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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4 (목)

[황원묵의 과학 산책] 십년이면 강산도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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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황원묵 미국 텍사스 A&M대 생명공학부 교수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자주 쓰지는 않지만 도움될 때가 있다. 오래 타지 생활을 하다 돌아왔을 때 몰라보게 변한 추억의 고향에 대해서는 ‘변한 강산’에 아쉬움이 서려 있고, 현재 처한 상황이 안 좋을 때 이 말을 되새기면 희망이 솟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 ‘시간이 약’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기간 설정을 하지 않아 며칠부터 몇십 년 후까지에도 적용된다. 평범한 단어의 짧은 조합인 속담들이지만 신기하게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희망, 의지력까지 불어 넣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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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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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속담들의 또 다른 면모는 비평형 통계물리의 주요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주변 환경과 무작위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시스템의 상태는 일정 시간 후 완전히 바뀐다는 관점인데, 간단한 예로 물속에서 브라운 운동을 하는 먼지 한 톨을 생각하자. 현재 일정 속도로 나아가다 주변 물 분자들과의 상호작용으로 1조분의 일초 정도 지나면 나아가는 방향이 완전히 바뀐다. 속담에 비유하자면, ‘1조분의 일초면 먼지 운동도 변한다’이다. 얼마만큼 있어야 바뀌는가는 시스템에 달렸다. 세포의 경우 입안 상피 세포는 며칠이면 갈아치워져서 뜨거운 국물에 살짝 덴 입은 금방 낫는다. 면역체계에서 임기응변 싸움 담당인 백혈구들은 하루에서 며칠 살고, 기억세포들은 몇 달에서 수십 년 간다. 순간순간 무작위적으로 일어나는 분자 간 상호작용의 조합으로 바뀌는 현상이 몇 시간에서 거의 일평생까지 펼쳐진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와 ‘세살 버릇 여든 간다’가 그리 상호모순적이지 않다.

생물물리적 측면을 고려할 때 십년이면 대상인 강산뿐 아니라 관측자 자신도 바뀐다. 대상과 주체를 뒤집어 생각하면 ‘십년이면 강산도 바꿀 수 있다’가 되고, 현재 어려운 상태를 벗어나 다른 상태로 나아가는 것은 아무리 오래 걸리더라도 꾸준한 의지와 지금 이 순간의 행동이 모인 결과임을 강조하는 변조 속담이 되겠다.

황원묵 미국 텍사스 A&M대 생명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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