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난민기구 아시아·태평양 지역 본부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하며 방문한 많은 다른 국가들의 상황도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지난 2월부터 45국의 난민 및 실향 위기 대응을 총괄하기 시작한 이래, 전 세계적으로 강제 실향을 야기하는 위기가 발생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 과거에 시작돼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미얀마의 상황은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잊히고 있다.
미얀마 분쟁은 더 많은 이를 더욱 절박한 상황으로 내몬다. 우기가 끝나는 이 시기마다 미얀마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안전을 찾아 목숨 걸고 바다를 건너는 난민들의 이동이 증가한다. 폭력, 박해, 절망을 피해 떠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은 바다에서 더 큰 위험을 마주한다. 지난해에만 로힝야 난민 약 4500명이 안전을 찾아 바다로 위험한 여정에 올랐다. 그 과정에서 560여 명이 목숨을 잃거나 실종됐다.
이제 더 큰 인명 손실을 막기 위해 국제사회와 주변국은 행동해야 한다. 각국 정부, 세계은행, 시민사회 등 국제사회의 하나된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는 아시아 전역에서 난민 보호 및 지원을 위한 민간 부문의 참여 또는 공여국 정부의 투자와 같은 협력 성공 사례를 봐왔다. 대한민국 정부도 미얀마 위기 상황을 위해 수년간 지원을 아끼지 않아왔다. 미얀마 북동부 카친주(州)의 실향민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에 대한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400만달러 규모 지원이 좋은 사례다. 이 지원은 분쟁으로 인한 미얀마 국내 실향민 약 1만1600명에게 안전한 거처, 건강 서비스 같은 삶의 재건을 위한 장기적 해결책을 종합적으로 지원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난민을 보호하는 국가들은 자원 부족을 겪고 있어, 국제사회의 지원이 절실하다. 강제 실향은 더 이상 특정 국가나 국제기구만이 아닌 전 세계가 함께 다뤄야 할 공동의 숙제다.
고향을 떠난 모든 난민은 다시 안전해진 집으로 돌아가기를 꿈꾼다. 그때까지 난민이 교육받고 일할 기회, 병원에 갈 기본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다면, 이들은 자신들이 속한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전 세계 1억2000만명이 넘는 강제 실향민이 기다리는 것은 평화, 안전, 그리고 삶을 재건할 기회다. 이 기다림이 헛되지 않도록 돕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매일 조선일보에 실린 칼럼 5개가 담긴 뉴스레터를 받아보세요. 세상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91170
[전혜경 유엔난민기구 아시아∙태평양지역 본부장]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