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6일(현지시간) 대선 승리를 선언했다. 〈사진=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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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트럼프 했다"
치열하면서도 화끈했던 유세처럼 '한 방'으로 정리된 선거였습니다. 트럼프는 초박빙 예상을 뒤엎고 핵심 7개 경합주를 모조리 싹쓸이 하며 백악관행을 결정지었습니다. 해리스는 당일 승복선언을 하는 전통을 깨고 하루 뒤에야 미래를 기약하면서 47대 대통령직을 양보해야 했습니다.
사실 '기세'가 전부인 선거에서 해리스는 밀렸고 트럼프는 분위기를 주도했습니다. 태평양 건너 우리나라에서 '어대트(어차피 대통령은 트럼프)'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선거 막판 이른바 '히든 해리스'론이 잠시 힘을 받기도 했지만, 신기루일 뿐이었습니다. JTBC 국제팀에서 지난 4개월간 해리스와 트럼프 둘의 선거전을 관찰하면서 느낀, 해리스 실패의 원인과 트럼프가 당선될 수밖에 없는 이유, 정리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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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타고난 '싸움꾼' 트럼프 vs 메시지 실패한 해리스
━트럼프는 승자가 될 줄 아는 타고난 '싸움꾼'이었습니다. 해리스의 최대 약점인 바이든 행정부와의 차별성 부재와 바이든 행정부 일원이란 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습니다. 사상 최악의 불경기에 집권 여당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마음껏 이용했습니다.
반면 해리스는 지난달 초 ABC 인터뷰에서 '지난 4년간 대통령이었다면 바이든과 다르게 할 것이 있었느냐' 질문에 "떠오르는 것이 없다. 영향을 미친 대부분의 결정에 참여했다"고 할 정도로 안이했습니다. 이때 트럼프는 다음날 유세에 이 장면을 틀면서 "아무것도 다르게 하지 않겠다는 답변을 보면 해리스가 자격이 없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해리스의 메시지 전략은 더 총체적 난국이었습니다. 낙태나 여성 등 문제를 거론하던 해리스가 막판에 들고 나온 트럼프 공격 카드는 '민주주의의 위협'이었습니다. 이 메시지는 미국 민주당 지지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자층에서조차 우려를 낳았던 것입니다. 노동계급정치센터(CWCP)가 핵심 경합주 펜실베이니아 유권자 1천명을 대상으로 9월 24일부터 10월 2일까지 '정치적 메시지'에 대한 선호도를 조사했는데 해리스의 '민주주의 위협'이라는 메시지가 전체 7개 메시지 중 꼴찌, 트럼프의 다른 메시지보다도 하위를 차지했습니다.
해당 센터 연구원은 이 조사 결과를 전하면서 "노동자 가정을 위한 경제 메시지, 억만장자, 대기업에 대한 강력한 비난, 블루칼라 노동자를 위한 메시지를 내라"고 제언했지만 해리스는 외면했습니다. '이겨야 하는 싸움'에서 추상적인 가치로 힘을 잃었습니다.
우리시간으로 오늘 전해진 승복 연설에서마저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해리스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깨어 있으며 싸운다는 것"이라며 "압제에 맞서 하루 하루 싸우자"고 했습니다. 물론 결연한 의지나 약자들에 대한 보호를 언급했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싸우자'는 프레임은 이미 트럼프가 피격 당시 주먹을 불끈 쥐고 '싸우자'를 세 번 외치는 동시에 가져간 것이었습니다. 차라리 자신을 지지해준 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통합의 메시지와 함께, 그래도 웃자는 정도의 기존 슬로건 'JOY(기쁨)'을 언급하는 것이 나았을 수도 있겠습니다.
자신에게 프레임을 씌워도 다시 돌려씌우는 특유의 공식은 이번에도 통했습니다. 해리스가 트럼프를 "민주주의의 위협"이라고 공격했을 때, 트럼프는 해리스에게 "그녀가 후보가 돼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녀가) 민주주의 위협"이라고 반박했습니다. 해리스가 선거 전날까지 외친 민주주의 위협은 일찌감치 트럼프가 가져간 메시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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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해결사' 선점한 트럼프, 능력자와 무능력자의 대결 구도로
━트럼프는 이미지 정치에서도 사실상 압승했습니다. 경제, 외교안보, 국제무대에서도 '해결사'라는 인식을 지속적으로 심어줬습니다. 간혹 사실이 아닌 거짓말도 섞었지만 답답한 구석을 긁어주는 트럼프에 미국 시민들은 열광했습니다.
당장 트럼프가 제일 강하게 공격한 불법 이민자 문제와 국경 문제는 미국 사회가 피부로 느끼고 있는 골칫거리였습니다. 2021년 1월 이후 약 1000만 명이 불법으로 국경을 넘은 걸로 추산되고 이 중 800만 명은 서남부 멕시코 국경으로 미국에 유입된 걸로 전해집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에 이민자들에 대한 불만까지 더해지면서 심리는 자극됐습니다.
트럼프는 바이든 행정부가 남부 국경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범죄자 수 만명이 유입돼 각종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공격했습니다. 임기 첫 날 대규모 추방을 하겠다는 공약도 내세웠습니다. 불법 이민자들까지 떠안아 가면서 '시혜적'으로 미국이 운영될 필요가 없다고 계속해서 주장했습니다.
치솟은 인플레이션도 활용했습니다. 바이든 정부가 코로나19 이후 오른 부동산, 생활비 모든 책임이 있고 일원이 해리스였다고 몰아세웠습니다. 지난 9월엔 "내가 집권할 때는 전혀 인플레이션 문제가 없었다"면서 "반면 바이든 정부 때는 역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고, 이렇게 심한 인플레이션은 본 적도 없다"고 했습니다. 해리스는 근거를 대면서 제대로 방어하지 못했고, 바이든 행정부와 자신의 경제정책이 어떻게 차별화되는지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9월 말 해리스가 경제정책을 추가 발표한다고 했을 때 여러 현지 언론들이 "바이든 행정부와 차별적인 경제정책"이 나올 것이란 기대를 하기도 했지만, 기존에 발표된 공약에서 추가된 것도 거의 없었습니다.
이 전략은 그대로 먹혀들어 가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인 히스패닉과 저소득층마저 트럼프에게 돌아섰습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경제 문제를 해결해줄 것 같은 인물로 트럼프가 해리스를 앞선다는 결과가 쏟아졌습니다.
자신은 국제문제에서도 '해결사'가 될 수 있다는 이미지를 주입시켰습니다. 강한 미국,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선명한 구호를 아예 빨간 모자에까지 적어 유세 때마다 강조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에 투입되는 혈세를 비판했는데 특유의 화법으로 승화시키기도 했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향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세일즈맨"이라면서, 방미 때마다 600만 달러씩 가져간다고 쏘아붙였습니다. 바이든 정부의 '퍼주기'를 비판하는 동시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날로 격화되는 중동 문제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친분관계를 강조하며 "내가 대통령이었으면 없었을 일"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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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사실상 러닝메이트' 머스크, 그림자처럼 받쳐준 머독 vs 인지도만 앞세운 해리스
━트럼프의 러닝메이트는 J.D.밴스지만, 기억나는 '투샷(Two Shot)'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방방 뛰는 사진입니다. 머스크는 각종 행사장에서 트럼프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고 트럼프를 위해 올 3분기에만 7500만 달러라는 거금을 쾌척했습니다. 우리 돈으로 1031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었습니다. 트럼프는 승리 연설을 하면서 머스크를 향해 "새로운 스타가 생겼다, 일론!"이라며 "특별한 사람"이고 "매우 천재적인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트럼프의 마러라고 별장에서 개표 방송을 함께 볼 정도로 트럼프의 각별한 신뢰를 받고 있는 머스크는 이제 규제 철폐를 담당하는 위원회를 맡는 장관직에 오를 전망입니다.
여기에 트럼프를 뒷받침해준 그림자 같은 지원군도 있었습니다. 수많은 비판 보도 속 유일하게 트럼프 지지 기사를 생산해 낸 폭스뉴스의 소유주이자 미디어 재벌인 '루퍼트 머독'입니다. 트럼프는 지난 9월 해리스와의 TV토론 직후 폭스뉴스와 단독인터뷰를 할 정도로 폭스뉴스를 유일하게 신뢰한 걸로 보입니다. 지난달 중순 트럼프가 타운홀 행사 중 춤을 췄을 때 "사람이 쓰러졌는데 춤을 추는 게 맞냐"며 대부분의 언론이 비판했을 때도 폭스뉴스는 이 뉴스를 전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트럼프는 최근 민주당 광고가 폭스뉴스에 방송된 데 대해 "머독에게 항의할 것"이라고 비난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대선 레이스 기간, 폭스뉴스라는 지원군이 트럼프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모멘텀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어 보입니다.
이처럼 트럼프는 '싸움꾼'이자 '해결사'로, 또 사회 전반적인 영향력이 막대한 이들에 힘입어 능력자로, 또 '슈퍼맨'으로 이미지를 쌓았습니다. 반면 해리스는 선명하지 못한 메시지 전략과 모호한 전략들로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미국 대중들은 해리스의 러닝메이트 팀 월즈의 "기이하다(So Weird)"는 말보다 트럼프의 "해리스는 지능(IQ)이 낮다"는 말에 더 설득된 걸로 보입니다. 능력자와 무능자의 대결로 몰아간 트럼프 전략은 통했고 '트럼프 2기' 출범이란 결과를 낳았으니 말입니다.
이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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