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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취재썰] '아파트 잔혹사' 멈출 수 있을까…국무총리 목청 높이다 쏙 들어간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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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졌다 하면 '대형 사건'

정신질환자 범죄

10년 새 2배 넘게 증가

정부, 대대적 홍보하더니

논의 멈춘 '사법입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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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진주 방화·흉기난동' 안인득, '2024 일본도 살인' 백OO, '2024 흡연장 살인' 최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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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인득, 일본도, 흡연장' 살인 사건…불안한 데자뷰



2021년 진주 안인득 방화·흉기난동 사건과 올해 여름 일본도 살인 사건, 최성우 흡연장 살인 사건은 겹치는 게 많습니다. 가해자가 사는 아파트에서, 원한 관계가 없던 이웃을 상대로 벌인 일이었다는 것. 그리고 제때 치료받지 못한 피해망상 증세가 악화돼 사건이 벌어졌단 점입니다.

□ 2019년 정신질환자였던 안인득은 범행 전 6개월 사이 폭행과 이상행동으로 이웃으로부터 9차례 112 신고를 당했습니다. 약을 먹지 않으면서 이웃이 자신을 모욕하고 해를 끼친단 망상과 환청이 심각해졌습니다. 이를 알게 된 가족이 경찰, 동사무소, 법률구조공단까지 찾아가 강제입원을 도와달라 했지만 외면받았습니다. 안인득의 형은 당시 경찰에 "가족 동의로 강제입원을 하면 가족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여러차례 호소했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 지난 7월 이웃에게 일본도를 휘둘러 숨지게 한 백모씨 범행 동기도 망상 탓이었습니다. 피해자가 자신을 미행해온 중국 스파이었다 주장했지만 근거는 없었습니다. 백 씨는 3년 전부터 방에 틀어박혀 취업 준비를 했습니다. 가족에 따르면 백 씨는 '내 아이디어들이 도청되어 언론에 유출되고 있다', 'TV 속 인물이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등 전형적 망상 증세를 공유했습니다. 하지만 백 씨는 한번도 치료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이런 말을 듣고도 당시 이상하단 생각은 전혀 못 했다고 했습니다. 범행 뒤엔 아들의 망상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이 됐습니다. 백 씨는 범행 전 6달 사이 4차례 이상행동으로 신고 당했고 '정신이상자 같다'는 내용도 있었지만 주의깊게 본 경찰은 없었습니다.



□ 지난 8월 아파트 흡연장에서 70대 암환자 A씨를 폭행해 숨지게 한 최성우도 심각한 망상을 겪은 것으로 보입니다. 최 씨는 어머니를 희롱하고 괴롭혀온 사람이 있어 폭행에 이르게 됐다 주장합니다. 조사에선 A씨를 가해자로 착각했다고도 했습니다. 최 씨와 가족은 직전 아파트에서도 똑같은 피해를 주장하다 이사를 온 것으로 확인됩니다. 취재진과 통화에서 최 씨 가족은 아파트에서 위협적으로 행동한 가해자가 '여러명'이었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가해자라는 사람의 얼굴을 특정하진 못한다고 했습니다.



통계적으로 조현병 유병률은 일반 인구 100명 중 1명 수준으로 높습니다. 대부분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정상적 경제활동을 하며 일상을 살 수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서울중앙지법은 안인득 사건 피해 유족의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습니다. 조현병 환자였던 안인득에 대해 112신고를 받은 경찰의 입원 조치가 있었다면 범행이 일어나지 않았을 개연성이 높다고 본 겁니다. 재판부 판단 근거 중엔 안인득이 과거 치료를 제대로 받았을 당시 위험성이 현저히 줄어들어 '안전한 환자'가 됐단 진료기록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현실에선 강제입원 10건 중 8건이 가족 손에 맡겨지고 있습니다. 위 사례들처럼 가족은 문제를 알고도 지치고 두려워서, 또는 객관적으로 문제를 인지하지 못해서 환자 치료의 적기를 놓치곤 하는데도 말입니다. 온 가족이 같은 증세를 겪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이렇게 될 때까지 뭘 했냐.'

정신질환자 범죄 사건이 터지면 가장 먼저 가족에게 비난이 쏟아지지만 그것만으론 달라질 게 없어 보입니다.

처벌 시 병세를 참작해줘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이런 범죄에 노출될 가능성을 낮출 방법을 깊이 고민할 때입니다. 정신질환자 강제 입원치료 체계가 바뀌지 않는 한 우리 일상을 위협하는 '아파트 잔혹사'는 되풀이 될 거란 게 전문가들의 우울한 예측입니다.

가족 손에 떠넘겨진 환자들, 정신병원 대신 구치소로



" "'너 아직 살아있잖아, 아직 안 찔렸잖아. 니가 가족이잖아. 경찰에 연락 그만하고 가족이 입원시키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이게 현실입니다. 누가 죽거나 다쳐야 돼요." "

36년 조현병을 앓아온 형을 돌봐온 김영희씨 눈빛이 인터뷰 도중 흔들렸습니다. 경찰이 정신질환자 강제 입원 조치에 소극적이란 이야기를 하던 중 눈앞에 무언가 스쳐간 것처럼 잠시 얼어붙었습니다.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인 김 씨는 입원적합성심사 위원으로서, 수많은 강제입원 환자들의 삶이 담긴 서류를 읽고 입원 연장 여부를 판단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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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가 정신 건강 현황 보고서(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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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강제 입원(비자의 입원) 85%는 법상 보호의무자인 가족 동의로 이뤄지는 '보호입원'입니다. 자·타해 위험이 의심될 때 지자체장 신청으로 진행되는 행정입원이나, 경찰관 동의로 3일간 진행되는 응급입원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가족 몫입니다. 아찔한 상황에 신고를 해도, 경찰관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벌어진 일이 아니고서야 대부분 가족에게 보호입원을 권하고 철수하곤 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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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자 범죄 기사에 달린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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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히 가족이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니야?' "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족이 강제 입원을 주도하게 하는 '보호의무제'는 우리나라와 중국 등 남아있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후진적 제도라는 게 전문가들 평가입니다.

'보호입원'이란 말의 따듯한 어감과 달리 현실은 가혹합니다. 대부분 정신질환자는 병에 걸렸단 자각이 없습니다. 가족이 흥분 상태의 정신질환자를 억지로 병원에 데려가고, 이후 입원 연장 결정까지 떠맡게 됩니다. 이송 과정에서 사설 이송단(앰뷸런스)을 이용하거나 물리력이 동원되기라도 하면 불법 '감금죄'로 처벌받은 판례도 있어 도움을 받기도 힘듭니다. 이 과정에서 가족들이 크게 다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환자는 가족에 대한 원한이 쌓이고, 씻을 수 없는 악감정에 가족 관계가 파괴돼 퇴원 후 가족에게 앙갚음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현옥 경남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장은 "범죄가 일어나기 전 1차적 피해자는 사실 가족인 경우가 많다"며 "환자가 만성이 되기 전 빨리 치료받아야 하는데 가족이 떠안다보니 그러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직 경찰들도 입원 연장 결정 때 환자가 가족을 겁박해 완치가 안 됐는데 퇴원을 요청하게 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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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최근 보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사건 1심 판결 중 54.7%가 정신질환자로 나타났습니다. 이들 판결문을 뜯어보면, 멀쩡한 자신을 '부당하게 감금시켰다', '정신병자 취급을 했다'는 등의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물론 여기엔 환자에게 악몽같은 기억을 안겨주는 정신과 병동의 돌봄 현실도 한 몫 하고 있습니다.

결국 많은 가족들이 치료를 포기합니다. 정신질환자가 제때 약을 먹고 치료받을 수 있게 돌봐줄 거의 유일하고 책임 있는 주체인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됩니다. 약을 끊고 상태가 악화돼 경악스러운 '이상 동기' 범죄자가 되어버리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14명의 사상자를 낸 분당 흉기 난동범 최원종 또한 조현병 환자였지만 가족이 병원까지 데려가는 데에 실패해, 약을 끊으면서 상태가 악화된 것으로 드러난 바 있습니다. 지난 2일 벌어진 강남 무면허 8중 추돌 사고 운전자 김모 씨 또한 중학생 때부터 망상과 환청 증세를 보여왔다고 합니다. 김 씨 어머니는 '입술이 터져가며' 강제입원도 시도해봤지만 결국 포기하고 따로 살게 됐다고 했습니다.

비극이 반복되며 전국 교정시설 정신질환자 수는 2012년 2880명에서 지난해 6094명으로 2배 넘게 늘었습니다(2024 교정통계연보).

경찰도, 의사도 이유는 있다…정신질환자의 '치료받지 않을 권리'



가족이 아니면 누가 할까요.

경찰에게 법적 권한이 있습니다. 자·타해 우려가 있는 환자에 대해 정신과 전문의 등에게 진단과 보호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정신건강복지법, 경찰관 직무집행법). 신고를 받아 당장 상황이 심각할 경우 3일 간 강제로 '응급입원' 조치를 할 수 있고, 덜 급박하더라도 보건소에 '행정입원'을 요청하면 지자체장 권한으로 입원 치료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가족의 '보호입원' 때와 달리 119구급대로부터 이송 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장의 경찰과 의사들은 적극 개입하기엔 불안한 현실이라고 말합니다. 당장 위험한 상황에서 정신질환자를 제압하고 이송해 진단 받게 할 권한과, 이후 강제 입원이라는 일종의 '감금 행위'를 실행할 법적 권한은 별개인 경우를 자주 본다는 겁니다. 아찔한 범죄 신고 현장에서 경찰이 정신질환자를 의사에게 데려가지만, 상태가 잠시 개선돼 퇴원하거나 입원 연장이 되지 않은 경우, 국가인권위 민원 제기부터 시작해 민형사 소송에 시달리는 사례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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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준수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석좌교수는 "한 경찰관이 폭력사건 현장서 환자와 몸싸움 끝에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받게 한 뒤 퇴원했는데, 이후 소송을 당해 오랫동안 고생한 적이 있다"며 "적극 개입 시 보호받을 수 있는 법 조항을 너머, 입원 판단 주체를 명확히 하는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또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되면서 입원이 어려워지고 환자의 조기 사회 복귀가 장려돼왔는데, 이들을 관리하고 받아줄 인프라는 돼 있지 않아 결국 얼마 안 돼 다시 입원하거나 범죄에 휘말리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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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정신질환자 범죄 현장을 경험해본 김건표 경감(김해중부서 신어지구대)은 "출동해보면 신고 내용과 현장이 다른 경우도 많고, 대화가 상식적으로 되는 경우도 많아 판단이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나마 "안인득 사건 이후로는 각 지역의 정신건강센터 사회복지사들이 경찰 출동 현장에 나가 '체크리스트'로 환자 상태 판단에 도움을 주고 병상 있는 병원에 연계해주는 경우도 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장마다 바로 올 수 있는 응급개입팀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지역 편차도 크다"고 했습니다.

한 정신의학과 전문의도 "폭력이 거듭돼 가족 동의로 입원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소속된 한 단체로부터 불법 입원이라며 고소당한 건이 진행 중"이라고 털어놨습니다.

정신질환자 강제 입원과 치료는 '인권 침해' 측면에서 조명되며 조건이 강화돼 왔습니다. 2016년 경기도에선 긴급하게 환자를 입원시킨 뒤, 가족 증명 서류를 며칠 뒤 받는 등 절차가 미비했던 점이 포착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50여명이 무더기 기소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의사 대부분 무죄를 받았지만, 이후 아무리 급박해도 직계 가족 2명이 병원에 '가족관계증명서' 같은 서류와 함께 오지 않으면 '보호입원'은 절대 시켜주지 않는 철칙이 자리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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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지하철에서 흉기를 휘두른 혐의로 징역 8년을 선고받아 수감 중인 정신질환 여성의 아버지는 "상태가 심상치 않아 온 가족이 달려들어 겨우 병원까지 데리고 갔는데, 부산에 있는 엄마가 경기도 병원까지 오기 전엔 절대 입원 못 시켜준다고 해서 의사 앞에서 눈물을 터뜨린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여성이 시민에게 흉기를 휘두르기 전, 가장 먼저 흉기를 든 대상은 할머니였습니다.

정신질환도 없는 가족을 이해관계 때문에 정신병원에 불법 감금시켰다는 사건에 비해 미디어에 잘 보도되지 않는 '진짜' 정신질환자 가족의 현실과 절규입니다.

모두가 적극 개입을 꺼리는 가운데, 환자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현옥 경남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장은 "가족 동의가 없는 경우, 보건소는 경찰이 응급입원시킨 뒤 행정입원으로 전환하길 바라고, 경찰은 응급입원은 부담스러우니 보건소가 지자체장 통해 행정입원시켜주길 바라는 상황이 자주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리저리 떠넘겨지며 치료를 받지 못 하고 방치된 정신질환자들이 범죄자로 전락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무총리 목소리 높인 사법입원제 TF, 4번 모이고 멈춰



정부도 문제는 알고 있습니다.

지난해 여름,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던 '이상 동기 범죄'가 잇따르자 대안을 내놨습니다.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결정을 법원에 맡기는 '사법입원제'입니다. 경찰은 자·타해 위험이 있는 환자를 제압해 병원으로 데려가고, 병원에선 의사가 증세를 판단한 뒤, 입원 여부는 법원이 정하도록 역할 분담해, 사법 리스크를 줄여주고 국가가 적극 개입하게 하자는 겁니다.

환자 개인의 자유를 박탈하는 문제에 대해 최후의 통제기관으로서 법원에 그 기능을 맡기잔 취지로 미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 법제화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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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상 동기 범죄 재발 방지를 위한 담화문 발표'에서 "중증정신질환자에 대해서는 적기 치료가 이뤄질 수 있도록 사법입원제 도입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공식화했습니다. 같은 달 관계부처 합동 '정신질환자 비자의 입원제도 개선 TF'가 대대적으로 꾸려졌고, 경찰·소방·법무부·복지부가 참여하는 회의체가 마련됐습니다.

하지만 회의는 올해 1월까지 4차례 열린 뒤 멈춘 것으로 JTBC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경찰청 관계자는 "복지부가 회의 소집을 하지 않아 그 뒤론 활동이 없었다"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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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 보건복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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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 산하 별도 위원회를 구성해 구체적인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이 위원회 또한 JTBC 보도가 나간 지난달 말까지 정식 출범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열 달 가까이 사법입원제 관련 범정부적 논의는 멈춰 있었습니다.

선결 과제는 인적·물적 자원 확보입니다. 사법입원제가 도입되면 재판처럼 법정으로 환자가 이송되거나, 판사가 병원으로 찾아가 환자 당사자를 심문하고 의료진 의견을 들으며 입원 여부를 판단합니다. 이 과정이 실효성 있게 되기 위해선 인력 확충·양성이 필수적입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 연구 용역 보고서 〈정신보건법상 강제입원제도 개선과 가정법원의 역할(2016)〉에선 입원심사 건수가 연간 10만건을 웃돌 것이라 예상하면서 판사 178명·조사관 893명을 증원해야 하고, 환자를 위한 국선변호사 선임비용이 연간 214억원이 필요하다고 추산했습니다. 우리나라 법관 1인당 사건 수는 해외의 3~4배 정도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급한대로 법원이 아닌 '준사법기관'을 설치해 하루빨리 비슷한 제도라도 정착시켜 보잔 의견도 있습니다. 호주나 대만에선 준사법기관인 '심판원'을 설치해 강제입원 적합성을 심사하고 있습니다. 권준수 한양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현직 판사가 아닌 퇴직 법관, 원로 법조인 등을 활용할 수 있다"며 "강제 입원의 법적 판단 책임을 사법부나 준사법기관이 가져가 줘야만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실 우리에게도 사법입원제는 새로운 개념이 아닙니다. 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 2019년 안인득 방화·흉기난동 사건, 2023년 서현역 칼부림 사건 등 정신질환자가 벌인 충격적 사건이 터질 때마다 소개돼온 '해결사'입니다.

하지만 사건이 가라앉고 나면 함께 잊혀지며 구문이 되어 왔습니다.

이번에도 사회적 논의를 덮어놨다가 또다른 비극이 우리 사회를 떨게 할 때 다시 꺼내 드는 비장의 카드로 재소환 되는 걸까요.

'사법입원제' 논의 위해 또다른 '충격적 사건' 필요한 걸까



중증 질환자 '강제 입원'을 논하기 전에, 예방과 조기발견이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인프라부터 수가와 입원 병상 부족 문제 등 개선돼야 할 취약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큰 불을 잡는 차원에서 가장 위태로운 급성기 환자 입원 체계를 손보는 문제가 서둘러 답을 찾아야 할 급선무임은 틀림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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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기사('정신질환 범죄'는 가족의 몫?…정부 "총력 대응" 홍보하더니 ▶ https://news.jtbc.co.kr/article/nb12221126)가 나간 뒤 시청자 메일을 받았습니다. 며칠전 어린 아들과 아파트를 거닐다 20대 남성으로부터 이유 모를 구타를 당했는데, 알고보니 정신질환자였다는 겁니다. 가해자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집으로 곧 돌아온다는 소식에 이사를 고려하고 있다 했습니다.

최근 이상 동기 범죄 사건 기사에서 정신질환자가 아닌 경우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보호의무자'인 가족에게 정신질환자 강제 입원 문제를 떠맡겨온 후유증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 서현역 칼부림 사건이 터지자 번화가에 경찰특공대와 장갑차를 배치하고, 일본도 살인 사건이 나자 도검 소지 허가제로 응수하면서도, 해결이 어려운 중증 정신질환자 입원 제도 문제는 외면한 결과라는 겁니다.

정신질환 범죄자 가족들은 피해자이자 목격자, 그리고 보호의무자로서 죄과를 나누어 지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동시에 "가족에게 지워진 무거운 의무와 책임을 국가가 제자리로 가져가야만 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임지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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