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금손 미다스 왕의 도시, 고르디온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서 남서쪽으로 94km 떨어진 평원. 기원전 9∼3세기경 고대 프리기아 왕국의 수도였던 고르디온에는 부드러운 곡선의 봉우리가 울퉁불퉁 솟아 있다. 마치 경주 대릉원처럼 130여 개의 왕과 귀족들의 고분 유적이 흩어져 있는 모습이다.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고르디온은 신화 속 이야기가 넘쳐나는 동네다. ‘황금손’과 ‘당나귀 귀’로 유명한 미다스 왕이 신화 속 인물이 아니라 실존하는 왕이었다니! 고르디온에서 가장 큰 미다스 고분(높이 53m)에 들어갈 때 무척 흥분됐다.
미다스 고분으로 들어가는 좁은 통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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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입구 철제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나올 법한 돌로 쌓은 좁고 긴 통로가 나타난다. 복도 끝에 묘실이 나타났다. 아름드리 향나무로 외벽을 쌓은 목곽분이다. 나무로 짠 널방이 무려 2700년 동안이나 썩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기원전 740년경에 조성된 이 무덤을 1957년 발굴했을 때 60∼65세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발견됐다. 유골의 주인공은 미다스 왕이 아니라, 아버지 고르디우스의 무덤이라는 설도 있다. 앙카라에 있는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에서 이곳에서 발견된 ‘미다스 왕의 두개골’과 화려한 장식이 새겨진 나무 테이블 유물을 볼 수 있었다.
미다스 고분 앞에는 고르디온 박물관이 있다. 고르디온 박물관 입구에는 말을 타고 칼을 든 알렉산더 대왕이 앞에 미로처럼 얽힌 고르디우스 매듭을 단칼에 베어버리는 그림이 붙어 있다. 알렉산더가 고르디온에 도착한 것은 기원전 333년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막힌 문제를 쾌도난마로 해결하는 발상의 전환을 뜻하기도 한다.
신화 속 이야기인 줄 알았던 고르디우스와 미다스 왕의 전설은 1950년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발굴팀의 연구로 역사적 사실로 드러났다. 30년간 2ha(헥타르) 이상의 고르디온 성채와 무덤을 발굴하자 다양한 유물이 쏟아졌다.
고대 프리기아 왕국에서 해방된 노예가 썼던 빨간색 모자는 서양 문화에서 자유와 해방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 7월 파리 올림픽의 마스코트가 바로 이 빨간색 ‘프리기아 모자’였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그림에서도 시민군 앞에 선 여성이 이 모자를 쓰고 있다.
● 이슬람과 기독교 성지가 곳곳에
이슬람 사원(모스크)은 일반적으로 중앙에 커다란 돔이 있고, 주변에 뾰족한 첨탑이 여러 개 서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러한 돔 형식의 모스크는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뒤 비잔틴 제국의 스타일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13∼14세기에 건축된 5개의 튀르키예 이슬람 사원의 분위기는 무척 달랐다. 앙카라, 시브리히사르, 아피온카라히사르에 있는 모스크를 방문했는데, 모두 돔이 없고 낮고 평평한 사각형 목조 건물이었다.
앙카라에 있는 아슬란하네자미 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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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는 여러 개의 나무 기둥이 서 있는데, 지리산 구례 화엄사 구층암의 모과나무 기둥처럼 울퉁불퉁한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 있는 자연주의 기둥이었다. 기둥 위아래 부분에는 고대 로마 시대의 신전에 쓰였던 화려한 문양의 대리석을 끼워 놓기도 했다. 튀르키예 현지 관광가이드 아이발라 괵수 씨는 “섬세한 목조 세공이 잘 보존돼 있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고 말했다.
아야지니 동굴 주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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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피온 시내에서 외곽으로 23km 정도 가면 프리기안 계곡 입구에 ‘아야지니’라는 동굴 마을이 나온다. 튀르키예의 유명 관광지인 카파도키아처럼 바위를 파서 주거지, 무덤, 교회 등으로 썼다고 한다.
튀르키예 아나톨리아반도 아피온 인근에 있는 아야지니 동굴 마을의 성모 마리아 교회. 바위를 파내서 만든 창문으로 눈부신 빛이 새어 들어와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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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마을에 있는 성모 마리아 교회는 자연 암반을 파서 만든 교회다. 동굴 내부로 들어가니 창문과 아치 출입구를 통해 빛이 쏟아져 내려와 신성한 느낌을 준다. 교회 옆에는 ‘인류 최초의 아파트’로 불리는 동굴 마을 집단 거주지도 있다.
이처럼 이슬람 국가인 튀르키예에는 기독교 성지도 많이 남아 있다. 특히 예수의 제자였던 바오로의 선교여행 흔적을 따라 성지순례를 오는 기독교인들도 많다. 아나톨리아 중부 소도시 얄바츠에서 동쪽으로 약 3.2km 떨어진 곳에는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가 있다.
이곳에는 325년에 지어진 성 바오로 대성당 유적이 있는데, 사도 바오로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유대교 회당 터 위에 세운 성당이다. 신약성서 사도행전 13장에 따르면 바오로는 설교 후 유대인들에게 배척을 당했다고 한다. 그래서 바오로 일행은 120km 사막길을 걸어 이코니온으로 떠났다.
바오로가 도착한 이코니온은 현재 코니아(Konya)로 불리는 도시다. 코니아 근교의 실레(Sille) 마을에는 기독교를 공인했던 콘스탄티누스 1세의 어머니인 성녀 헬레나가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가던 도중 327년에 세웠다는 성당이 있다. 헬레나의 이름을 따 아야 엘레니(성 헬레나) 성당이라고 불린다.
11세기 말 셀주크 튀르크 왕조의 수도로 번성했던 코니아는 튀르키예에서 이슬람 색채가 가장 강한 도시이기도 하다. 무함메드 잘랄루딘 루미(1207∼1273)가 창시한 이슬람 신비주의 종파인 메블라나 교단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루미의 무덤이 있는 메블라나 박물관은 코니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다.
이슬람 신비주의 종파인 메블라나 교단의 수행자들이 추는 세마 의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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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는 어려운 코란(꾸란) 경전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세마(Sema)라는 독특한 회전 춤을 통해 신과 일체감을 이루면서 이슬람의 진리를 체득할 수 있는 수련 방법을 만들었다. 남자들이 하얀 옷을 펄럭이며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는 세마는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코니아의 IRFA(문명연구센터)에서 감상한 세마 의식은 무대 위에서 마치 하얀 꽃이 피어나는 듯했다. 대나무 피리인 네이(Ney) 반주에 맞춘 춤은 후반부로 가까워질수록 빨라진다. 여러 개의 하얀 치마가 태양계의 행성처럼, 빙글빙글 팽이처럼 돌아가며 어지러운 원을 만들어내는데 수행자도, 보는 이도 무아지경에 빠져들게 했다.
● 인류 문명의 시원, 아나톨리아반도
튀르키예 아나톨리아반도 중부 도시 아피온 시내의 노을 지는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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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고대문명은 약 6000년 전부터 메소포타미아(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이집트(나일강), 인디아(인더스강), 중국(황허강) 등 4개의 거대한 강 주변 비옥한 땅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튀르키예 아나톨리아 지방 남부에서 약 9500년 전 신석기시대 대규모 주거지인 차탈회위크 유적지가 발견돼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2012년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차탈회위크는 코니아에서 동남쪽으로 52km 떨어진 언덕 위에 형성된 ‘인류 최초의 계획도시’다. 차탈회위크에서는 1000년 넘는 세월 동안 5000∼8000명이 함께 살았다고 한다. 입구에는 당시 다닥다닥 붙여 지은 진흙집들을 복원해 놓았다.
창고와 부엌, 거실로 나뉜 집 벽에는 별과 태양계, 사람과 여신, 사냥 장면 등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특이한 점은 시신을 집 안에 매장했던 풍습. 농업과 다산을 상징하는 여신상 키벨레(Kibele)도 발굴돼 앙카라의 아나톨리아 문명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차탈회위크도 놀라운데 아나톨리아 동남부 괴베클리 테페에서는 1만2000년 전 돌기둥이 100개가 넘는 대규모 종교 건축물 유적지가 발굴돼 세계 문명사를 다시 써야 할 판이다. 아나톨리아반도는 인류 문명의 시원(始原)을 찾아가는 여행지인 셈이다.
투명한 홍차 잔에 비친 모스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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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볼 만한 곳=튀르키예의 수도 앙카라의 현지인 맛집 울루다으 레스토랑에서는 ‘이스켄데르 케밥’이 시그니처 메뉴다. 이스켄데르(iskender)는 알렉산더 대왕의 튀르키예식 발음. 3층 창가에 서서 붉은색 홍차 안에 모스크를 담아서 사진을 찍어 봤다. 튀르키예 현지 분위기가 물씬 나는 앵글이다 .
글·사진 아나톨리아=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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