 겨울, 용산 남일당 건물이 경찰 진압 과정에서 불타오른 날이다.
공권력에 의한 물리적 폭행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건 누군가에겐 일상 같은 두려움, 누군가에겐 아스라이 먼 얘기다. 따지면 후자에 속했던 나는, 그저 뉴스 화면 속 장면이 너무 충격적이라, 왠지 한 사람이라도 더 곁에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거리에 나갔다. 초라하고 무력하다고 느꼈다. 용산 참사 이튿날 국무총리는 “불법 폭력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누구에 의한 것이라도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했다. 망루에 올라 사망한 철거민의 불법을 부각했다. 불법을 저질렀다는 시민 6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다쳤다. 속상했지만, 일상을 살며 자주 생각했다고 자신할 순 없다.
이후 기자가 되어 집회 취재는 일상이 됐다. 투사는 되지 못했다. 결기, 혹은 비극을 안고 거리에서 세상의 변화를 촉구하는 사람들에게 연민 정도를 품고 있었을 따름이다. 어떤 날은 관성적인 관찰자로 집회를 지켜보기도 했고, 또 어떤 날엔 그 모든 위험을 감내한 채 왜 꼭 거리로 나와야 할까 안타깝기도 했다. 진보가, 힘겨루기 속 접점을 옮기며 이어지는 끝없는 교착과 합의라고 믿었지만, 그 과정이 거리 말고 제도 안에서 좀 더 세련되고 안정적이길 바랐던 것 같다.
“응급실 실려 가네요” “엄청 밀쳐지고 있습니다” 지난 9일 ‘윤석열 퇴진 1차 총궐기’ 현장에서 김가윤 기자가 보내온 메시지와 사진, 영상 속에는 익숙하고 격렬한 집회 풍경이 빚어지고 있었다. 분홍색 조끼를 입은 장애인들은 경찰에 막혀 총궐기 집회에 들어가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차로를 확보하려 시민을 미는 경찰은 역시 단단한 완전 진압복 차림으로 검은 방패를 쥐고 있었다. 시민들은 “열어라” “열어라” 외쳤다. 시민 십수명이 다쳤다. 11명이 연행됐다. 그중 4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나 모두 기각됐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불법 집회로 변질돼 공권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세종대로 ‘차로 2개’를 침범해 집회 구역을 벗어났다는 이유였다.
이윽고 한발 떨어진 채 연민, 안타까운 마음 정도로 지켜봤던 지난 집회들을 되짚었다. 만약 그 집회가 없었다면. 어르신들이 처참히 끌려 나온 2013~2014년 밀양 송전탑 집회가 없었다면 ‘생태’나 ‘공동체’ 같은 단어를 지금처럼 느낄까. 100여명이 연행된 2015년 세월호 추모 집회가 없었다면 ‘안전’과 ‘생명’은 한국 사회의 핵심 가치가 됐을까. 2016년 촛불집회가 없었다면 ‘공정’과 ‘상식’이란 단골 어구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 생태, 공동체, 안전, 생명, 공정, 상식. 2024년 한국에서 모두가 제 것으로 삼고 싶어 하는 단어를 지나온 집회는 앞서 품고 있었다.
깨달음이라기엔 면구한 상식이다. 집회의 자유는 ‘안타까운 그들’을 보호하는 시혜가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가치’를 유지하고 발견하기 위한 토대에 가깝다. 구태여 헌법이 보장하는 이유다. 민주화 이후, 실은 그 이전부터 집회에서 외친 단어들을 바탕으로 지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 사회 맥락에선 한층 그렇다.
“다시 집회의 계절이네요.” 주말이면 경찰들과 오늘 집회의 양상을 가늠하는 날들이 다시 시작됐다. 거리로 나온 분노, 슬픔, 환희, 따뜻함이 뒤섞인 이 복잡한 정념이 어디로 향할지, 어떤 가치를 이르고 있는지 아직 명확하진 않다. 다만 차로 2개를 침범하는 ‘불법’을 처단하기 위해, 언젠가 모두가 입에 달고 살지 모를 단어를 발견할 기회를 잃는 건 지나치게 허망하지 않나.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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