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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2 (토)

[세상만사] 성폭력 피해 19%가 남성… 두 번 울리는 ‘남자다움’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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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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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직장인 A(27·남)씨는 최근 회식 자리에서 만취한 30대 여성 상사에게 강제 포옹을 당했다. 상사가 A씨에게 “너무 귀엽다”며 달려들어 껴안아 거부를 할 틈도 없었다. A씨는 “회식 때마다 어깨동무, 포옹 등 스킨십을 시도할 때가 잦았는데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봐 그냥 ‘하하하’ 웃고 만다”고 했다.

여성 상사 등에게 성희롱·성추행 등을 당하는 남성 직장인이 늘고 있다. 경찰청 성범죄 피해자 통계를 보면, 남성 성폭력 피해자(전체 대비 비율)는 2020년 1946명에서 2021년 2900명(9%), 2022년 7398명(18.2%), 지난해 6636명(18.5%)으로 증가 추세다. 법무부는 지난달 23일 술에 취한 남성 후배 검사를 부축하며 부적절한 신체 접촉과 발언을 한 부산지검 소속 여성 검사에 대해 정직 1개월 처분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남성 성폭력 피해자들은 ‘남자가 예민하게 뭘 그런 것 갖고 그러느냐’는 이른바 ‘남자다움’ 프레임에 짓눌려 쉽게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지 못하고 있다. 공공기관에 재직 중인 B(31·남)씨도 여성 상사의 상습적인 성추행에 시달리고 있지만 쉽사리 이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못한다고 한다. B씨는 “여성 상사가 옷 안에 손을 넣고 신체를 만지거나 여자 친구와의 관계를 캐물으며 성적인 대화를 유도할 때도 있지만 문제를 제기하면 부서와 회사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봐 그냥 참고 만다”고 했다.

남성 성폭력 피해자 절반 이상이 우울이나 불안을 호소하고, 분노나 섭식·수면 장애를 겪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스웨덴 등 선진국에선 남성 피해자들을 위한 전담 기관도 운영 중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남성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드러내기가 여전히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부장제가 강고한 한국 사회에서 그간 남성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가 대다수였지만,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서 반대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며 “공론화된 피해는 실제 발생하는 사례의 극소수일 수 있다”고 했다. 설 교수는 “여성가족부 등 정부와 대학·회사 등에서 양성 모두 피해·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양성 평등적 시각을 가지고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강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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