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일랜드 출신 영국 작가 애나 번스가 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8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 본상 및 특별상 수상작가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특별상은 김멜라 작가에게 주어졌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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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북아일랜드에서 가장 암울한 시기를 겪으며 성장했고, 당시 현실에 눈감고 살고자 했던 많은 이들 중 하나였습니다. 주변을 둘러싼 폭력과 죽음의 순환을 술과 클럽에 기대, 생각을 감정으로부터 차단함으로써 벗어나려 했어요.”
북아일랜드 출신으로 최초 부커상을 받은 작가 애나 번스(62)가 첫 방한했다. 제8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수상하면서다. 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내 기자간담회에서 애나 번스는 수상 소감과 함께 자신의 10대 때 고향을 조금 더 언급했다.
“폭력, 겁박이 총격, 폭탄테러와 함께 늘 있었습니다. 상당히 좁은 지역 안에 검문소, 무장세력이 정말 미쳤다 할 정도로 많았죠. 평화란 걸 경험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시절이 바탕이 된 작가의 작품 가운데 장편 ‘밀크맨’이 2018년 제정 50주년을 맞은 부커상(당시는 맨부커상)을 받는다. 하지만 작중 주된 폭력은 정작 총, 테러, 분쟁도 아니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심사위가 이날 “애나 번스의 작품은 참혹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사실주의적 진술이 아니라 그로 인해 기괴하게 변모한 디스토피아적 공동체, 그리고 그 속에 존재하는 사회적 억압과 개인의 심리 상태에 주목한다”고 소개한 대로다.
애나 번스는 1962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나고 자랐다. 신·구교 갈등에 따른 영국 지지-독립 세력 간 분쟁과 정쟁이 절정에 치달은 1970년대가 성장기였다. 첫 장편소설 ‘노 본스’(No Bones, 2001)가 벨파스트에서 자란 소녀 얘기다. “영영 잊지 못할 것”처럼 “처참한 일”이 터지고 “그다음의, 새로운 과격한 죽음에 묻혔”던 시절을 인물들은 견뎌낸다.
작가는 자신의 세 번째 장편으로 부커상을 받기까지 실상 무명이었다. 대표작인 ‘밀크맨’의 판매고가 부커상 수상 전까지 6천부가 안 됐다. ‘벨파스트’에 관한 대중의 인식이 그러했을 터. 부커상의 ‘밀크맨’ 호명은 같은 해 노벨문학상과도 대비되며 작품의 진가를 알렸다. 스웨덴 한림원은 내부 ‘미투’와 성 추문으로 노벨문학상을 선정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를 그해 겪었다.
소설의 내용인즉, 한 마을에서 ‘밀크맨’이라 불리는 41살 남성이 18살 여성(‘나’)을 집요하게 스토킹한다. “벨파스트의 왜곡된 버전”이란 작가 말마따나 배경은 뚜렷이 적시되지 않지만, 유부남 ‘밀크맨’은 ‘나’의 마을이 지지하던 아이알에이(IRA, 독립파 무장세력)의 지도자다. 신체와 의식을 폭압하는 전체주의의 이면에서, 감정과 관계를 통제하고 무력화하는 ‘내파형’ 전체주의의 섬세한 양상이 가히 읽는 자를 옥죈다. ‘불륜 관계’로 마을에서 낙인찍힌 가운데 계속 당하는 스토킹은, 그 어떤 것보다 ‘나’에게 정치적이며 사활적 문제다. 부커상 쪽은 당시 “긴밀하게 묶인 공동체에 가십, 사회적 압력이 미치는 영향을 훌륭하게 그려낸다. 소문과 정치적 충성이 개인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수그러들지 않는 (미투) 운동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준다”며 “위기에 처한 사회들의 보편적 경험을 탐구한다”고 평가했다.
소설은 “지금” “여기” 일어난 듯 펼쳐내는 지난 기억의 재현과 발화, 그럼에도 여전히 심연의 감정은 숨기고 마는 화자를 통해, 일상의 비정상으로부터의 해방과 심상의 평화가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사력을 요하는지 말해준다.
이날 간담회에서 작가는 “20대에 고향을 떠나 런던으로 간 후에야 북아일랜드 거의 모든 이들이 얼마나 무감각하게 기이한 환경에서 자라왔는지를 깨달았다”며 “제 글이 공동체를 대변하고 특정 문제들에 대한 인식을 증진하기 위한 목적을 담고 있다 해도, 등장인물과 그들의 이야기가 우선해야 한다”(‘수상 소감’)고 말했다. 역사보다 개인, ‘역사적 진실’보다 “감정적으로 진실”된 소설에 그가 천착해 온 까닭이고, 작가는 이를 “크게 이르기 위해 작게 유지하라”라는 문학관으로 압축한다. 그가 최근 읽고 있다는 작가 한강의 장편 ‘소년이 온다’도 맥을 같이 한다.
‘밀크맨’에도 유머가 있다. 작중 남자친구 이름은 ‘어쩌면-남자친구’. 알고 보니 엄마 젖을 오래 먹어서 생긴 별명 ‘밀크맨’…. 애나 번스는 말했다.
“일부러 유머를 넣으려 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밀크맨’은 주제가 굉장히 심각해 (그 유머라는 게) 나쁘지 않을 것 같군요. 삶이 재미없어도 좀 웃고 ‘괜찮네’ 생각하면 에너지가 생기니까요.”
작가는 ‘인물’이 자신을 찾아올 때 비로소 쓴다. 소설의 전개 방향이나 주제가 미정이다. 18살 소녀에 대해서도 “그의 생각을 따라가며 읽힌 대로 썼다”고 작가는 말한다.
“예술은 일관되거나, 의존적이거나, 국가적이거나, 심지어 합리적일 필요조차 없습니다. 제가 글쓰기에서 계획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저는 기다리며 듣고 느끼고자 합니다.”
글쓰기 30년, 첫 소설 이후 20여 동안 애나 번스가 기다려 완성한 작품은 장편 셋, 중편 하나가 전부다.
한편 장편 ‘없는 층의 하이쎈스’ 등으로 이날 이호철통일로문학상 특별상을 받은 작가 김멜라(41)는 “없는 사람, 없는 존재로 여겨지는 소수자들, 지난 시절의 뼈아픈 단락을 없던 일로 애써 덮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 저를 포함한 그들에게 미약하게나마 위안의 말을 건네고 싶었다”며 “작가로서 글쓰기, 역사를 끌어안아 서사로 풀어내는 일이 어떤 것인지 진심 어린 마음으로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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