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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친구의 시체를 먹지 않기로 한 약속을 지키러 떠난 아이...천선란의 질문들 [책과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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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집 '모우어' 발표한 소설가 천선란
상실에서 괴로워하면서 살아가는 인물들
"경계에서 조금은 덜 외롭게 할 수 있기를"
한국일보

천선란 소설가. ⓒSICA. 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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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천선란의 단편소설집 ‘모우어.’ 특정한 의미를 지닌 단어라기보다는 옹알이나 의성어, 의태어에 가까워 보이는 제목의 소설집에서 여덟 편의 작품 속 인물들은 걷고 또 걷는다. 모우어의 세계는 대개 위태롭거나 불온하고 불확실하지만, 그럼에도 매 순간 자신의 존재만은 충실하게 감각하며 걸음을 멈추지 않는 이들은 묻는다.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나요?”

‘모우어’를 여는 첫 작품 ‘얼지 않는 호수’에서 눈보라가 삼킨 한 인간을 찾으려 방랑자가 된 ‘그녀’는 우연히 만난 아이 ‘야자’에게서 죽은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다. 야자와 친구는 독하게 얼어버린 땅에 살았다. 추위 탓에 시체가 썩지 않자 사람들은 이를 불태우거나 잘게 자르거나 먹어치운다. 야자와 친구는 서로가 죽더라도 먹지 않기로 약속했다. 야자는 약속을 지키려 친구의 심장을 안고 죽은 사람의 혼이 며칠을 머문다는 얼지 않는 호수로 향하는 중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포근해지는 느낌”이 든다는 그녀에게 야자는 말한다. “그럼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어요. 사람들은 이야기를 들으면 행복해지거든요. 행복한 사람은 마음이 따뜻해져요.”

언어는 저주일까, 5년 차 작가 천선란의 질문

한국일보

모우어·천선란 지음·문학동네 발행·324쪽·1만7,000원


이번 단편집은 데뷔 5년 차를 맞은 천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자 답이다. 이야기와 언어를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언어가 사라진 시대를 배경으로 한 표제작에서 소통은 머릿속에서 떠올린 생각 그 자체인 의음(意音)만으로 이뤄진다. 모든 것이 투명하게 비치기에 거짓과 불신은 끼어들 여지가 없고, 인간은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난다. 숲에서 발견된 아기 ‘모우’는 의음이 아닌 소리에 관심을 보이지만 “언어를 알고 있다”는 이유로 저주를 부를 존재로 몰린다. 모우를 기른 ‘초우’는 “언어가 되는 순간 감정은 단순하고 납작해”지고 “언어는 쉽게 왜곡되고 무너”진다며 언어를 포기하라고 종용한다.

천선란의 세계에서는 이처럼 사회에서 미숙하고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존재가 선지자 역할을 맡는다. 수록작 ‘너머의 아이들’에서도 우주 침략자의 우주선을 파괴하는 임무에 투입된 건 몸집이 작은 어린이다. ‘사과가 말했어’에서는 범죄 피해자인 ‘나’를 태국에서 온 결혼이주여성 ‘촘푸’가 돕는다. 인간이 아닌 머리뼈에 심은 칩으로 인간과 대화할 수 있는 산양 ‘폴’과 장의사 안드로이드 ‘로비스’도 있다.

이들은 천 작가가 “지구를 여행하며” 만난 “경계에 선 사람들”일 테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 소설은 그들에게 길잡이가 될 수 없다. 그러길 바라지만, 비통하게. 그렇지만 홀로 버텨야 하는 그 경계에서 조금은 덜 외롭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진짜가 아니라고 가짜가 되는 건 아니잖아"

한국일보

천선란 소설가. ⓒSICA. 문학동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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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자리에서 선명한 슬픔과 고통을 직시하면서도 끝내 살아가기를 선택해온 천 작가는 ‘모우어’에서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린 것인지조차 잊거나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던 상황에 놓여 있던 등장인물들은 이야기의 끝에서 그 '무언가'를 찾아낸다. 그리고는 자신만의 삶을 일으켜 세운다. 모우는 인간에게는 저주나 다름없는 언어를 통해 “가려진 세상을 제대로 봐”라고 말하고, ‘서프비트’의 ‘주영’은 쌍둥이처럼 자란 존재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알고도 “너를 오래도록 생각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나는, 반드시 영웅이 될게”라고 다짐한다.

이들의 삶은 분명 이전과는 같지 않고, 누군가는 더 이상 진짜가 아니라고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짜가 아니라고 가짜가 되는 건 아니”(‘쿠쉬룩’)고, 또 거기에 삶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천 작가는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 나비는 결코 진짜가 될 수 없다는 불가능성. 그것이 아름다움이지. 같고, 다르고, 불가능을 이야기하는” ‘뼈의 기록’ 속 ‘모미’의 말처럼.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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