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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정운찬 칼럼] 국회 세종의사당 건설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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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나라가 큰일 났다. 할 일은 안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만 골라서 하고 있다.

우선 국회부터 살펴보자. 경제 외교 안보 등 국내외 상황이 엄중한 데도 여야는 머리를 맞대고 대응책을 모색하기는커녕 오로지 당리당략에 매몰돼 있다. 민주당은 1인 독재 정당으로 돼버렸고 국민의힘은 존재감 없는 조직으로 전락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국회의원들의 거친 말과 행동은 스스로 품격을 저버렸다. 지성과 리더십이 겸비된 언행으로 우리에게 모범을 보였던 지난날 국가지도자들,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연일 날 선 논쟁을 벌이면서도 타협점을 찾으려고 애썼던 양심과 역량 있는 여야 정치인들의 논쟁이 새삼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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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8일 우원식 국회의장과 황우여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제2기 국회지역균형발전포럼 출범식에서 공공기관 지방이전 등을 통한 균형발전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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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의사당 2배 규모 계획

4조~5조원의 세금 투입될 듯

행정수도 이어 입법수도 분할

당장 정치적 이익만 좇은 계획

행정부라고 더 나을 게 없다. 철학도 없고 행동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좋아한다는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의 자유’는 간 곳이 없고, 그 빈자리엔 일관성없는 관치만 횡행한다. 재정은 적자 기조에서 헤어나지 못하는데 세수를 늘리고 씀씀이를 줄이기는커녕, 감세 남발과 목적이 의심스러운 재정 지출은 줄어들 줄 모른다.

그런 세금 낭비의 또 다른 이정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회가 세종시에 제2 국회의사당을 여의도 의사당의 2배 규모로 지을 계획이라고 한다. 입지는 이미 선정됐고 설계, 시공, 이전에만 4조~5조원의 세금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과연 이들은 1조원이 얼마나 큰 돈인지 알기나 하는지 의심스럽다.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태어난 그해, 그날부터 오늘까지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100만원씩 써도 다 쓰지 못할 정도로 큰 금액이다. 그러니 4조~5조원은 어떻겠는가? 부디 제2 국회의사당 건설은 보류하고, 그 돈이 있으면 중소기업 지원이나 국가 R&D 예산에 보태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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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세종동에 있는 국회세종의사당 예정부지. 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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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지난 2010년 6월 29일, 세종시를 행정수도 대신 경제도시, 교육도시, 문화도시, 과학도시로 만들자는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후 본격적으로 추진된 행정 부처의 세종시 이전은 지난 10여 년간 여러 가지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보여왔다. 무엇보다도 젊은이들이 세종시 근무를 꺼려 중앙부처 공무원을 안 하려 한다. 서울 노량진역 부근 공무원 준비 학원은 대부분 사라졌다. 이미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세종시에서 사무관으로 일하는 초임 공무원들의 이직도 늘고 있다. 남아있는 공무원들도 선배 공무원들에게 업무를 잘 배우지 못한다. ‘길 과장’, ‘길 국장’으로 불리는 상위직 공무원들은 서울을 수시로 오가야 하기 때문이다.

공무원 되기를 포기한 청년들은 ‘네카라쿠배당토(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달의민족, 당근, 토스)’와 같은 젊고 핫한 IT 회사를 선호한다. 공직을 우수한 젊은이들로 충원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공무원들은 산업화 시대 이래 ‘한국 주식회사(Korea Inc.)’의 일원으로 기업, 은행과 함께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다. 공무원의 질적 저하는 국가 경제발전의 한 축의 붕괴로 이어지지 않을까.

수도 이전은 제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충청도 표를 얻기 위해 내놓은 공약이었고 실제로 그가 밝힌 것처럼 ‘재미를 보아’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대한민국의 수도는 관습적으로 서울이므로 이전이 불가능하다고 하자 당시 박근혜 야당 대표와 타협한 것이 행정중심 복합도시의 건설이었다. 물론 제2차 대전 이후 호주나 브라질처럼 수도를 옮긴 나라는 있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처럼 수도가 행정수도, 입법수도, 사법수도로 나뉜 나라도 있다. 그러나 행정수도가 두 군데로 나뉜 나라는 없다. 오직 한국뿐이다. 그런데 행정수도를 분할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입법수도를 분할하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이것은 ‘미래지향적인 도전’이 아니라 ‘남들에게서 배우지 못하는 몽매함이자 만용’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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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세종의사당 설치를 위한 국회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세종시청 1층 국회 홍보전시관에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 확정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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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상으론 수도권의 과밀화를 해소하겠다고 신도시를 만들었지만, 1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수도권에서 유입된 인구는 별로 없다. 주로 청주, 공주, 천안, 대전 등 인근 지역에서 유입된 것이 고작이다. 게다가 초기에는 인근 지역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더니 이제는 세종시의 메리트가 기대보다 못하자 거꾸로 세종시의 공동화를 걱정하게 되었다.

국회 세종의사당을 지으면 이러한 부작용이 해소될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세종시에는 정부, 국회, 사법부가 모두 가든지, 아니면 아무것도 옮기지 말았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부작용이 생길 것은 뻔했다. 세종의사당 신설은 백 년을 내다보는 국가대계를 설계한다는 충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의 장래가 어찌 되건 당장의 정치적 이익에 눈이 먼 얄팍한 꼼수라고 본다. 정치권은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진정으로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 성찰해야 한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서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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