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3 (수)

문 정부서 6조8천억 받고 다음 정부에 100조 부담 넘겨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지난달 1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직원들과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시장은 효율적이지만 종종 ‘시장의 실패’도 발생한다. 시장 실패를 치유해야 하는 정부도 이익을 보는 정권과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정권이 불일치할 수 있다. 세금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모든 정권은 정파적 이득을 위한 감세의 유혹이 생긴다. 그러나 감세를 하면 복지나 연구·개발에 쓸 돈이 적어지거나 국가 부채가 늘어난다. 복지지출 감소도 국민들이 싫어하기에 세금 규모와 재정지출 규모는 적절히 정치적 균형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문제는 감세의 이익을 얻는 정부와 재정여력 감소의 피해를 보는 정부가 불일치한다면 정치적 균형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박근혜 정부는 임기 내내 증세를 하여 재정여력을 확장했다.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고 담뱃세를 인상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규모의 조세 저항도 발생했다. 그러나 재정여력 증대의 열매는 달콤했다. 힘들고 귀찮지만 억지로라도 운동하면 건강해지는 법이다. 조국혁신당 정책위에 제출한 졸고 ‘정부별 세법 개정이 현 정부 및 차기 정부에 미치는 세수 효과’를 보면, 박근혜 정부가 욕을 얻어가며 증세를 한 결과 4년간 10조6천억원의 재정여력을 활용할 수 있었다.





윤석열 기획재정부의 이상한 셈법





더 재미있는 것은 문재인 정부가 박근혜 정부의 증세 효과의 열매를 더 많이 가져갔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문재인 정부에 준 ‘증세 선물’은 무려 21조8천억원이다. 박근혜 정부 하반기의 증세 효과를 문재인 정부는 5년 내내 누릴 수 있었다. 문재인 정부도 임기 첫해 증세를 했다. 소위 ‘핀셋 증세’를 통해 소득세 최고세율을 올리고 종합부동산세를 강화했다. 다만, 둘째 해부터는 감세 정책을 펼쳤다. 연구·개발 및 시설투자 세제 지원을 강화하고 근로장려 세제를 확대하는 등 비과세 감면을 늘리는 감세를 지속했다. 그 결과 문재인 정부 증세의 열매는 문재인 정부가 상당 부분 활용했다. 문재인 정부는 5년간 자신이 확장한 재정여력 10조원을 활용하고 윤석열 정부엔 6조8천억원의 세수 선물을 안겨주었다.



윤석열 정부는 더 드라마틱하다. 윤석열 정부는 첫해부터 매년 큰 규모로 감세의 달콤한 사탕을 먹었다. 문제는 윤석열 정부의 감세의 피해는 윤석열 정부보다 차기 정부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집권 5년간 83조7천억원의 세수가 감소한다. 이런 감세는 차기 정부의 세수를 무려 100조원 감소시킨다. 이것도 기획재정부가 주장하는 감세 효과를 기반으로 추산한 숫자다. 기재부는 원래 세수 효과를 좀 보수적으로 추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왜인지 윤석열 정부의 기재부는 매년 세수 효과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추산한다. 그래서 매년 역사상 최고 수준의 세수 결손을 기록한다. 기재부는 세수 결손과 감세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한다. 감세의 효과를 본예산에 충실히 반영했다면 감세와 세수 결손은 별개다. 그러나 감세의 효과를 본예산에 충실히 반영하지 않으니 세수 결손이 발생한다.



감세의 효과는 참혹하다. 언론과 정치권은 ‘세수 결손’ 얘기만 한다. 그러나 본예산 대비 감소한 ‘세수 결손’보다 전년 대비 감소한 ‘세수 감소’가 더 중요하다. 사상 최악의 세수 감소가 오히려 ‘세수 결손’으로 문제의 심각성이 가려지고 있다.



지난 정부가 마지막으로 예산을 편성한 2022년 국세수입 규모는 396조원이다. 그런데 올해 말 국세수입 예측치는 338조원이다. 윤석열 정부 2년 만에 무려 58조원의 세수가 줄었다. 정부는 세수 감소의 원인을 ‘글로벌 복합위기’라고 표현한다. 물론 경기 영향도 존재하기는 한다. 그러나 2022년 이후 경제성장률은 좋지 않았지만, 물가상승률을 더한 ‘경상성장률’은 매년 4% 내외 증가했다. 세수는 경제성장률이 아닌 경상성장률과 더 큰 상관관계가 있다. 경상성장률은 높은 물가 덕(?)에 꾸준히 증가했는데 2년 만에 국세수입이 무려 14.7% 감소했다. 코로나 위기(-2.7%), 금융 위기(-2.8%), 외환 위기(-3%) 때도 이렇게 많이 세수가 감소한 적은 없다. 그야말로 외환 위기 당시 세수 감소 폭을 몇배 뛰어넘는 세수 감소로 매년 큰 규모의 재정수지 적자를 기록한다.





약자·지방에 더 참혹한 효과





세수가 부족하다고 정부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약자 복지’를 주창하는 윤석열 정부는 그 핵심인 ‘긴급복지’ 예산을 줄였다. 긴급복지는 빈곤의 극한에 몰린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송파 세 모녀 사건’ 처럼 갈 곳 없는 약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귀한 제도다. 보건복지부는 긴급복지 삭감의 이유로 “최근 연간 불용액이 200억원”이어서 85억원을 줄였다고 한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2023년 불용 규모는 148억원이다. 불용이 발생한 이유는 본예산 편성 금액이 부족해서 다른 사업에서 239억원을 가져다 썼기(전용) 때문이다. 239억원을 전용한 결과 실집행률이 무려 102.9%다. 실집행률이 100%가 넘는 사업에 불용을 핑계로 돈을 깎았다는 복지부 설명은 국민을 속이는 궤변에 불과하다. 게다가 ‘약자 복지’란 말은 사회복지학계에서는 사실상 사멸된 개념이다. 복지는 ‘시혜’가 아니라 시민이 누려야 할 ‘권리’라는 인식이 보편화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기후 관련 지출도 2022년 대비 꾸준히 줄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 관련 프로그램 예산을 모두 더하면 2022년 4조8천억원을 지출하다가 2023년 4조5천억원, 2024년 3조8천억원, 2025년 3조7500억원으로 매년 줄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기후 악당이 되고 있다.



지방시대라는 말에 무색하게, 지방정부는 윤석열 정부 감세의 최대 피해자다. 이명박 정부 등 감세 정부는 예전에도 있었다. 그래도 지방재원 대책은 마련했다. 반면 윤 정부는 중앙정부 감세의 피해를 적극적으로 지방에 떠넘긴다. 2022년 75조원에 이르던 지방교부세는 올해 64조5천억원으로 급감했다. 더 큰 문제는 윤석열 정부의 감세는 집권 5년간 83조7천억원의 세수를 줄이지만 차기 정부에서는 100조원의 세수를 줄이면서 그 악영향이 더 확대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힘들게 만든 재정여력을 문재인 정부에 세수 선물 22조원으로 주었다. 문재인 정부는 자신이 만든 16조7천억원의 재정여력을 상당 부분(9조9천억원) 활용했다. 윤석열 정부는 -83조7천억원의 재정여력을 소모하고 차기 정부에 -100조원의 부담을 안겼다. 2024년 상속세 감세 정부안을 국회가 막아야 할 이유다.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정을 가지고 함께해 주신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서, 결산서 집행 내역을 매일 업데이트하고 분석하는 타이핑 노동자. ‘경제 뉴스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등의 책을 썼다.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행운을 높이는 오늘의 운세, 타로, 메뉴 추천 [확인하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