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투데이 연찬모 기자 = 국내 통신업계에는 '숙명'과도 같은 멍에가 있습니다. 바로 정치권의 통신요금 인하 압박입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핵심 민생대책으로 가계통신비 인하를 내세우고, 통신사에 요금제 개편을 주문하곤 합니다. 새 정권에서 관행처럼 반복되는 현상입니다. 인허가 업종의 숙명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인허가 사업에 비해 유독 통신업계에는 이 요구가 잦습니다.
지난 13일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통신 3사 대표이사 간 간담회가 있었습니다. 지난 8월 취임한 유 장관과 통신 3사 대표이사 간 상견례를 겸한 자리였습니다. 과기정통부는 90여분에 걸친 간담회가 마무리된 이후 통신 3사가 고가의 LTE 요금제를 폐지하는데 뜻을 모았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5G와 LTE 구분을 없앤 통합 요금제를 통신 3사가 내년부터 내놓는다는 발표도 있었습니다. 발표 내용으로 미뤄 짐작해볼 때 이날 간담회에서도 어김없이 '통신비 부담 완화' 얘기가 주를 이뤘던 것 같습니다.
사실 가계통신비는 체감물가와 직결되는 항목입니다. 매월 통신요금 납부서만 봐도 알 수 있죠. 현 정부도 출범 이후 가계통신비 부담을 완화하는 내용의 정책을 잇따라 내놨습니다. 정부의 압박에 지난 2년간 통신사들이 진행한 요금제 개편 작업도 수차례입니다.
현재 통신 3사별 5G 최저 요금제 가격은 SK텔레콤 3만9000원, KT·LG유플러스 3만7000원입니다. 올 초 최저 요금제 평균이 4만7000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적지 않은 수준의 가격 인하가 이뤄졌습니다. 보다 저렴한 온라인 전용 요금제도 2만원 중후반대까지 가격이 내려갔습니다. 요금제 개편 여파에 통신3사 평균 ARPU(가입자당평균매출)는 3만원 밑으로 떨어진 상황입니다. 업계 물밑에서 '마른 수건 쥐어짜기'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통신사들도 정부의 가계통신비 부담 완화 기조에는 전반적으로 공감하는 눈치입니다. 가입자 유치 측면에서도 낡고 수요가 적은 요금제는 손 볼 필요가 있어서죠. 다만 요금제 인하 노력에도 가계통신비를 끌어올리는 주범으로 몰리는 데에는 다소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통계청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가구당 월평균 통신장비 지출액은 2013년 8172원에서 2023년 2만7945원으로 242% 늘어났지만, 통신 서비스 비용은 12만2802원에서 9만9948원으로 18.6% 줄었습니다.
더구나 요금제 수익 위주의 통신3사 무선 사업은 올해 매출 성장률이 1~2%대에 그칩니다. 이에 AI(인공지능) 등 미래 먹거리 투자 부담이 더욱 커졌다는 말들이 나옵니다. 공정위가 판매장려금 담합 의혹과 관련해 5조원대 과징금 부과 처분을 예고한 것도 걱정거리입니다. 물론 정부도 투자 촉진을 위한 세제 혜택 등 '당근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시장 개입은 적당히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럴거면 통신서비스 자체를 '공기업화'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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