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 화백 |
1950년대 ‘인기 학과’는 농대와 광산학과 등이었다. 농림어업이 전체 산업생산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던 시절이다. 1960년대 경제개발이 본격화하고 제조업 비중이 커지면서 공대가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전화기’(전자·전기공학, 화학공학, 기계공학)의 전성시대가 이어졌다. 1964년 서울대 의예과의 합격 점수는 자연계열 10위권 밖이었다. ‘의대 열풍’이 시작된 것은 외환위기 이후다. 안정적 소득을 얻는 전문직 선호도가 올라간 영향이었다. 지금은 ‘의약치한수’(의대·약대·치대·한의대·수의대)로 대변되는 의약학 계열이 전국의 최상위권 수험생을 싹쓸이하고 있다. 이를 제외하면 자연계열에선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컴퓨터 관련 학과, 인문계열은 경영, 경제, 미디어학과 등이 상위권에 포진돼 있다.(2024학년도 정시 합격점수, 종로학원)
오는 7~8일 대구대에서 사회학과 장례식(Memorial Party)이 열린다. 대구대는 사회학과를 ‘한계학과’로 정하고 2025학년도 신입생 모집을 중단했다. 1979년 대구대 설립 이후 45년 만의 일이다. 폐과에 반대한 재학생과 졸업생, 교수진은 대학의 일방적 구조조정에 항의하기 위해 장례식을 열고 추모의 시간을 갖는다. 사회학과를 비롯한 6개 학과 신입생 모집을 중단한 대구대는 사회복지와 경찰행정, 보건재활분야 등 ‘취업 중심 학과’ 위주로 정원을 늘렸다. 웹툰전공과 게임학과, 스포츠헬스케어학과 등이 신설된다. 기초학문의 위기와 학령인구 감소, 대학 서열화 등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지방 사립대부터 차츰 취업사관학교로 전락하고 있다는 탄식이 흘러나온다.
서울이라고 기초학문의 안전지대는 아니다. ‘문사철’(어문학·역사·철학) 중에서도 어문학의 위기는 독보적이다. 덕성여대는 독문과와 불문과 신입생을 더 이상 받지 않기로 했다. 동국대가 2009년 독문과를 폐지했고 건국대도 2005년 독문과와 불문과를 ‘EU 문화정보학과’로 합친 바 있지만, 서울 소재 대학에서 두 과를 한꺼번에 없앤 것은 처음이다.
학과 구조조정이 가속화한 것은 윤석열 정부의 무전공(전공자율선택) 확대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교육부는 ‘융합형 인재 양성’을 명분으로 무전공 확대와 대학 재정 지원을 연계하고 있다. 무전공은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한다. 학과 서열화와 인기 학과 쏠림이 심화되고 기초학문 고사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크지만, 이를 불식시킬 만한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대구대 사회학과 메모리얼 파티 포스터. |
황보연 논설위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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