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전문의 장기중 아주편한병원 진료원장. 장기중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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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환자의 고립된 세계와 이해받지 못하는 감정을 세상과 연결하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정신과 전문의 장기중 아주편한병원 진료원장은 치매 당사자의 목소리를 찾아 나선 한겨레의 물음에 지난달 장문의 답변을 보내왔다. 장 원장은 매일 진료하는 치매 환자들의 이야기를 블로그에서 나누다가 3년 전 ‘사라지고 있지만 사랑하고 있습니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치매와 그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요?
“진료실에서 만나는 어르신과 가족들은 치매라는 진단을 듣는 순간부터 자신의 삶이 급격히 달라질 것이라는 점을 인식합니다. 그분들의 침묵에는 입 밖으로 내놓는 순간 감당하기 어려운 상상이 현실이 되어버리는 것에 대한 짙은 두려움이 깔려 있습니다. 그분들이 24시간 (치매) 증상에만 빠져 있는 것도 아니고, 초기 단계에는 판단력도 온전합니다. 부분적으로 기억력 문제나 복잡한 일을 이전보다 잘하지 못하는 정도의 문제만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분들 마음 안에 도사린 치매는 그렇지 않습니다. 망상에 압도되어 자신의 물건을 훔쳐간다며 가족들에게 끊임없이 분노를 표출하거나, 집을 찾지 못해 가족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 수 있다, 어린아이처럼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리며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할 수 있다는 인식은 그분들의 두려움을 더욱 깊게 만듭니다. 그 때문에 어르신들은 본인이 맞닥뜨린 상황을 부인하며 방어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2021년 중앙치매센터가 19살 이상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치매 인식도 조사에 따르면 ‘치매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답한 사람이 66.1%이고, ‘치매 환자는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질문에 95.9%가 긍정적인 대답을 했습니다. ‘치매가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데는 12.9%만 ‘그렇다’고 했습니다. 반면 ‘나는 치매 환자가 두렵다’, ‘나는 치매 환자와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는 질문에는 각각 67.7%, 44.6%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치매를 잘 아는 것만으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 치매에 대한 두려움이 자신의 문제로 인식되면 우리는 대부분 상황을 부인하거나 회피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당사자가 아니면 여전히 치매라는 병증과 ‘문제 행동’을 주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치매 당사자의 ‘커밍아웃’이 어려운 이유는 뭘까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1994년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알츠하이머병을 진단받은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런 시도는 치매 환자가 주위 사람들에게 의존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결정권을 가진 사람임을 사회에 각인시킵니다.
치매는 인지, 즉 자신과 세상을 인식하는 능력이 손상되는 병입니다. 문제의 원인을 탐색하고 추론하는 전두엽 기능이나 언어능력의 손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병의 특징만으로 우리 사회에 치매 ‘커밍아웃’이 흔치 않은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치매 환자는 아직 보호와 돌봄의 대상으로서만 논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돌봄은 선한 의도를 가진 통제인데, 필연적으로 대상자의 삶의 영역에 의도적인 간섭이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치매가 진행되면 중요한 결정에서 점점 당사자들의 의견은 쉽게 배제됩니다. 실제 당사자가 원하는 것과 돌보는 사람이 필요한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치매 환자는 비록 이전과는 다르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목소리로 주위에 알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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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치매 당사자의 목소리가 필요한 이유가 있나요?
“치매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치매라는 세계에 우리가 조금 다른 접근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어렴풋이 느끼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저희 아버지는 대뇌 반구의 3분의 2 이상이 손상된 뇌경색으로 퇴행성 인지저하를 겪고 계십니다. 저는 의사로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식으로서도 지켜봅니다. 언젠가부터 외출할 때면 아버지의 손을 잡고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같이 다니다 보니 정작 아버지 입장에서 외출하실 때 중요한 것이 눈에 보입니다. 증상이나 기능장애가 아니라 바로 화장실입니다. 아버지는 신경학적 증상의 영향으로 5~10분마다 화장실에 가야 하는데 이를 찾지 못하면 당황하고 길을 헤매십니다. 어느 날 장거리 이동 할 일이 있어 자동차를 타시는데 1.5리터 빈 생수통을 들고 타십니다. 부끄러운 듯 어머니가 챙겨준 거라며 차 시트 바닥에 보이지 않게 숨겨두십니다. 그 이후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치매 환자와의 동행에 대해 질문받으면 저도 모르게 이 빈 생수통이 떠오릅니다.
치매 당사자들의 목소리와 시선에 우리의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본질적으로 어렵습니다. 저 또한 제가 아는 의학적, 지식적인 근거로 그분들의 행동과 말을 해석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온전히 그분들의 마음을 대변하지는 못합니다. 치매 노인의 배회가 사고사의 주요 원인이기에 (돌봄시설) 입소를 유일한 해결책으로 생각하는 것과 그분들의 시선에서 고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접근을 하게 만듭니다. 그분들은 보행 신호의 빨간색과 초록색의 구분이 어렵습니다. 길바닥에 칠해진 횡단보도의 복잡한 모양은 장소 인지의 혼선을 불러일으킵니다. 안타깝게도 치매가 초기 단계를 지나 진행되면 더는 그분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사회는 그분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간, 공간을 제공하고 소통에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치매와 공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 드라마 ‘눈이 부시게’와 같은 작품이 왜 감동을 주는지 생각해보는 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치매라는 무서운 병이 아닌 사람을 보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치매의 두려움은 무수히 이야기해왔어도, 정작 치매 환자의 시선에서 그들의 두려움이 무엇일지는 직접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분들의 삶에 대한 목소리 없이는 그분들의 두려움을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것이 동행을 위한 첫 시도가 될 것입니다.”
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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