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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원화값 폭락 진짜 이유…‘밸류 업’ 더딘 ㈜대한민국에 ‘밸리 업’ 경고 [홍길용의 화식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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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은 국가경제 펀더멘털 반영
원화 낙폭 다른 통화대비 더 깊고
증시 부진도 주요국 중 가장 심각
원화 값이 폭락하고 있다. 환율은 해당 통화를 발행하는 나라에 대한 글로벌 시장의 평가다. ㈜대한민국의 가치 추락이다. 다른 나라 통화 대비 유독 낙폭이 크다. 달러 강세 탓만 하기 어렵다.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1996년 12월 선진국 모임이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대한민국은 이후 1년도 채 안돼 외환위기를 맞이한다. 당시 여러 전조(前兆)에도 ‘펀더멘털은 괜찮다’며 위기 가능성을 간과했다.

1997년 외환위기도 달러 부족으로 발생했지만 근본 원인은 우리 경제의 대외경쟁력 붕괴에 기인했었다. 최근 우리나라 간판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크게 약화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진행된 기술 혁명에도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혁신하지 못해서다. 자본시장의 국경이 허물어지면서 증시와 기업 지배구조의 비교 열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제 내국 자본마저 해외투자를 더 선호할 정도다.

헤럴드경제

* 12월24일까지 수치임(자료:한국거래소, 인베스팅닷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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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원/달러 환율이 1460원을 넘으며 2009년 3월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올해 원화 가치의 하락폭은 브라질(헤알), 아르헨티나(페소), 터키(리라), 멕시코(뉴페소)에 이어 주요국 5위 수준이다. 12월 낙폭만 4.82%로 사실상 외환위기 상황인 브라질(6.76%)에 이어 2위다. 선진국 체면을 구기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정부가 외환시장 거래시간을 확대한 7월 이후 유독 심해졌다.

외환 시장뿐 아니라 증시 상황도 심각하다. 코스피도 지난 7월 이후 6개월째 내리막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6월~11월 이후 처음이다. 한달 더 하락하면 외환위기 때(1997년 6월~12월) 7개월 연속 하락 기록과 같게 된다. 프랑스와 브라질을 제외하면 올해 주요국 증시는 대부분이 상승했다. 디플레이션(deflation)인 중국도, 경제가 역(逆)성장한 독일도 올랐다. 바깥 사정 탓만 하기 어렵다.

한은도 인정한 2년 연속 저성장 위기
수출부진· 내수침체에 기업실적 암울
외환위기 때 버금가는 위기 맞이할수
한국은행은 최근 내년과 내후년 경제성장률이 1%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기저 효과를 감안한다면 2년 연속 저성장은 심각한 경기 침체다. 우리 경제가 2% 미만 성장률을 기록한 것은 1956년(0.7%), 1980년(-1.5%), 1998년(-4.9%), 2009년(0.8%), 2020년(-0.7%), 2023년(1.4%) 6차례다. 1956년을 제외하면 석유파동,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글로벌 긴축 등 ‘위기’ 때였다. 그래도 성장률이 2년 연속 2% 미만에 그친 적은 없었다. 증시 역시 마찬가지다.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K-DC)’에도 외환위기 직전(1995~1997년)을 제외하면 2년 이상 연속 하락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내년에 증시가 2년 연속 오르지 못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주가는 기업 이익과 밸류에이션의 함수다. 우리나라 기업의 이익은 주로 수출에서 만들어진다. K-DC 탓에 우리 증시 밸류에이션은 주요국 가운데 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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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성장률은 한미 중앙은행 전망치 기준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최근 시장조사기관인 모노리서치에 매출액 1000대 기업 중 12대 수출 주력 업종을 대상으로 ‘2025년 수출 전망 조사’를 의뢰했다. 조사결과 기업들은 내년 수출 증가율이 올해 대비 1.4%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주요 원인으로는 ‘주요 수출대상국 경기 부진’(39.7%), ‘관세 부담 등 보호무역주의 강화’(30.2%)를 가장 많이 꼽았다. 실제 우리뿐 아니라 전세계 주요국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이 올해만 못하다. 중국은 5%가 안될 것으로 보이며, 연평균 7%가 넘던 인도 조차 5~6%대로 떨어질 것이란 예상이 많다. 유럽연합과 중동, 동남아와 남미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나마 가장 높은 성장이 예상되는 미국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며 관세 등 무역장벽을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맞서 각국이 무역장벽을 경쟁적으로 강화하면 수출이 주력인 우리나라에는 악재다.

불법적인 비상계엄으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며 내달 출범하는 트럼프 행정부와의 통상 협상도 어렵게 됐다. 내수도 엉망이다. 한국은행이 조사한 1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전월 대비 무려 12.3포인트 급락하며 88.4까지 추락했다. 25개월래 최저치다. 한경협이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종합 기업경기실사지수(BSI)도 내년 1월 전망치가 84.6다. 34개월째 내리막인데다 코로나19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경기 부진이 심각해 정치권에서는 새해 첫 달부터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기금으로 세수 부족을 변통하던 정부는 새해 초 20조원 규모의 외국환평형채권을 발행하기로 했다. 추경과 외평채 발행은 경기부양과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조치지만 국채 발행은 채권가격 하락(시장금리 상승)과 함께 시중 유동성의 안전자산 쏠림을 유발할 수도 있다.

혁신 주도 美 예외주의 효과 지속될듯
뉴욕증시 글로벌 자금 쏠리면 달러화↑
국내투자자 미국行 계속 늘면 원화값↓
미국 예외주의(America Exceptionalism)로 대변되는 달러 강세 환경도 그리 달라질 것 같지 않다. 미국은 내년에도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과 주가상승이 기대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높은 관세로 무역적자는 줄이면서 감세와 재정지출로 국내 경기는 부양하려는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성공한다면 글로벌 시장에 공급되는 달러는 줄고 미국 국내에 머무는 달러는 늘어날 수 있다. 그 결과 미국 자산가격만 오르게 되면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내리기 어려워진다.

인공지능(AI)에 이어 양자컴퓨팅에서도 미국 기업들의 혁신 선도는 계속될 전망이다. 현재 미국 증시의 밸류에이션은 이익전망치로 기업가치를 측정한 1988년 이후 가장 높은 주가수익비율(PER) 23배다. 미국을 제외한 나라들의 평균이 14배로 격차가 역대 최대다. 반면 거품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다. IT 버블 때와 달리 최근 미국의 혁신기업들은 대부분 이익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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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국내총생산(GDP) 규모, 다른 나라는 미국 대비 비중



우리는 아주 어렵고 미국은 꽤 괜찮다면 돈의 흐름은 뻔하다. 해외투자는 곧 달러 환전 수요다. 환율 상승 요인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 8월부터 국내 주식을 순매도하기 시작했다. 12월에도 2조원 이상 순매도가 진행돼 올 연간 기준으로도 순매도 전환이 이뤄졌다. 국채 선물 시장에서도 최근 매도세가 강화되는 모습이다. 더 심각한 것은 내국인 투자자들의 국내 시장 이탈이다. 한국예탁결제원 집계를 보면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보유액은 19일 기준 1112억6000만 달러(161조2500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63% 급증했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의 해외 행도 계속되고 있다. 곧 닥칠 보험료 수지 적자를 대비하려면 국내 보다 해외 자산을 보유해야 현금화 때 국내 시장의 충격을 줄일 수 있다. 9월말 기준 국민연금의 해외주식 투자는 399조680억원으로 전년말 대비 24.5% 증가했다.

어려운 거시경제 상황 속에서도 독일과 일본 증시가 올해 높은 상승세를 기록한 배경에는 기업들의 혁신과 정부의 제도 개선 노력이 있었다. 과거 자동차기업이 독주하던 독일이지만 올해에는 소프트웨어 기업인 SAP을 비롯한 7개 기업들이 괄목할 만한 실적을 거두며 증시를 견인했다. 이른바 독일판 ‘매그니피센트(magnificent) 7’의 등장이다. 일본은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밸류업 정책이 성과를 거두며 기업 활동의 역동성이 살아나고 있다. 세계 최대 편의점 기업인 세븐아이홀딩스에 대한 인수합병(M&A) 시도가 이뤄지고 혼다와 닛산의 기업결합 계획이 발표됐다. 괄목할 실적을 이룬 곳도 새로운 지배구조 시도도 좀처럼 찾기 어려운 우리 증시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올해 우리 경제가 독일과 일본 보다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음에도 코스피는 9% 가까이 하락한 이유다.

혁신 등 경제체질 근본 개선엔 시간 필요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가 환율안정 첩경
지배구조개선 위해 정치혼란 수습이 먼저
밖에서 달러를 벌어 들이기 위한 기업 혁신과 산업 구조개혁에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환율 안정은 시급하다. 고환율이 지속되면 물가와 금리가 올라 기업 부실은 커지고 가계 빚 부담은 가중돼 실물경제와 금융시스템이 동시에 타격을 입게 된다. 급하다고 외환보유고 곳간을 열어 원화가치를 방어하기도 어렵다. 미국과 통화스와프도 제대로 맺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불안만 증폭시킬 수 있다. 원화 가치를 안정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은 밖으로 나가는 투자자들의 발길을 돌려세우는 일이다. 올해 국내 증시에서 주식을 가장 많이 판 것은 외국인이 아니라 개인이다. 증시 부양을 위해 밸류업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다들 동의를 한다. 다만 방법에서 이견이 많다. 일본이 밸류업에 성공한 비결은 지배구조를 직접 건드리고 중앙은행 자금까지 동원하는 등 가용한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한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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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은 한국거래소 집계 기준임



민주주의에서 자본주의가 정착한 이유는 독주가 아닌 타협이라는 공통된 해법 때문이다. 다수라고 전부를 가지려 하면 소수의 반대에 부딪히고 결국 불신과 극단적인 대립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극단적인 대립은 끊임 없는 보복으로 이어진다. 다수라도 타협을 통해 소수의 권익을 존중해야 상생이 가능하다. 대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새로운 지배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

밸류업은 정부가 올바른 방향을 잡고 국회가 필요한 입법까지 마쳐야 완성된다. 제도를 바꾸는 과정에서 이견 충돌은 불가피하다. 이해관계자들의 타협을 이뤄내려면 정부와 정치권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최근 외환시장 불안 원인 가운데 국내 정치의 혼란이 있다. 정치적 혼란이 빨리 수습돼야 한다. 올해 전세계 주요 선거에서 여당이 패하거나 고전한 공통된 이유는 경제 문제 해결의 실패였다. 정치적 승리를 위해서도 밸류 업(value up)이 중요하다. 경제적 실패는 곧 정치적 패배(belly up)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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