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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3 (수)

헌법재판소 기초 다진 어른…이시윤 전 감사원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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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합헌, 권리구제형 헌법소원, 불기소 헌법재판

헌법재판관 역임하며 초창기 토대 마련

헤럴드경제

이시윤 전 헌법재판관, 전 감사원장[연합]


[헤럴드경제=박지영 기자]민법과 민사소송법 권이자로 초기 헌법재판소의 이론적 기틀을 세운 이시윤 전 감사원장이 9일 9일 낮 12시40분께 신촌세브란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89세.

고인은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58년 10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뒤 판사가 됐지만, 이후 서울대 등에서 6년간 교수로 일했다. 1982년에 쓴 민사소송법 교과서는 이 분야의 독보적인 베스트셀러였다. 처음으로 독일 이론을 소개해 민사소송법의 ‘탈일본화’에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8년 이일규(1920∼2007) 대법원장 지명으로 초대 헌법재판관이 돼 초기 이론적 기틀을 세우는데 크게 기여했다. ‘한정 합헌’ 등 헌재의 각종 결정 양식이 고인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한정합헌은 법률에 대한 여러 해석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을 때 특정한 해석을 택하여 그 해석 하에서 합헌이라고 선언하는 결정이다.

이범준의 책 ‘헌법재판소, 한국 현대사를 말하다(2009)’에 따르면 고인은 1990년 4월 2일 국가보안법 7조1항 고무·찬양죄 위헌 제청 사건 선고에서 법정 의견을 집필했다.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무해한 행위는 처벌에서 배제하고, 이에 실질적 해악을 미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로 처벌을 축소 제한해야 한다’고 한정 합헌을 선고했다. 이후 국가보안법이 헌재 한정 합헌 결정에 맞추어 개정되기도 했따.

공권력을 문제 삼는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이 만들어진 것도 고인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사법서사 규칙이 부당해 자격증을 따지 못하고 있다는 헌법소원에 대해 다른 재판관들이 각하 의견을 냈지만, 고인은 ‘공권력 행사 근거의 일종인 법률이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때는 헌법소원을 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법률에 대한 권리구제형 헌법소원의 시작이었다.

검찰의 불기소를 헌법소원 대상으로 만든 것도 고인이다. 고인은 헌법 27조 5항 법정진술권을 근거로 1989년 4월 17일 ‘검찰의 불기소는 헌법소원 대상이다’라고 선언했다. 법정진술권이란 형사피해자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당해 사건의 재판절차에서 진술할 권리를 말한다. 검찰의 불기소 처분으로 법정진술권이 침해당할 수 있기 때문에 헌법재판의 대상이 된다는 취지였다.

헌법재판관 임기를 9개월 남긴 1993년 12월16일 총리로 영전한 이회창씨의 후임으로 김영삼 정부 2대 감사원장에 발탁됐다.

유족은 아들 이광득(광탄고 교장)·이항득(사업)씨와 며느리 김자호·이선영씨, 손녀 이지원(초등교사)씨, 손녀사위 류성주(서강대 교수)씨 등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발인 12일 오전 8시, 장지 안산시 와동 선영. ☎ 02-2227-7500

park.jiye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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