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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민 | 인구·복지팀 기자
“노후 준비를 안 해놓으면, 이렇게 버려지는 게 맞아?”
고령자의 운전 자격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8월, 서울시가 만 75살 이상 고령자의 개인택시 면허 신규 취득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한단 기사를 보고 30대 친구들이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당시는 ‘시청역 역주행 사고’를 계기로 고령 운전자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단 목소리가 높을 때였다. ‘청년들은 고령 운전에 반대할 것’이란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에 시나브로 익숙해졌던 탓인지, 친구들의 반응이 새삼 신선하게 느껴졌다.
친구들이 공감대를 이룬 지점은 나이를 먹어서도 일을 할 수밖에 없는 ‘노인 빈곤’의 현실이었다. 이들도 고령 운전자가 주기적으로 운전면허를 유지하기 위한 시험을 보거나, 고령 운전자의 교육을 강화하는 방안에는 적극 찬성했다. 운전면허의 취득과 유지 자격 자체를 전반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반발이 일었던 부분은 나이만을 이유로 일괄적으로 ‘밥벌이’를 제한할 수 있단 지점이었다.
“매년 고령층 사고가 늘어난다는데, 고령층이 매년 늘어나니까 그런 거겠지. 노인 복지도 제대로 안 돼 있으면서 노인이 일하는 걸 두고 혐오하면, 다 굶어 죽으라는 거야 뭐야”, “음주운전 많은 세대를 일괄 규제하잔 소리는 안 하잖아. 앞으론 본인 노후는 물론이고 캥거루 자식들도 챙겨야 해서 일을 계속해야 할 텐데….” 친구들이 연이어 보낸 메시지에선 빈곤한 노후, 부족한 노인 복지에 대한 우려를 읽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노인 빈곤이 심각한 나라로 꼽힌다.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2022년 처분가능소득(가처분소득) 기준 만 65살 이상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노인 빈곤율)은 38.1%였다. 상대적 빈곤율은 소득수준이 중위소득 50% 아래인 사람의 비율을 의미한다. 직전 해인 2021년 37.6%보다 더 높아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고서를 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만 65살 이상 인구의 소득 빈곤율은 40.4%로, 오이시디 회원국 평균(14.2%)보다 훨씬 높다. 우리나라는 ‘일하는 노인’도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65살 이상 평균 고용률은 34.9%로, 오이시디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노후에 일하는 사람도, 빈곤한 사람도 많은 셈이다.
논란이 커지자 당시 서울시는 “연령 기준 제한은 나이 차별 논란 우려가 있고, 운전 자격 검사 강화 등 다른 안전성 확보 방안도 있기 때문에 신중히 검토해야 할 사항”이라며 고령자의 개인택시 면허 취득 제한 건의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새로이 택시기사가 돼 생계를 유지하려는 75살 이상 고령자는 한숨 돌리게 됐다.
누구나 나이를 먹고 노인이 된다. 개인택시 면허 취득 제한 기사를 둘러싼 30대 친구들의 우려는 어쩌면 나이 든 자신의 미래에 대한 우려였을지도 모른다. 연금, 일자리, 복지 등을 두고 정치권에선 ‘손해 보는 불쌍한 청년’과 ‘이기적인 무임승차 노인’의 대결 구도를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주변의 평범한 청년들은 나라가 오늘날의 노인을 대하는 방식을 통해 ‘나의 노년’을 비춰보고 있었다. 노후가 불안하면 청년들은 각자도생에 빠진다. 각자도생의 삶을 반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정책 결정자들이 이 점을 기억하면 좋겠다.
sj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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