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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유광종의 차이나 別曲] [319] 역사의 도살자를 소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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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김성규


“살생의 칼을 내려놓으면, 곧 부처가 된다(放下屠刀, 立地成佛)”는 말이 있다. 불가(佛家)에서 오래 전해지는 가르침이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라는 권유지만, 모든 망상과 번뇌를 털어버리고 깨우침을 얻으라는 속뜻이 담겼다.

남의 목숨 끊는 칼을 도도(屠刀)라고 적었는데, 앞 글자 ‘도’는 원래 가축 등을 죽여 삶는 동작까지 일컬었다. 그러나 요즘은 생명을 해치는 일, 더 나아가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벌이는 살인 행위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이로부터 생겨나는 단어 조합들도 제법 많다. 남을 죽이는 도살(屠殺), 가축을 잡는 도축(屠畜), 무참하게 없애는 도륙(屠戮), 베어 죽이는 도할(屠割), 짐승 고기를 잡아 파는 도수(屠手), 점령한 성을 마구 짓밟는 도성(屠城) 등이다.

우리의 용례는 드물지만 중국에서는 도촉(屠蜀)이라는 말이 쓰인다. 뒤의 ‘촉’은 지금의 쓰촨(四川)을 지칭하는 글자다. 말 그대로 옮기면 “쓰촨을 도륙하다”는 뜻이다. 명(明)나라가 쓰러지며 만주족의 청(淸)이 중국을 석권하던 시절 이야기다.

‘도촉’은 군벌 장헌충(張獻忠)이 현지 주민들을 대거 학살했던 데서 나온 전고(典故)다. 대략 680만 명이 죽어 쓰촨의 인구가 50만명 정도까지 줄었다는 추계가 있다. 장헌충의 ‘도륙’이 큰 원인이었고, 다른 전란의 여파도 있었다.

장헌충은 이런 곡절 때문에 ‘도살자’라는 역사적 오명을 얻었다. 그런 장헌충의 이름을 요즘의 중국이 다시 소환했다. 길거리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행인들에게 난도질을 하는 ‘묻지 마’식 살인이 크게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장헌충 신드롬’이다. 궁지로 내쳐진 밑바닥 계층의 삶들이 이런 범죄의 큰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숨 막힐 듯한 통제 사회의 다른 한 병증일 수도 있다. 갈수록 어긋나고 비틀어지는 중국 사회의 스산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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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종 중국인문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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