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직 많을 때 ‘동국제강’식 효과
정년 연장은 산업계에서도 화두다. 완성차 업계는 물론이고 조선 업계와 통신 업계 등 산업계 전반에서 정년 연장 구호가 터져 나온다. 특히 노조를 중심으로 만 60세인 정년을 63~65세로 늘려달라는 주장이 힘을 받는다. 다만 노조의 정년 연장 요구를 받아들인 곳은 찾기 힘들다. 일률적 정년 연장은 기업 재무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어서다. 정년 연장에 기업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현대자동차 노사가 지난 5월 23일 울산공장 본관 동행룸에서 임금 협상 상견례를 진행하고 있다. 노사는 재고용 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리는 데 합의했다. (현대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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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1 현대차·포스코
‘퇴직 후 재고용’ 효과 뚜렷
대다수 기업이 정년 연장 대신 선택한 카드는 ‘퇴직 후 재고용’이다. 대표 사례로 꼽히는 곳은 현대차다. 2019년 노사 합의로 정년퇴직자 중 기술직(생산직)에 한해 ‘숙련 재고용 제도’를 시행 중이다. 현대차는 재고용 제도를 확대 운영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일단 대상자를 영업직까지 확대했다. 노조를 중심으로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다. 결국 현대차는 지난해 노사 합의로 영업직 근로자도 동일 제도를 적용받을 수 있도록 변경했다.
다만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혹여 근무 태만 등이 발생하면 어쩌냐는 것. 해법을 찾던 현대차는 영업직의 경우 ‘분기별 재계약’ 방식을 적용했다. 분기 재계약 기준은 ‘월평균 자동차 판매 2대 이상(분기 기준 6대)’으로 내걸었다. 실질적 성과를 내야 재계약 가능하다는 의미다.
올해도 현대차는 퇴직 후 재고용 제도 확대에 힘쓰는 분위기다. 퇴직 후 재고용 기간을 기존 1년에서 2년으로 늘렸다. 노조를 중심으로 “재고용도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 7월 임금 협상 과정에서 “만 64세까지 정년을 연장하라”고 요청했다. 현대차는 “당장은 어렵다”는 식으로 설득했고, 결국 재고용 기간을 2년으로 확대하는 것으로 노사는 합의했다.
덕분에 정년퇴직 후 재고용되는 직원도 꾸준히 늘고 있다. 현대차는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활용해 2020년 이후 신규 채용자의 연령대별 분류 자료를 공개한다. 2020년 신규 채용된 50대 이상 직원은 1293명. 지난해는 2968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50대 이상 채용 직원 상당수가 정년퇴직 후 재고용 대상자다. 정년퇴직 후 재고용 제도가 제대로 자리 잡은 결과다.
포스코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노사 합의로 정년퇴직자의 70%를 재고용하는 ‘고용 연장형’ 제도를 운용한다. 고용 기간은 1년 단위고 필요에 따라 2년까지 연장된다. 포스코 관계자는 “기술력이 뛰어난 직원들을 재고용해 기술과 노하우 전파, 신입사원 교육 등 목적으로 재채용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스코홀딩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포스코의 정년퇴직 인원은 총 519명, 50세 초과 신규 채용 인원(퇴직 후 재고용 인원 포함)은 419명이다. 정년퇴직 후 상당수가 재고용된 것으로 풀이된다.
제도 신규 도입을 검토하는 곳도 있다. 특히 현대차 사례를 눈으로 확인한 자동차 업계가 뜨겁다. 한국GM은 지난 7월 노사 합의 후 “2025년 연말부터 전문 기술을 필요로 하는 숙련 직종에 대한 단계적 시범 운영 실시를 목표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필요시 외부 전문가의 자문을 구할 수 있도록 한다”고 밝혔다. 현행 정년(만 60세) 이후 숙련공이 더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보겠다는 의미다.
또 다른 완성차 업체 KG모빌리티도 올해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노사 합의로 기술직 정년퇴직자 중 희망자에 한해 1년 더 재고용하는 방안으로 시행할 방침이다. 당초 노조 측에선 정년을 만 60세에서 63세로 늘리는 방안을 주장했지만, 사측이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결국 노조도 한발 물러나 양측은 재고용으로 끝을 맺었다.
기업이 퇴직 후 재고용을 선호하는 건 단순한 이유다. 부족한 일손을 채울 수 있고, 동시에 일률적 정년 연장과 달리 재무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국내 300인 이상 기업 중 58.4%, 1000명 이상 기업 중 65.1%가 연공·호봉급제로 운영하고 있다. 단순히 정년만 늘릴 경우 인건비 등 기업 부담만 계속해서 커지는 구조다. 최근 한국경제인협회가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국내 종업원 300인 이상 기업 인사노무 분야 담당자(응답 121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고령자 고용 정책에 관한 기업 인식 조사’에 따르면 기업 10곳 중 7곳은 정년이 연장될 경우, 연공·호봉급제 등의 이유로 경영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계에서 “연공·호봉급제를 손보지 않는 한 일률적 정년 연장은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반면 퇴직 후 재고용 제도는 숙련된 인력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금에 채용하는 형태다. 당장 현대차만 놓고 봐도 재고용 대상자 급여는 신입사원과 같은 기본급 1호봉 수준에 그친다.
이 때문에 퇴직 후 재고용은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 중이다. 통계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고용노동부의 ‘2023년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 종사자 1인 이상 표본 사업체 171만9502개 중 정년제를 운영하는 사업체는 21.2%인 36만3817개다. 이들 사업장 가운데 재고용 제도를 운영하는 사업장 비율은 36%(13만981개)로 나타났다. 정년제 사업장의 재고용 제도 운영 비율은 2020년 24.1%에서 3년 만에 10%포인트 이상 높아졌다.
유형 2 동국제강
2년마다 1년씩 ‘정년 연장’
물론 일률적 정년 연장을 선택한 기업이 없진 않다. 국내 대표 철강 기업 중 한 곳인 동국제강은 2022년 정년을 만 60세에서 61세로 높였다. 지난 3월에는 임단협을 통해 정년을 62세로 연장했다. 인구 고령화 등 사회 구조 변화에 따라 정년 연장 필요성에 노사가 공감하면서 이뤄진 결정이다. 지난해 6월 동국제강에서 인적분할한 동국씨엠에도 정년 연장을 적용, 두 회사를 합쳐 약 2500명이 대상자에 포함됐다. 관련 업계는 동국제강이 2년 만에 정년을 높인 만큼, 향후 추가적인 연장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동국제강은 일반적 기업과 상황이 다른 ‘특이 케이스’에 가깝다.
일단 사무직 비중이 높은 기업과 달리 철강 산업은 기술직·현장직 근무자가 대부분이다. 안 그래도 대체가 어려운데 근속 연수도 길다. 대부분이 숙련 근로자라는 의미다. 동국제강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동국제강 직원의 평균 근속 연수는 13.7년에 달한다. 동국제강 입장에서는 이들 존재가 곧 경쟁력인 셈이다. 숙련 기술자를 지키려면 동국제강 입장에선 정년 연장 카드를 꺼내 들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최근 철강 산업은 인력난에 시달리는 대표 업종 중 하나다. 산업통산자원부가 지난해 말 내놓은 ‘산업기술 인력 수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철강 산업 인력 부족률은 2022년 기준 1.8%다. 전년 대비 0.1%포인트 증가했다. 부족률은 부족 인원(정상 경영을 위해 필요한 인원)을 ‘현원+부족 인원’으로 나눈 뒤 100을 곱한 값이다. 특히 철강 산업은 젊은 인력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철강 산업을 향한 젊은 층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어서다. 일례로 최근 대학교에서 금속공학과 등의 전공을 찾아보기 쉽지 않다는 게 동국제강 측 설명이다. 이 같은 상황을 이해하면 동국제강의 정년 연장 전략은 당연한 선택이다.
동국제강 측도 일반적 기업과 상황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숙련된 인재의 경험과 노하우에 대한 회사 필요와 노조 고용 안정 요구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정년 연장이 신규 채용 감소에 영향을 미치진 않느냐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신규 채용은 꾸준히 진행 중이다. 다만 관련 전공 등이 대학교에서 사라질 만큼 젊은 층 사이에서 철강업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년 연장과 신규 채용 감소는) 연관 관계가 적다”고 덧붙였다.
일괄적 정년 연장으로 부담이 커질 인건비에 대한 해법도 내놨다. 동국제강은 노사 합의를 통해 당초 59세부터 적용되던 임금피크제 적용 시점을 60세로 연장하는 대신, 동결을 넘어 매년 임금의 10%를 줄이는 방식을 선택했다.
부산 동구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24 하반기 K오션 채용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구인 업체 현황판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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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3 마이다스아이티
무정년 표방…수혜자 드물어
애초에 정년이 없는 기업도 있다. 건설공학 부문 소프트웨어 솔루션 등을 고객사에 제공하는 중견기업 마이다스아이티 얘기다. 1989년 포스코건설이 만든 제1호 사내 벤처로 시작한 마이다스아이티는 설립 초기부터 4無 원칙을 내세웠다. 무스펙·무징벌·무상대평가 그리고 무정년이다. 마이다스아이티는 정년퇴직을 할 나이(만 60세)에도 본인 의사와 역량만 있으면 더 오래 일할 수 있다.
회사 측 부담이 커지진 않을까. 마이다스아이티는 직급과 호칭이 없다. 호칭은 ‘프로’, 직급은 ‘마이다시안’으로 통일, 역량 중심 보상 체계를 펼치고 있다. 연차가 높다고 해서 더 많은 연봉을 받는 게 아니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다만 구체적 무정년 제도 운영 방식을 묻는 질문에 회사 측은 “정책을 외부에 공개하기 어렵다”는 답을 내놨다. 관련 업계 일각에선 실질적 수혜를 받는 직원이 몇 없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생각보다 근속 연수가 짧은 편”이라고 귀띔했다. 실제 마이다스아이티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마이다스아이티 평균 근속 연수는 남성 6.7년, 여성 3.7년으로 나타났다.
기업 관계자들은 정년 없이 기업을 운영하기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무정년을 유지하다 정년 제도를 신설한 기업도 있다. 반도체 장비 생산 전문 업체 유진테크 얘기다. 유진테크는 2000년 설립 당시부터 취업 규칙에 정년 항목을 넣지 않았다. 정년 제도가 회사 성장에 역행한다고 판단해서다. 2006년 상장 이후에도 이 같은 정책은 유지됐다. 하지만 최근 유진테크는 정년 제도를 추가했다. 유진테크 관계자는 “일반적 기업 시스템과 발맞춘 것으로 봐달라”며 짧게 답했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84호 (2024.11.13~2024.11.1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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