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지는 경영권 분쟁
고려아연의 2조5000억원 규모 유상증자 결정으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더욱 안갯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임시 주주총회 개최 여부와 금융감독원 조사 결과 등에 따라 여러 시나리오가 가능해졌다.
경영권 분쟁 중인 영풍은 지난 1일 고려아연 임시 주총 소집 허가 신청서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했다.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은 지난달 28일 고려아연 이사회에 임시 주총 소집을 청구했다. 그러나 고려아연이 소집 절차를 밟지 않자 법원에 판단을 요청한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요즘 법원은 임시 주총 소집 허가 신청을 하면 대부분 받아주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임시 주총이 언제 열리느냐다. 법원에 신청서를 내고 두세 달 뒤에 열리는 게 보통이다. 이번 영풍이 소집 요청한 이사회는 오는 12월 말부터 내년 1월 사이에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영풍·MBK는 임시 주총에서 신규 이사 14명 선임과 집행임원제도 도입을 안건으로 올릴 예정이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는 안건이다. 의결 여부는 결국 ‘표 대결’, 즉 지분율에 따라 결정된다. 현재 지분율은 영풍·MBK가 38.47%, 최 회장과 그의 우호 지분은 35.4%로 3%포인트 정도 차이가 난다. 그런데 유상증자가 끝나면 우호 지분 확보로 최 회장 측의 지분이 영풍·MBK를 역전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유상증자 일정과 임시 주총 일정의 선후 관계에 따라 주총 표 대결 양상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고려아연 공시를 보면, 유상증자에 따른 신주 상장·유통은 오는 12월 18일로 예정돼 있다. 임시 주총은 그 이후에 열릴 가능성이 현재로선 높다. 그러나 변수가 있다. 금감원이 지난달 31일 브리핑을 갖고 고려아연 공개매수와 유상증자 위법 여부를 집중 조사하겠다고 밝히면서다. 금감원이 유상증자 과정의 문제를 포착해 증권신고서 정정요구 등 제동을 걸면 유상증자 일정이 미뤄지거나, 결국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 그럴 경우 최 회장 측은 임시 주총에서 유리하지 않은 상황에서 표 대결을 해야 한다.
다만 고려아연 관계자는 “이대로 가다간 고려아연이 상장폐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유상증자를 한 것이어서 꼭 임시 주총 전에 해야 한다는 식의 일정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누구 손을 들어줄지도 임시 주총 결과를 가르는 변수다. 양측이 엇비슷한 지분을 보유한 상황에서 고려아연 주식 7% 정도를 가진 국민연금이 임시 주총에서 ‘캐스팅 보터’(승부를 결정짓는 투표자)가 될 가능성은 높다. 지난 5년간 고려아연 주총에서 발의된 안건 중 국민연금이 90% 이상을 찬성했기 때문에 현 경영진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유상증자로 상황이 달라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민연금은 수익성과 함께 공공성 등도 기금운용 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금감원이 고려아연 유상증자에 불공정거래 가능성이 높다고 칼을 빼 들었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영풍·MBK 손을 들어주면 국가기간산업이 사모펀드에 넘어가는 것을 방관한다는 비판이, 고려아연 손을 들어주면 유상증자로 주주 가치 훼손하는 쪽 편을 들었다는 비판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금감원 조사 결과에 따라 국민연금 선택도 달라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한편 영풍은 대법원에서 폐수 무단 배출로 1개월 30일 조업정지 처분이 확정됐다고 지난 1일 공시했다. 영풍 석포제련소는 지난 2019년 오염 방지 시설을 거치지 않은 폐수 시설을 설치·이용했다가 환경부 점검에서 적발됐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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