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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 (화)

[단독]'ETF 아버지' 배재규 대표의 작심발언…"보수인하 경쟁 자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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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그래픽 = 박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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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김세연 기자]

상장지수펀드(ETF) 아버지라 불리는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자산운용 대표가 ETF를 둘러싼 자산운용사 간 수수료(보수)인하 경쟁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업계에서는 ETF 보수 인하 경쟁이 이제 시장 질서를 교란하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날 배 대표의 발언에 주목하고 있다.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4일 한국거래소는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자본시장 컨퍼런스'를 개최했다. 당시 6층에서 진행되는 밸류업(가치제고)기업 홍보 행사에서 한국투자신탁운용 임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 방문한 배재규 한국투자신탁운용 대표는 기자와의 대화에서 "ETF 시장에서 운용사 간 보수 경쟁을 자제해야 한다"며 ETF 시장에서 벌어지는 보수 인하 경쟁에 대해 지적했다.

이번 행사는 한국 자본시장 도전과제와 기회에 대해 논의하고 소통하고자 마련된 자리로 코리아 밸류업 ETF 12개 종목과 상장지수증권(ETN) 1개 종목에 대한 상장 기념식도 개최됐다.

지난달 말 기준 ETF 순자산가치 총액은 162조9563억원으로 지난 1월(124조4900억원) 대비 31% 급증했다. 상장된 ETF 상품도 급격히 성장하는 추세다. 같은 기간 상장 상품은 911개로 올해 1월말(824개) 대비 10.5% 증가했다. 2022년 666개였던 상품이 1년10개월 만에 36.7% 성장한 것이다.

배 대표의 발언이 주목 받는 이유는 그의 이력 때문이다. 삼성자산운용 재직 당시 아시아 최초 레버리지 ETF 출시했고 국내 ETF 시장으로 주도하면서 업계에서는 배 대표를 ETF 선구자 혹은 ETF 아버지로 부른다. 이 때문에 이날 쓴소리가 업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ETF는 이제 안정적인 투자 상품으로 주목 받으며 급격히 성장한 만큼 160조원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려는 운용사 간 경쟁으로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

투자자들 관심을 끌기 위해 반도체·빅테크·인공지능(AI)·커버드콜 등 특정 산업에 집중한 테마형 ETF가 우후죽순 출시됐다. 지난 4일 기준 반도체 관련 ETF는 41개에 달한다. 이 중 20개가 올 상반기에 대거 상장됐다. 지난해 4월에는 신한자산운용이 최초로 반도체 소부장에 집중한 'SOL 2차전지소부장' ETF를 상장했다. 이후 큰 인기를 얻자 삼성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잇따라 관련 소부장 ETF를 내놓은 바 있다.

비슷한 상품이 잇따라 출시되자 운용사들은 '보수인하'를 내걸며 '수수료 출혈경쟁'에 뛰어들었다. 불씨를 지핀 건 업계 1위 삼성자산운용이다. 지난4월 자사 ETF 중 미국 대표 지수를 추종하는 ETF 4종 총보수를 0.05%에서 국내 최저 수준인 0.009%로 인하한다고 밝혔다. 얼마 뒤 업계2위 미래에셋자산운용은 'TIGER 1년 은행양도성예금증서 액티브(합성) ETF' 총보수를 연 0.05%에서 0.0098%로 낮췄다. 뒤이어 KB자산운용도 'RISE ETF' 13종 보수를 업계 최저 수준인 0.01%로 인하, 키움투자자산운용, 한화자산운용 등 중소형사들도 보수인하 경쟁에 대거 참전했다.

최근에는 코리아 밸류업 ETF 출시로 보수인하 경쟁 불씨가 다시 타오르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삼성자산운용은 밸류업 ETF 총보수를 0.0099%로 인하했다. 기존에는 0.09%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0.008% 책정, 업계 최저 수준이다. KB자산운용은 0.01%에서 0.008%로 낮췄다. 이 가운데 한국투자신탁운용은 0.09%로 국내 운용사 중 가장 높다.

이 같은 보수인하는 결국 운용사 '제 살 깎기'로 돌아온다는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운용 보수가 과도하게 줄어들면서 수익성이 악화될뿐만 아니라, ETF 상품 개발자들의 동기를 저하시켜 고급 인력 이탈을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삼성자산운용은 미국 대표 추종 ETF 1억원어치를 팔아야 겨우 1만원을 얻을 수 있는 구조다. 낮은 마진에 투자 재원 마련이 어려워지면 경쟁력 있는 상품을 위한 개발 유인책이 사라지고, 인력 이탈이 발생할 가능성도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ETF 상품 하나를 선보이기 위해 소수의 ETF 개발팀은 최소 1개월 최대 6개월 혹은 그 이상까지 기획·개발, 운용, 마케팅 등 해당 영역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금융업 특성상 사람은 자산이라고 생각한다"며 "좋은 인력들에게 더욱 더 동기를 주기 위해선 사실 돈도 벌어야 하는 게 맞다. 무분별한 보수 싸움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사 보수인하 경쟁에 중소형사가 더 큰 화를 입고 있는 점도 문제다. 중소형사는 대형사에 비해 브랜드력, 자금 등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다. 이 와중에 보수를 낮추면 열악한 수익원이 더 줄어들고 마케팅 투자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이 밖에 운용사 간 상품 폄하, 인력 빼오기, 거래액 50억원 미만 좀비 ETF 증가 등 여러 문제점으로 인해 ETF 시장 전체가 악순환을 반복하는 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세연 기자 seyeon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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