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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신념’ 병역 거부자에, 대법원 “대체복무 허용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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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개인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 나단씨가 지난 2021년 9월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방병무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전쟁없는세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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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사상을 이유로 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역 복무 신청을 기각한 정부의 결정은 타당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지난 2018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판결 취지와 달리 ‘양심’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대법원 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사회주의에 기반한 평화주의 신념을 이유로 대체역 심사위원회에 대체역을 신청했다가 기각 당한 나단(34)씨가 심사위를 상대로 낸 대체역 편입신청 기각결정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나씨의 상고를 최종 기각했다고 12일 밝혔다.



나씨는 지난 2020년 10월 “사회주의자로서 자본가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국가의 폭력기구인 군대라는 조직에 입영할 수 없다는 개인적 신념에 따라 군 복무를 거부한다”며 심사위에 대체역 편입을 신청했다. 심사위는 이듬해 7월 나씨의 신청을 기각했다. 나씨가 모든 폭력과 전쟁을 반대하는 게 아니라, 사회주의 사상에 반하는 등 특정 주체의 폭력과 전쟁에 반대하기 때문에 헌법상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1심도 심사위의 판단이 타당하다고 봤다. 나씨가 군대에 가지 않으려는 이유가 양심보다 특정 사상 실현의 자유에 가깝고, 사회주의 사상이 헌법상 보호를 받지도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1심 법원은 “원고는 우리 헌법이 수호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 내에서의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헌법 질서 자체를 부정하는 내용의 사상 실현의 자유까지 양심적 병역 거부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2심은 믿음이 깊고 확고한 사상은 양심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며 1심의 판단을 일부 반박했지만, 심사위의 기각 결정은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2심 법원은 나씨의 답변 일부 내용이 일관적이지 않는 등의 이유로 “원고의 사회주의 신념은 유동적이거나 가변적인 것으로서, 대체역 편입신청의 이유가 되는 양심에 이르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며 “원고의 군복무 거부 결정이 사회주의 신념에서 비롯된 것인지, (선택적) 비폭력 신념·반전주의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 실체를 분명하게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도 역시 “원심이 대체역 편입 심사기준, 양심의 존재, 양심의 유동성 및 가변성, 교정시설 복무의사와 군복무 거부 신념의 관계, 대체역 복무 이행 의지의 확인 및 그 심사기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며 나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번 판결이 병역거부 사유인 ‘양심’을 매우 좁게 해석한 판결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 2018년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판결을 내놓으면서 ‘양심적 병역 거부 사유 판단은 양심의 내용의 타당성과는 무관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 사회주의 사상이 헌법상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씨의 병역거부 사유를 인정하지 않은 하급심 판단은 이런 취지에 배치된다.



시민단체 전쟁없는세상은 지난달 28일 성명을 내고 “이번 판결은 양심을 매우 협소하게 해석하고 기계적으로 판단했다는 점에서 양심의 자유에 대한 인식과 논의를 매우 후퇴시켰다”고 비판했다.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나씨는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판결 이전에 (병역 거부 처벌 때문에) 공군을 지원했다가 나중에 병역거부 대체역을 신청했는데 이를 두고 법원은 나씨의 신념이 일관되지 않다며 양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도 봤다”며 “양심을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볼 게 아니라 양심이 형성되는 과정이 충분히 타당했는지를 법원이 판단했어야 했다. 이렇게 양심의 개념을 협소하게 보는 건 교조주의나 다름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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