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속 여름배추 수급 안정화
저온 기술로 돌파구 마련
저온 필름·미세 살수 기술로 생산성 27%↑
저온 기술로 돌파구 마련
저온 필름·미세 살수 기술로 생산성 27%↑
전주 농촌진흥청 ‘고온극복융합동’에 있는 배추밭으로 햇볕을 흡수시키는 게 아니라 반사시켜 온도를 낮춰준다는 저온필름(하얀 필름) 위에 심어진 배추들. [이지안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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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폭염으로 인한 배추 파동 와중에 배추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기술을 개발한 인물이 주목을 받고 있다. 농촌진흥청의 위승환 농업연구사가 그 주인공이다.
올 여름 배추값은 말 그대로 몸살을 앓았다. 9월말 배추 한 포기 가격은 9963원까지 치솟았다. 평년보다 70%나 높은 수준이다. 여름 배추 생산량이 평년 대비 13.8% 줄어든 37만 톤에 그친 탓이다. 여름 배추는 주로 해발 400~600m의 준고랭지에서 재배된다. 기후변화 때문에 올해 준고랭지 온도가 3℃ 오르면서 수확량이 타격을 입었다.
위 연구사는 “기후위기로 인한 여름배추 수급 불안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생산을 늘리는 것 뿐”이라며 “봄 배추 저장기간을 늘리는 것, 가을 배추를 조기 출하하는 것도 오르는 배추 값을 잠시 붙잡을 수는 있지만 차선책에 불과하다”고 했다.
위 연구사는 ‘저온 기술을 적용한 여름 배추 재배’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그는 “이 기술들은 처음 나온 기술이 아니다”면서 “온도를 낮출 수 있는 기존 기술을 재발견하고, 이를 배추 재배에 적용하겠다고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8년에 개발된 미세살수 기술과 2022년에 개발된 저온필름 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해당 기술이 개발될 당시에는 폭염도 없었고, 배추 생산이 줄지도 않았으며, 배추값도 뛰지 않아 아무도 신경쓰지 않고 사장됐던 기술이다.
위 연구사는 “중국은 고산지대가 넓어 배추 재배에 있어 기온상승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일본은 배추 소비 자체가 많지 않아 걱정이 없다”면서 “한국은 배추 소비가 유독 많고, 고랭지 면적이 좁아 기후변화에 대비할 필요성이 크다”고 했다. 위 연구사가 사장될 뻔한 미세살수 기술과 저온필름 기술에 관심을 가진 이유다. 그는 “앞으로도 기후변화로 인한 기온상승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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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연구사를 따라 전라북도 완주 소재 농진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고온극복융합동을 찾았다. 100평이 넘는 노지에 푸른 배추들이 자라고 있었다. 위 연구사가 적용한 저온기술로 배추가 일반 배추보다 얼마나 더 잘자라는지 실험하는 시험장이다.
위 연구사는 “저온필름을 적용하면 온도가 4~6℃, 미세살수 기술을 적용하면 3~5℃가 낮아지는 결과가 도출됐다”며 “이 두 기술을 동시에 적용했더니 배추 생산량이 27% 늘어났다”고 뿌듯해했다.
저온필름은 ‘고온장해’를 줄이기 위해 특수하게 만들어진 광반사 필름이다. 쉽게 말하면 채소가 자라나는 곳에 덮는 검은 필름을 하얀색으로 바꾼 것이다. 검은색 필름이나 투명 필름은 햇빛을 그대로 흡수하고 햇볕을 가둬 채소의 온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반면 흰색 필름은 태양을 반사시켜 온도를 떨어뜨리는 기능을 한다. 더울 때 흰색 옷을 입는 것과 같은 원리다. 게다가 저온 필름은 부직포 소재로 만들어져 기존 비닐 필름보다 통기성과 흡수성이 좋아 채소가 숨을 잘 쉴 수 있게 한다.
미세살수 장치는 물을 미세하게 분사해 주변 공기를 시원하게 만든다. 일반 스프링클러와 달리 물 입자가 미세해 공기 중에서 증발하며 주변 온도를 낮추는 데 효과적이다.
농진청은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내년에 강원도 4곳과 전북 2곳에서 ‘준고랭지 여름 배추 고온 경감 기술 시범 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시범 재배 면적은 축구장 52개 크기에 해당하는 18ha에 달한다.
위승환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농업연구사. [사진 = 본인제공] |
위 연구사는 “올해도 일부 준고랭지 지역에서 테스트를 했지만 파종 시기를 잘못 판단해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면서 “내년에는 올해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파종 시기를 조절하고 기기를 자동화해 본격적인 시범 사업에 나설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농진청은 이번 시범 사업을 계기로 준고랭지 재배 면적을 차츰 확대할 방침이다. 지금의 준고랭지 재배 면적으로는 여름배추 수급을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국내 준고랭지 배추 재배 면적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2018년 2891ha였던 재배 면적은 2020년 2453ha로 줄어들었고, 2022년에는 1902ha로 4년 사이 34%가 감소했다. 농진청은 이에 맞서 2030년까지 준고랭지 배추 재배 면적을 1000ha 추가확장할 계획이다. 이는 여름배추 생산량의 약 10~20%에 해당한다.
위 연구사는 “올해와 같은 배춧값 폭등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며 “수급량 자체를 늘릴 수 있도록 재배지를 확대하는 것이 핵심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보고서에서 고랭지 배추 재배지 감소 원인으로 ‘기후 변화에 따른 상품성 저하’를 지적했다. 기온 상승으로 인해 더위에 강한 양상추나 양배추가 선호되면서 배추 재배 면적이 줄고 있다는 것이다. 위 연구사는 “농가들이 더위에 취약한 배추 대신 비교적 강한 품종으로 전환하고 있는데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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