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세상]
보험회사가 새로운 회계기준(IFRS17)을 도입한 지 2년이 됐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금융당국이 결국 기준을 손을 보겠다고 나서면서 업계는 폭풍 전야다.
유럽에서 사용하고 한국이 2013년부터 도입을 검토한 IFRS17의 핵심은 보험부채(보험금) 평가기준을 기존 '원가'가 아니라 '시가' 적용으로 대전제가 바뀐 점이다. 시가는 현재 시점에 금리로 할인한 현재 가치를 의미한다. 시가평가는 계리적 가정을 어떻게 적용하는지에 따라 보험사의 재무제표가 급격히 달라진다. 계리적 가정은 해지율, 위험률, 할인율 등의 추정치를 반영한다. 기본원칙은 지키되 세부기준을 자율적으로 정하기 때문에 자율성이 보장되고 글로벌 스탠더드로 인식됐다.
문제는 새 회계기준 도입 이후 보험사의 실적이 좋아지면서 보험사들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가정치를 사용해 실적을 부풀린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결국 금융당국은 보험개혁회의를 통해 동일한 기준을 만들겠다고 칼을 빼 들었다. 조만간 무·저해지 보험해지율 가정과 단기납 종신보험 해지율 가정 등 회사마다 다른 계리적 가정을 통일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예정이다.
보험사가 최근에 판매에 집중하는 무해지·저해지 보험과 단기납 종신보험의 통계는 채 5년이 안 된다. 그 이후 기간에 대해서는 회사가 해지율을 추정할 수밖에 없다. 동일 기준적용으로 보험사별로 상품 판매 비중, 추정치에 따라 영향은 천차만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금융당국이 도입을 검토하는 무·저해지 해약률 기준은 너무 보수적인 유형으로 현실과 차이가 크다고 더욱 반발한다.
자본시장의 불안감도 크다. 상장 보험사의 기업 IR(기업설명회) 담당자들은 최근 계리가정 변경에 따른 영향을 물어보는 글로벌 투자금융사들의 전화를 받느라 바쁘다. 새로운 기준을 적용하면 보험사의 이익이 대폭 줄어들고 부채는 조단위로 증가한다는 보도가 이어진 후 전화문의가 더욱 쇄도했다.
금융당국의 책임론도 불거진다. 2016년 IFRS17 도입이 확정된 후 7년의 준비기간이 있었는데 당국은 실적 부풀리기 논란이 제기된 후에야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섰다. 새 회계기준을 도입하기 위해 10년을 준비해온 보험사들은 또다시 혼란에 빠졌다. 기본 도입 취지는 사라지고 한국만의 IFRS17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기준이 글로벌 스탠더드인가요"라는 글로벌 금융회사 측의 질문에 IR 담당자들은 어떤 답도 못 하고 있다.
최근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내놓은 보험사 관련 보고서를 보면 금융당국의 계리적 가정 조정을 '강력한 규제'라고 평가했다. 규제 영향 여부에 따라 보험사별로 투자의견은 달랐다. 당국의 오락가락 회계제도 원칙은 국내 기업의 기업가치 제고(밸류업)와도 역행하는 모양새다. 회계제도 변경에 따른 수업료를 언제까지 내야 하는지 회의적인 목소리가 크다.
배규민 기자 bkm@mt.co.kr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