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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금)

이슈 미술의 세계

예술이 된 여성들의 몸부림…금기를 깨고 위계에 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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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접속하는 몸’
야요이·박영숙·정강자·이불 등
亞 여성작가 작품 130점 펼쳐
신체가 갖는 동시대 의미 탐구


매일경제

필리핀 여성작가 아그네스 아렐라노의 ‘풍요의 사체’(1987).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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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의 사체가 바닥을 향해 거꾸로 매달려 있다. 완전히 절개된 배 안쪽에는 탯줄을 몸에 감은 아기가 들어 있고, 막 배에서 쏟아져 나온 듯 바닥엔 곡물이 쌓여 있다. 여성의 고통(또는 죽음)이 새 생명의 탄생과 풍요로 이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파격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은 필리핀 독재에 저항한 여성 예술가 그룹 ‘카시불란’ 소속 작가 아그네스 아렐라노의 ‘풍요의 사체’(1987). 작가가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제왕절개 출산 경험에 기반해 필리핀 신화에서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여신 ‘바부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신체’의 관점에서 1960년대 이후 아시아의 주요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을 조망하는 대규모 기획전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이 내년 3월 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다. 한국의 1세대 여성 작가인 박영숙과 정강자는 물론 ‘점박이 호박’으로 유명한 일본의 구사마 야요이, 일본 출신의 비디오 아티스트이자 백남준의 아내 구보타 시게코, 1990년대 페미니즘 미술을 주도하고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이불, 떠오르는 젊은 설치미술 작가 이미래 등 아시아를 대표하는 11개국 60여 팀의 여성작가 작품 13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인 ‘접속하는 몸’은 소통과 연대의 매개체로서의 신체를 의미한다. 전시는 각 소주제에 따라 6부로 구성됐다. 1부 ‘삶을 안무하라’에서는 식민, 냉전, 이주, 가부장제 등 아시아의 복잡한 근현대사 속에서 신체에 새겨진 삶과 경험을 표현한 작품을 선보인다. 일부는 가부장적인 사회에 도전장을 던진다. 여성의 주체적인 태도를 드러낸 정강자의 회화 ‘명동’(1973)이 대표적이다. 이 작품에는 북적이는 서울의 명동 거리 한복판에서 상의를 탈의한 채 나팔바지에 핸드백을 매고 당당히 활보하는 여성이 등장한다. 여성주의 문화운동을 주도했던 박영숙이 김혜순의 시 ‘마녀 화형식’을 재해석한 사진 작품 ‘마녀’(1988)는 성적 권력 구조와 사회적 억압에 희생된 여성들을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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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숙 ‘마녀’(1988).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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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강자 ‘명동’(1973).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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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섹슈얼리티의 유연한 영토’에서는 섹슈얼리티를 소재로 성과 죽음, 쾌락과 고통 등 사회적으로 금기시된 영역을 다룬 작품들이 소개된다. 일례로 일본의 젊은 작가 엔도 마이와 모모세 아야는 퍼포먼스 영상 ‘사랑의 조건’(2020)을 통해 성기와 성적 활동에 대한 획일화된 사회적 관념을 깬다. 두 사람은 마주 앉아 점토로 성기를 빚으며 이상적인 성기의 형태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처음에 남성의 것으로 추정됐던 성기의 형태는 점점 성의 구분이 없는 제3의 성기 모습으로 변해간다.

생명을 품는 자궁 속 태반을 여성의 신체 밖으로 꺼내 형상화한 미츠코 타베의 ‘인공태반’(1961-2003)은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에 처음 전시됐다. 구사마 야요이가 모든 경계를 허물고 자신의 신체에까지 점을 그리는 퍼포먼스 영상 ‘구사마의 자기소멸’(1967)과 2.9m 높이로 제작한 회화 대작 ‘점의 축적’도 만날 수 있다. 사이보그 연작으로 여성의 신체와 기계를 불완전한 형태로 결합시켜 만든 이불의 설치 조각 ‘아마릴리스’(1999)는 성을 넘어 종의 경계까지 허문다.

이어 전시는 아시아 각국 고유의 민간 신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을 소개하는 3부 ‘신체·(여)신·우주론’과 거리와 일상 공간을 무대 삼아 실험적으로 선보인 여성작가들의 퍼포먼스 작품을 모은 4부 ‘거리 퍼포먼스’, 신체 퍼포먼스의 반복성에 주목한 5부 ‘반복의 몸짓-신체·사물·언어’, 정신·육체 또는 남성·여성 등의 이분법적 사고와 위계에 도전하고자 했던 일련의 작품을 선보이는 6부 ‘되기로서의 몸-접속하는 몸’으로 이어진다. 중국작가 구오펭이, 인도작가 므리날리니 무커르지, 싱가포르 작가 아만다 헹, 태국작가 아라야 라스잠리안숙, 인도네시아 작가 아라마이아니 등 다양한 국적의 작품이 관객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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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전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이 열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전시실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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