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딩=AP/뉴시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세가 열리는 4일(현지시각) 펜실베이니아주 레딩에서 한 지지자가 손팻말을 들고 트럼프 후보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 대선을 하루 앞두고 전국 단위에서는 해리스 후보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4%포인트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2024.11.05.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다만 한 가지는 확신한다. 미국인들의 속마음이다. 세계 최강국에 살면서 9·11 테러를 제외하곤 한 번도 본토 침략을 당해본 적 없는 미국인들이 가진 모종의 불안감이다. 이기든 지든 대선을 끝까지 완주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존재는 이를 대변한다. 2015년 트럼프는 첫 대선 출마 당시 하나의 주술(?)을 걸었다. 이른바 자유무역과 대량이민이 현재 미국에 해를 끼치고 있다는 주장이다. 입증 근거가 없는 논리에 학계와 정치권, 심지어 자당 공화당까지 반발했다. 하지만 그의 최면은 건조한 화장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대중을 흡수했다.
뉴욕과 뉴저지 등 동부에 살아보면 금세 안다. 성공한 백인들은 여기 살아남았지만 유태인들과 이후에 들어온 코스모폴리탄들에 의해 치인 영국 등 유럽계 개척자들은 세대에 걸쳐 중남부로 밀려갔다는 사실을 말이다. 19세기엔 골드러시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분히 피동적이다. 거주비용을 감당키 어려워서다.
독일과 스코틀랜드계가 섞인 트럼프는 이를 꿰뚫었다. 뉴욕서 부동산 개발업자로 성공한 이가 러스트벨트 노동자 편을 들어 소구한 건 프로파간다의 놀라운 승리다. 그는 자유무역 폐해의 대표 사례를 중국이라 대상화했는데, 때마침 그들은 미국에 경제·군사면에서 패권주의로 맞서면서 불안감을 더 자극했다.
트럼프는 지난 대통령들이 중국을 너무 쉽게 키워줬다고 일갈했고, 중남미와 아프리카에서 넘어온 이민자들이 범죄자 출신으로 미국을 좀 먹고 있다고 주장했다. 명확한 증거를 대긴 어렵지만 이미 기득권인 미국 시민이 속내에 가졌던 불쾌한 생각을 과감하게 표출해준 것이다.
흥미로운 건 2020년 트럼프를 이기고 정권을 되찾은 민주당도 그의 정책을 차용했다는 사실이다. 야당이던 4년 동안 그렇게도 트럼프를 비판했지만 무역 정책 측면에선 중국에 관세를 부과했고 한국과 일본, 대만 등 아시아 동맹국을 압박해 첨단 제조업을 미국으로 옮기도록 강요했다. 트럼피즘에 경도된 이들에게 바이든의 무역 정책은 승계로 여겨졌고, 이민이나 보조금 개방은 세금으로 이뤄진 재정을 파탄시키는 행위처럼 보였을 거다.
트럼프는 그런 상황을 비판하면서 정작 자신에게 씌워진 굴레는 정치적 박해(?)로 둔갑시켰다. 그가 저지른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긴 하지만 무려 91개 형사 혐의로 기소된 사실은 좀 과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형사 외 3개 이상의 민사 소송은 그를 크게 좋아하지 않는 이들조차 정치 보복이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정치인이 아니던 시절 사업가로서 받은 은행대출 등을 시비거리로 삼아 사업체와 자식들에게 배상금을 물린 판결은 사실상 연좌제라고 불러도 충분했다.
그런 맥락에서 성추문 입막음 의혹 사건과 지난 암살 미수는 그에게 도덕적 면죄부를 줬다. 성추문 재판에선 지난 5월 34개 혐의 모두 유죄평결을 받아 역사상 최초 대통령 출신 범죄자가 됐다. 하지만 판사는 형량 선고를 미루고 대국민 배심원 재판이란 기회를 줬다. 골수 지지자들은 그래서 그가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모든 재판을 뒤집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뉴욕타임스(NYT)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55%는 이민감소를 원하며 이는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민주당원 중 42%는 무증명 이민자의 대량추방을 원한다. 2015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은 자유무역과 이민이 미국에 좋은 일은 아니라고 누군가처럼 주장한다. 트럼프가 재선되지 않는다 해도 이처럼 트럼피즘은 어떤 형태로든 남을 거다. 세계최강국의 우경화다. 미국의 국수주의는 어쩌면 남북전쟁 후 또다른 내전의 씨앗이 될 수 있다.
뉴욕=박준식 특파원 win0479@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