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법 없어 유엔 '넬슨 만델라 룰' 적용
서울 송파구 옛 성동구치소 독방. 기사 내용과 직접적 연관 없음.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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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소란을 피우는 등 교정시설 내부 규정을 계속 위반한 수용자라 하더라도, 수개월 이상 연속으로 '독방 징벌'을 가하면 인권침해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국내법상 독방 구금 기간에 제한은 없지만, 유엔이 채택하고 한국이 동의한 국제규범에 그 제한 기간이 존재한다면 장기간 독방 징벌을 기본권 침해로 볼 수 있다는 취지이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3부(부장 정준영)는 구치소 수용자 A씨가 국가인권위원회를 상대로 "진정신청 기각 처분을 취소하라"고 제기한 소송 항소심에서 지난달 31일 1심의 원고 패소 판결을 뒤집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2016년 4월 구치소에 수감된 A씨는 이듬해 7월 징역 8년을 확정받았다. 이후에도 한동안 구치소에서 지내던 그는 걸핏하면 소란을 피우고 교도관 지시를 따르지 않아 자주 금치에 처해졌다. 금치는 형집행법상 가장 무거운 징벌로, 한 번에 최대 30일간 수용자를 독방에 가두는 조치다.
사건은 2019년 8월 발생했다. 독방에 있던 A씨는 법률서적 약 20권을 갖고 있는 것이 발각돼 압수당했다. 구치소 측은 '금치 처분자는 자비로 구매한 물품 사용도 제한된다'는 형집행법 규정을 근거로 들었으나, 그는 "징벌자에게도 소송에 필요한 책은 소지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반발했다.
A씨는 얼마 뒤 이 같은 사정을 인권위에 진정하면서, 구치소가 그간 자신에게 내린 잦은 금치처분도 함께 문제로 언급했다. 당시 그는 그해 4~7월 다섯 차례 금치처분을 연달아 받아 117일간 독방에 갇혔고, 약 3주 뒤 다시 금치처분을 3회 연속 받고 80일째 독방 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서울동부구치소.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한국일보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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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는 A씨 진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치소는 법령에 따라 A씨가 소지할 수 있는 도서 권수를 제한했을 뿐이라 이를 인권침해로 보기 어렵고, 여러 금치처분을 집행할 때 그 사이사이 유예기간을 둬야 한다거나 기간이 길다는 이유로 일시 정지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는 게 요지였다.
이어진 행정소송 1심에서도 법원은 A씨 청구를 기각했다. 장기간 독방 처벌에 대해 1심 법원은 "원고가 지속적으로 다른 수용자와 다투거나 교도관 지시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원고 책임"이라면서 A씨를 나무랐다.
항소심도 '도서 압수'에 대한 판단은 같았다. 그러나 쉴 새 없이 행해진 독방 수용에 대해서는 "국가 기관이 인권을 침해한 경우에 해당할 수 있다"며 전제를 뒤집었다. 자살 기도 가능성 등 후유증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진 금치처분을 연달아 부과하는 건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처사란 취지다.
재판부는 "2015년 유엔 총회에서 한국을 포함한 회원국 만장일치로 채택된 '넬슨 만델라 룰'은 연속 15일을 초과하는 독방 수용을 고문과 다름없는 것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선언한다"며 "영국 독일 뉴질랜드에선 총 독방 수용기간을 제한하고 있고, 캐나다에선 위헌으로 판단돼 폐지됐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구치소의 인권침해를 제지하지 않은 인권위 결정은 취소돼야 한다는 결론이다. 재판부는 "인권위는 법률뿐 아니라 대한민국이 비준한 국제인권조약 등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심사했어야 했다"며 "마땅히 검토해야 할 사항을 누락한 것은 재량권 일탈∙남용"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인권위는 지난해 3월 A씨와 유사한 피해를 입은 구치소 수용인 진정을 토대로, 교정시설 수용자에게 장기간 연속적인 금치 징벌을 제한할 것을 법무부에 권고했다. 법무부는 올해 2월 '두 개 이상 금치는 45일 이내로만 연속해서 집행할 수 있다'는 조항을 시행규칙에 추가했다.
최다원 기자 da1@hankookilbo.com
이근아 기자 ga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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