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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폐경' 대신 '완경' 표현 쓴 보드게임사, '별점 테러' 받다가 '돈쭐'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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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보드게임즈' 상품에 완경 단어 사용
일부 누리꾼 "페미니즘 용어다" 불매운동
"수정하지 않는 것이 여성에 대한 예의"
한국일보

‘코리아보드게임즈’가 이달 초 출시한 새 보드게임 ‘메디컬 미스터리: 뉴욕 응급실’ 소개 화면 일부. 코리아보드게임즈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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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경(完經)'이라는 단어가 '페미니즘 표현'이라며 일부 이용자들로부터 '별점 테러'와 불매운동 위협을 당한 보드게임 제작사가 "완경이라는 단어를 수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입장문 내용이 온라인상에서 큰 화제가 되자 오히려 '응원하는 마음으로 구매하겠다'는 소비자도 늘었다.

앞서 국내 최대 보드게임 제작·유통사인 코리아보드게임즈는 지난 4일 홈페이지를 통해 새 보드게임 '메디컬 미스터리: 뉴욕 응급실' 출시를 알렸다. 게임 속 한 여성 인물에 대해 "환자는 완경기가 지난 53세 폴리네시아계 여성"으로 설명한 것을 두고,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페미니스트들이 쓰는 용어"라며 비난이 일었다.

'완경'이란 여성이 월경을 더 이상 하지 않는 '폐경'을 가리키는 말로, 부정적인 어감을 가진 '닫을 폐'(閉)를 긍정적 어감의 '완전할 완'(完)으로 대체한 용어다. 해당 단어는 1989년 안명옥 당시 국립중앙의료원장이 처음 제시했다고 알려졌다.

게임에서 완경이라는 단어를 접한 일부 이용자는 "게임은 잘못 없지만 (페미니즘) 사상이 묻어서 냄새가 난다. 중고로 팔 수도 없다", "논란이 일어날 용어를 멋대로 쓴 게 실망스럽다"라는 리뷰를 남기며 해당 게임에 별점 1점(5점 만점)을 줬다. 코리아보드게임즈를 향해 "문제 표현에 대해 사과하라"고 요구하며 "보이콧(불매)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한국일보

12일 코리아보드게임즈가 홈페이지에 올린 입장문. 코리아보드게임즈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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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코리아보드게임즈는 12일 홈페이지에 입장문을 내어 "이 표현을 거두지 않는 것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여성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입장문은 "의학 용어는 절대불변의 것이 아니다"라며 "당사자를 불편하게 만들거나 부정적 느낌이 들게 하는 말을 고치는 것이 전통적 단어를 지키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과거에는 '정신분열증'이라는 말이 의학 용어였지만 현재는 '조현병'이라는 말로 대체됐다. '꼽추'라는 말은 '척추측만증'이라는 말로 대체됐다"며 "완경이라는 표현 역시 이와 비슷한 범주의 단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국일보

'입장문을 보고 구매하러 왔다'는 소비자들의 글. 코리아보드게임즈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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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현재 코리아보드게임즈 홈페이지에는 "입장문을 보고 구매하러 왔다"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용어 하나에 집착하는 행태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소신 있는 기업에 매출로 보답하자" "입장문 보고 '돈쭐'(돈으로 혼쭐내준다는 속어)내 주러 왔다" "얼마 전 완경하신 어머니와 함께 플레이하겠다" 등 응원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입장문 자체에 대한 호평도 이어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대기업들이 말도 안 되는 '집게손가락' 논란으로 사과하는 가운데, 상식을 지키는 기업을 보니 반갑다" "간만에 정상적 대처를 보니 세상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게 실감 난다" "진심을 담아 쓴 글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등의 반응을 내놓고 있다.

아래는 코리아보드게임즈의 입장문 전문이다.
완경 논란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이번에 ‘완경’이라는 단어를 <메디컬 미스터리: 뉴욕 응급실>에서 발견하고 당황하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경위를 한 마디로 말씀드리자면, 충분한 검토가 부족한 채로 완경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리아보드게임즈는 이 단어를 수정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고객의 의견 중에는 이 단어가 엄밀한 의학적 용어가 아니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의학 용어라는 것이 절대불변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바뀝니다. 의학 용어조차도 그렇습니다. 훗날 국립중앙의료원장을 역임하기도 한 어떤 산부인과 의사의 입을 통해서 1990년대에 완경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도, 의학 용어가 어떤 불가침의 것이 아님을 그 의사가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언어가, 용어가 변화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는 당사자를 불쾌하게 만드는 ‘어감’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정신분열증이라는 말이 의학 용어였습니다. 현재는 조현병이라는 말로 대체되었죠. 꼽추라는 말은 척추측만증이라는 말로 대체되었고요. 당사자를 불편하게 만들거나 부정적인 느낌이 들게 하는 말을 고치는 것이, 전통적 단어를 지키는 것보다 중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의학의 최대 목적은 사람을 건강하게, 아프지 않게 하는 것일 테니까요. 완경이라는 표현 역시 이와 비슷한 범주의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폐경은 이미 수많은 여성들이 겪은 일이며, 앞으로도 수많은 여성들이 겪게 될 일입니다. 폐경을 겪은 당사자들은 상실감이나 좌절감 등 다양한 부정적인 감정을 겪는다고 합니다. 실제 단어의 뜻과 상관없이 폐경이라는 단어의 어감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완경이라는 표현은 삶의 단계 하나를 완료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에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는다는 느낌이라고 합니다. 단어 하나를 대체하는 것으로 그들에게 긍정적인 기분을 들게 해준다면 써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드게임을 즐기는 우리들도 모두 각자의 어머니가 있었기에 세상에 태어난 존재입니다. 저희는 이미 사용된 완경이라는 표현을 거두지 않는 것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여성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2024년 11월 12일 코리아보드게임즈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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