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수능을 마친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상당수도 그때의 나처럼 대학으로 향한다. 국내 최고 대학으로 인정받는 서울대, 아니 의대부터 순서대로 학생들이 들어차고 줄줄이 추가 합격과 편입학, 반수와 재수가 이어지게 된다. 3월이 될 때까지 일련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비로소 본격적인 대학 생활이 시작된다.
이것으로 긴 입시 지옥이 끝나고 모두 행복했다는 결론이 나면 좋겠지만 대학이라고 해서 뾰족한 답이 있을 리는 없다. 교육 기자로서 마주하는 기사 목록들부터가 그렇다. 올 초 시작된 40개 의대의 정원 확대 논란은 이제 내년에도 이어질 수밖에 없는 형국이고, 한때 소외받던 여성들의 교육기관으로 빛나던 여대는 약학·법학전문대학원 쿼터를 잡아먹는 원흉이자 공학 전환이 아니면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마저 듣는 처지로 전락했다. 심지어 대구 지역의 한 사립대에서는 최근 '사회학과 장례식' 행사가 열리며 취업에 불리한 순수학문 연구 공동체로서의 대학은 종말에 가까워졌음을 알렸다.
대학을 일종의 '끝'으로 생각하면,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이 같은 일은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 뻔하다. 대다수 사람에게 가장 큰 자산인 부동산의 가격마저도 학군에 따라 결정되고, 대학 졸업장은 일종의 사회 입장권으로 기능한다. 의사처럼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입장권을 얻기 위해 가혹한 경쟁 속에 청춘을 허비하는 셈이다.
물론 이런 현실을 일개 대학생이 해결할 수는 없다. 막 입시를 끝낸 만큼 해방감을 느끼고 공부라는 행위와 한동안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저학년 때 조금 놀다가, 입시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공부를 한 뒤 취업해 사회로 나가게 된다면 놓치는 것이 있다. 공부라는 개념 자체가 시험을 위한 일종의 수단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수업 중 제시된 참고도서를 읽다가 학점과 관련 없이 재미를 느껴 비슷한 책들을 찾아보기도 하고, 취업과는 상관없는 내용에 골몰하는 순간을 가끔씩이라도 가지길 권한다. 그럴 때 대학은 당신이 좋아할 수도 있는 공부를 알려주는 시작이 된다.
대학을 끝으로만 보는 이는 나이가 들어서도 자신의 학벌을 두고 으스대거나 타인을 나온 대학으로만 판단할 수 있다. 그런 이에게 어렸을 적의 성취를 축하한다고 답할 수 있다면 훌륭한 사회생활이겠으나 옆에서 보기에는 민망한 일이다. 그렇기에 이제 성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당신이 그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얼굴도 모르는 불특정 다수 열아홉 청년들에게 충고랍시고 말을 건네는 어른의 모습 역시 민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대학이 끝이 아닌 시작이길 바란다는 말은 전해주고 싶다. 그 외에는 많지 않다. 소화력 좋을 때 튀긴 음식도 즐기길 바라고, 추후 운전할 계획이 있다면 면허를 따기에는 지금이 제일 좋다는 정도는 더할 수 있겠다.
[이용익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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