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2 (목)

북한군 러시아 파병...한국에 무기 달라는 젤렌스키가 무서운 이유 [핫이슈]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의대 입학 증원 문제나 북·러 밀착을 놓고 우리 정부가 큰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상대방 급소를 찌를 치명적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상대가 저항하면 꼼짝 못하게 할 수단이 있어야 하는데 말로만 하고 있으니 의료계나 러시아의 냉소와 반발만 키운다.

북한군 파견은 러시아가 그에 상응한 대가를 약속했을 것이 분명한 만큼 이젠 우리도 행동으로 보여줄 때가 됐다. 가장 시원한 보복 방법은 우크라이나에 우리의 자랑스런 공격용 무기를 제공해 북한군이 집결한 쿠르스크는 물론 우크라이나 각지에서 전투중인 러시아군을 타격하는 것이다. K무기의 우수성을 세계에 홍보해 판로도 넓히면서 건방진 러시아에 본때를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K무기로 피해를 입은 러시아가 “무기 그만 보내라”며 우리한테 백기를 들 것 같지는 않다. K무기로 러시아군과 민간인들이 치명상을 입고, 자칫 일부 도시들이 파괴된다면 러시아는 항복은커녕 북한에 안 주려던 기술도 제공하려 할 것이다. K무기가 살상에 쓰였다는 얘기는 먼 훗날까지 러시아인들에게 한국에 대한 악감정으로 남을 것이다.

매일경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중단 촉구하는 평통사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이 주최한 제56차 한미 안보협의회(SCM)에 즈음한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중단을 촉구하는 팻말을 들고 있다. 2024.10.30 hkmpoo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북한군 파병을 계기로 K무기를 건네받을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이를 논의할 우크라이나 대표단이 곧 방한한다고 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국내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필요한 무기는 방어, 특히 방공 시스템”이라며 “러시아에 대항할 완전한 방공망 구축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리고는 자국 대표단이 구체적인 무기 요청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했다. 전쟁 중 세계 각국을 다니며 ‘무기 구걸’을 해온 젤렌스키가 마침내 한국에도 본격적인 접근을 개시한 것이다.

전쟁으로 국가 명운이 경각에 달린 만큼 젤렌스키의 급한 행보는 수긍이 간다. 하지만 누가 보면 맡겨둔 무기를 돌려받는 양 그의 요구는 거침이 없다. 2022년 6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젤렌스키와 통화에서 10억달러 상당의 추가 무기 지원 계획을 밝혔다가 크게 화를 낸 적이 있다. 젤렌스키가 감사 표시도 없이 새로 더 필요한 무기들을 나열했기 때문이다. 같은 달 미하일로 포돌리약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본인 트위터에 155㎜ 곡사포 100문, 다연장 로켓시스템 300기, 전차 500대, 장갑차2000대, 무인기 1000기가 필요하다고 적었다. 구체적인 무기들과 숫자까지 써놓자 많은 이들이 눈쌀을 찌뿌렸다. 포돌리약은 그해 11월에는 미국의 첨단 ‘에이브럼스 전차’까지 추가하면서 일명 ‘성탄절 소원 목록’을 완성했다는 가시돋힌 얘기가 돌았다.

만 3년째로 치닫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군사 자원을 빨아먹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막대한 군수 물자를 대고도 전쟁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 자주국방력 없는 우크라이나는 북한군 파견을 기회로 무기를 넘어 외부 병력까지 빌려 전쟁을 지속하려 할 것이다. TV에서는 징집을 피하려는 우크라이나 청년들이 경찰에 잡혀가는 모습이 나온다. 우크라이나에서 대통령과 총리, 장관 등 고관대작을 지낸 분들과 돈 많은 올리가르히(과두재벌)는 이번 전쟁에서 무슨 활동을 하고 있는지 블랙박스다.

민간인 사상자는 급증하는데 전쟁을 끌낼 협상에 적극 응하지 않는 측은 우크라이나다. 러시아를 이참에 결단내려는 서방의 부추김도 있지만 젤렌스키는 자국민 희생보단 종전 후 본인 입지가 더 중요한듯 휴전 결단을 안 한다. 이런 나라에 우리가 무기를 보내면 승리에 얼마나 기여할지 미지수다. 우리가 몇달 간 무기를 건네고도 별 성과가 없으면 우리 정치권과 국민이 오래 참지는 못할 것이다.

매일경제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지원 협약 행사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소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끝으로 1950년 한국전쟁 때 유엔 각국이 무기와 병력을 제공해 우리나라를 지켜줬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보은(報恩) 주장이 있다. 타당한 얘기다. 그래서 우리는 서방과의 가치 연대를 강조하며 윤석열 대통령이 키이우에 찾아가는 등 시종일관 우크라이나를 지지했다. 서방을 경유해 방어용 무기도 간접적·암묵적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북한군 파병을 기점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 안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중대 사안이 됐다. 북·러 밀월이 어떤 상상 못할 길로 더 접어들지 예단하기 어렵다. 북한군 파병 물증이 나오는데도 한동안 ‘가짜 뉴스’라며 잡아뗀 것이 북·러의 공통된 행보다. 군사기술 제공과 금전 거래가 있다고 한들 그들이 이실직고 할 리는 만무하다. 그럴수록 우리 안보는 더 위태로워진다.

과거 한국전쟁 참전국들도 중공과 소련의 공격을 받을 위협이 있었다면 대부분은 한국 출정을 포기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전차와 미사일을 보냈지만 나토(NATO)로 뭉친 이들은 당장 러시아의 타깃이 돼서 자국 안보에 경보가 울릴 지경은 아니다. 우리처럼 북한 같은 존재가 있어서 러시아가 대북 사주와 밀약으로 안보를 겁박할 상황이 아니다. 우리는 매우 안 좋은 특별한 위치라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내주는데 제약이 크다.

앞서 얘기했듯 우리에겐 러시아가 크게 아파할 대응 수단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교역 관계도 낮은 수준이라 그걸 칼로 쓰기도 어렵다. 반면 젤렌스키는 본인 얘기가 안 통하면 한국에 압력을 넣어달라며 서방을 부추길지 모른다. 추가 지원에 힘이 부치는 서방은 자신들을 대신해 한국에 무거운 짐을 떠맡기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젤렌스키가 비장한 표정으로 북한을 언급할 때마다 우리한테 어떤 무대포 요구를 할지 무섭기도 하다.

김병호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