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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 (금)

미셰린 식당도 로봇 서빙 시대…당신은 어떤 레스토랑을 원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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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대학 동창 모임 장소는 최근 강남에 문을 연 유명 브런치 레스토랑이었다. 서울의 신상 레스토랑을 줄줄 꿰고 있는 ‘맛집’ 담당 친구가 식당 예약 애플리케이션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예약한 곳. 보는 것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음식 비주얼과 이국적이면서도 세련된 인테리어, 화창한 주말의 활기가 어우러진 분위기까지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테이블에 앉기 전까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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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려고 예약하고 온 게 아닌데…

문제는 식당에 도착한 순간부터 시작됐다. 예약시간에 맞춰 식당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우릴 맞아주는 직원도, 인사도 없었던 것이다. 오가는 이들로 뒤엉킨 매장 입구에서 목을 길게 빼고 서 있길 얼마나 지났을까. 흰 셔츠에 검은 에이프런을 두른 직원이 다가와 예약자 이름을 묻고는 우릴 안내했다.

“주말엔 업장 상황에 따라 예약 좌석이 변경될 수 있다”는 직원의 건조한 설명을 곱씹으며, 칼질을 할 때마다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서 흔들리지 않기 위해 아랫배에 힘을 꽉 주어야 했다. 프렌치 음식을 미국식으로 풀어낸 메뉴에는 낯선 이름들이 많았다. 달걀 요리에 쓰인 소스가 어떤 것인지 묻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던 서빙 직원은 이내 표정을 바꿔 우리 테이블 위에 있던 소스들을 불쑥 집어갔다.

음식은 소문대로 훌륭했지만 마음이 몇번 상하고 나니 맛에 집중하던 혀의 감각이 무덤덤해지는 듯했다. 아무리 손을 들어도 눈을 맞추지 않는 직원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이곳은 요즘 테이블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인기 레스토랑이야. 음식을 먹어본 것만으로도 충분해’라는 마음과 ‘아무리 그래도 메뉴 하나에 3만원이나 하는 레스토랑에서 손님은 안중에도 없다니, 너무한 거 아니야?’ 하는 마음이 엎치락뒤치락했다.

■효율과 비용 절감에 뒷전 된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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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집이 밥만 맛있으면 그만’인 시대는 지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2023 식품소비행태 통계보고서에 따르면 ‘외식을 할 때 음식점 선택 기준’으로 ‘음식의 맛’과 ‘청결도’, ‘가격 수준’, ‘분위기’ 등 13가지 항목 중 ‘서비스’가 여섯 번째를 차지했다. ‘집에서 먹는 음식은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다’는 응답은 2017년 89%에서 2023년 59%로 크게 하락했을 정도로 밥을 사 먹는 비율 또한 늘었다.

외식업의 발달과 함께 외식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며 식당에서 경험하는 서비스의 총합이 고객 만족도와 재방문을 좌우하는 주요 지표로 자리 잡고 있지만 식당에서 손님들이 겪는 수난은 여전하다. 무시와 무응대는 익숙하고, 무례한 서비스, 울퉁불퉁한 접객에 기분 나쁨을 느낄 겨를도 없이 쫓기듯 식당 문밖을 나서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국내 외식업계에 좋은 식당과 훌륭한 셰프들은 많아지고 있는데 서비스 수준에는 여전한 불만이 따라붙는 이유는 뭘까.

서울 서대문구에서 10년째 프렌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한 오너셰프는 국내 외식업계의 전반적인 서비스 수준에 대해 “접객 수준이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면서도 “그와 별개로 운영 효율에 집중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면도 있다”고 평가했다. 불경기가 계속되다 보니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 서비스 인력을 줄이거나, 기본 교육과 훈련 등 접객 파트의 중요도가 뒷순위로 밀리는 곳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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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들은 코로나 팬데믹이 외식업계의 서비스 질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인력수급이 어렵다 보니 단기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는 경우가 많고 서비스 교육이나 훈련을 거칠 겨를 없이 곧바로 손님 응대에 투입된다. 여기에 그다지 후하지 않은 식당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까지 생각하면 식당에서 좋은 서비스는 ‘디폴트’가 아닌 ‘플러스알파’의 영역이 되어버린다.

이런 상황은 손님들이 마음먹고 대접을 받으러 가는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흑백요리사>로 특수를 누리고 있는 파인다이닝 업계는 얼마 전만 해도 고사 직전의 위기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 국내 여행과 파인다이닝으로 몰렸던 수요와 돈줄도 이제 말라버렸다고 입을 모은다. 경제적 위기에 몰린 레스토랑들이 기름 잘 친 기계처럼 매끄럽게 돌아가길 바라는 건 무리인 걸까. 품격 있는 접객 서비스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자 연락한 역사 깊은 서울의 한 레스토랑에서는 “수십년 동안 일한 베테랑 직원들 대부분이 코로나 기간을 거치며 업계를 떠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빠르기만 하면 최고? 이제는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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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식당에서, 얼마만큼의 서비스를 받아야 충분한 것일까. ‘식당에 들어가고 나올 때 인사는 해줬으면 좋겠다’ ‘그릇을 너무 세게 테이블에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서빙 스태프가 메뉴 정도는 숙지해줬으면 좋겠다’ 정도의 요구면 적당할까. 정동현 음식칼럼니스트는 “한국의 경우 외식 업장에서 서비스 제공자와 수용자 사이에 합의된 룰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문화적으로 접객을 받는 것, 접객을 하는 것 모두 익숙지 않다 보니 식당에서 지켜야 할 매너와 서비스도 어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주방과 홀, 요리사와 접객원의 구분이 명확한 서양과 달리 일명 ‘주방이모’ 한 명이 요리와 서빙, 계산까지 올라운더로 활약하는 곳들이 많다는 점도 서비스의 명확도를 논하기 어렵게 한다.

각국의 식당 문화는 저마다의 전통과 예절, 고객의 기대치에 따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팁 문화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식사 중에도 서빙 직원이 여러 번 테이블을 방문해 추가 요청 사항을 확인하고 친절하게 응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에서는 고객이 여유롭게 식사할 수 있도록 서빙이 이루어지고 주문을 받은 후엔 테이블을 자주 방문하지 않는다. 한국식 접객은 ‘빠르고 신속한 서비스’가 가장 중요시된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국 식당 문화는 적당한 눈치와 염치로 이어져왔다. 웬만한 식당에서 물은 당연히 셀프, 적당히 상황을 봐 눈치껏 요구하고 눈치껏 응대하는 것이 손님과 식당 직원이 갖춰야 할 덕목이자 센스로 여겨졌다. 2000년대 초반까지 인기를 얻었던 식당 ‘욕쟁이 할머니’는 손님이 욕을 듣고도 웃음이 터져나오게 하는 것을 넘어, 아슬아슬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접객 기술로 단골을 늘리는 대단히 눈치 좋은 프로페셔널 서비스 인력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고객들은 정겹지 않아도 좋으니 깨끗한 식기와 쾌적한 실내, 방해받지 않고 음식과 대화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원한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을 밑받침하는 매끄러운 서비스까지 식당에 지불하는 금액에 포함된다는 인식 또한 자리 잡고 있다. 이 정도 가격이라면 후진 서비스도 기꺼이 감내할 ‘가성비’ 식당에서, 비용보다 마음이 흡족해야 만족하는 ‘가심비’ 식당으로 식당을 선택하는 트렌드 역시 옮겨가고 있다. 이규민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교수는 “코로나 이후 특히 식당 위생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식이 늘었다”며 “소비자들이 외식 서비스에 요구하는 기대치가 높아졌다는 것을 레스토랑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로봇은 품격을 대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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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의 서빙로봇 ‘클로이 서브봇’. LG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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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외식업계는 로봇과 자동화 시스템을 속속 도입하며 효율화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주문과 결제를 한 번에 하는 무인 키오스크를 비롯해 한식당과 양식당을 가리지 않고 테이블마다 태블릿PC로 주문을 하는 테이블 오더가 자리 잡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 5월까지 서빙용 로봇의 수입 규모는 누적 4억1218만달러(약 5775억원)에 달한다. 패밀리 레스토랑과 웬만한 규모 있는 식당에서 서빙 로봇이 자율주행하며 음식을 전달하고 잔반을 처리하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다. 미쉐린 가이드가 추천한 스페인 인터콘티넨털 마드리드의 호텔 레스토랑에서도 일부 서비스 과정에 서빙 로봇을 도입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이 교수는 “인구소멸과 인건비 증가, 고용 유지 등의 문제 해결책으로 외식업계 자동화는 지속해서 이루어질 것”이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리미엄 서비스를 원하는 소비자 접점에서의 로봇 도입은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외식업계 자동화와 비대면화가 확장될수록 면대면, 사람과 사람 사이 감동이 있는 서비스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손님도 식당도 웃을 수 있는 접객 문화를 만들기 위해선 식당 매너의 ‘오해’와 ‘이해’의 간극을 좁혀나갈 필요도 있다. 서빙 직원의 수고로움을 덜어줄 요량으로 식사가 끝난 그릇을 포개어 놓는 것은 주방 직원을 오히려 번거롭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 코스 요리 식사 중 서빙 직원이 식사가 끝난 접시를 부리나케 치울 때마다 ‘빨리 먹고 나가라는 건가’ 싶어 눈치를 봤는데 실은 ‘손님이 접시를 비우면 신속하게 접시를 테이블에서 빼내고 디저트나 다음 요리에 대한 의향을 묻을 것’이 올바른 접객 서비스의 기본 매뉴얼이었다는 것을, 나도 이제야 알았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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