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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1 (목)

‘보수 개신교계’가 생산하는 혐오의 쓰나미가 몰려온다 [한채윤의 비 온 뒤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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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27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 일대에서 개신교계 임의 단체인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및 큰 기도회 조직위원회\'가 동성결혼 합법화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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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채윤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에서 지난 9월에 ‘성소수자에 대한 개개인의 포용 수준’ 설문 결과를 발표했다. 대한민국 국민 10명 중 3~4명은 성소수자에 대해 적대적 감정이 있다고 밝혔다. 성별, 연령,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감정의 차이가 보이지만 놀랄 만큼 크진 않다. 이 조사에서 가장 뚜렷하게 적대감을 높이는 요인으로 드러난 건 종교다. 개신교 신자의 60%가 남성 동성애자에 적대적 감정을 가진다고 답했다. 신의 가르침 때문이라지만 이는 천주교 신자는 34%에 그쳐 왜 개신교가 두배 가까이 높은지 설명할 수 없다. 레즈비언에 대한 적대적 감정도 천주교인은 25%였고 개신교인은 54%였다.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를 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도 역시 개신교인의 66%가 포용해선 안 된다고 답했다. 게다가 개신교인의 55%는 앞으로도 성소수자에 대한 국민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제는 이것이 부정적 ‘감정’과 부족한 ‘포용적 태도’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10월27일 일요일, 경찰 추산 23만명(주최 쪽 추산 110만명)의 개신교인이 ‘한국교회 200만 연합예배 – 찬양과 큰 기도회’라는 명목으로 서울광장 일대와 여의도에 모였다. 신을 경배하는 의식으로서의 예배라기보단 정부와 국회, 법원이 더 많은 차별을 하라고 요구하는 정치 집회에 가까웠다. 신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혐오와 편견의 기도가 쏟아졌다. 차라리 차별금지법과 동성혼 반대만 있었다면 다행일지 모른다. 이슬람 혐오가 더해지고 ‘페미니즘이라는 악한 사상에서 영혼을 분리’하자는 것도 기도에 포함되었다. ‘결혼과 출산은 여성에게 손해라고 말하는 페미니즘 사상에 젖은 것’을 회개하라며 성경 말씀대로 ‘남편은 아내의 머리’이니 아내는 남편을 보필하던 때로 되돌아가자고 요청한다. ‘노산과 불임률 증가로 시험관 시술이 난무’한다며 윤리적 비난을 더하고, 반려동물을 제 자식처럼 아끼는 반려인이 천만명이 넘었다고 한탄하며 ‘인간과 동물의 서로 다른 창조 목적을 기억’하라고 훈계한다.



연합예배의 슬로건은 “건강한 가정 거룩한 나라”였고 루터의 종교개혁 507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음에도 계속 쌓여온 성직자들의 성폭력, 불륜, 횡령, 표절 등에 대한 반성은 없다. 이런 행사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축사 영상까지 보내며 ‘할렐루야’를 외쳤다. 이 연합예배는 애초 지난 7월에 나온 정서적, 경제적, 애정적 공동체로 함께 사는 동성 커플에게도 이성 간 사실혼과 마찬가지로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을 반대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건강 보험’은 모든 국민을 위한 복지 제도이고 ‘부양’은 타인을 돌보는 것이니 피부양자 자격의 확대는 우리 사회가 더 따뜻해지고 튼튼해진다는 의미다. 오죽하면 개신교가 ‘최소한의 복지’도 뺏는 종교로 보일까 봐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교계 내부에서 나오겠는가.



앞서 설문에서 성소수자의 자리에 만약 외국인이란 단어가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개신교인의 60%가 외국인에게 적대적 감정을 가지고 66%는 포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면? 언론은 대서특필하지 않았을까. 정치권도 종교가 생산하는 혐오를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다루지 않았을까. 보수 개신교계는 ‘동성애 쓰나미’가 몰려온다며 거룩한 방파제로 맞서야 한다며 절규한다. 나는 어떤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이 거대한 혐오의 쓰나미가 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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